드라마 · 2026
나를 충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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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소리를 혼자 듣던 분께
백호랑 씨께.
생일이었지요. 가족과의 불편한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같이 사는 사람이 준비한 소박한 케이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이분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이 글은 호랑 씨에게 부치는 글로 씁니다. 결말까지 전부 들어 있습니다.
먼저 건네고 싶은 말이 있어요. 오래 혼자 버티셨지요. 호랑 씨를 연기한 배우는 이분을 속에 깊은 외로움과 불안을 품고 일만 하는 사람, 가까운 비서 말고는 감정을 나눌 사람이 없는 사람으로 읽었다고 했습니다. 재벌 3세, 리조트 전무, 그룹 후계자. 밖에서 부르는 이름은 많은데 인공 심장을 아는 사람은 몇 없었어요. 저는 그 숫자가 이분의 하루를 설명한다고 봅니다.
생일 이야기를 조금 더 할게요. 호랑 씨를 연기한 배우는 이분이 가족이 오는 날이면 힘들고 피곤해한다고 했습니다. 축하받는 날이 가장 지치는 날이었던 거예요. 그날 밤 보배 씨가 준비한 케이크 앞에서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순간, 뭔가 시작되는 느낌이 있었다고 배우는 말했어요. 저는 그 장면에서 호랑 씨가 한마디도 더 하지 않은 게 좋았습니다. 말보다 먼저 와 있는 사람을 처음 겪은 얼굴이었어요.
행동부터 보겠습니다. 호랑 씨가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을요.
하나. 수술 날 병원이 정전되어 심장이 방전됐을 때, 같은 병원에 있던 나보배 씨 덕에 깨어나셨지요. 그 뒤 호랑 씨는 이분에게 「딱 3개월만 나 좀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평생 숨기던 사정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청한 거예요. 그룹 승계를 위해서였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 말 뒤에 다른 게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살고 싶을 때 가장 솔직해지니까요.
둘. 한설희 씨가 입원한 병실까지 느닷없이 찾아오고, 나중엔 결혼하자고 들이댔을 때, 관심 없다고 선을 그으셨습니다. 그분은 생일 축하 자리에 기자까지 불러 결혼을 공식화하려 했지요. 호랑 씨는 거기에 맞춰 주지 않았어요. 이건 하지 않은 쪽입니다. 자리를 지키려면 받아들이는 게 편했을 텐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셋. 공항에서 팬들에게 둘러싸인 보배 씨의 전기가 폭주해 공항이 정전되고 구조물이 떨어졌을 때, 호랑 씨는 그분을 감싸고 다쳤습니다. 배터리로 뛰는 심장을 가진 사람이 몸으로 막은 거예요. 그 뒤 보배 씨가 겁이 나서 밀어냈을 때도 호랑 씨는 물러서지 않았지요.
넷. 사촌 최도윤 씨의 계략으로 횡령과 비리 의혹 기자회견에 서게 됐을 때요. 호랑 씨는 카메라 플래시를 무서워하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섰어요. 보배 씨가 나타난 뒤에야 회견을 마칠 수 있었다는 걸 저도 압니다. 그래도 자리에 선 것은 호랑 씨였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숨기셨을까요. 작품은 이분의 어린 시절을 길게 보여 주지 않으니 저는 추측만 할 수 있어요. 아마 몸의 사정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자리부터 흔들 거라고 믿으셨을 거예요. 실제로 후계 다툼은 그렇게 흘러갔으니 틀린 믿음도 아니었습니다. 연출자는 중후반부터 인공 심장과 전기가 두 사람의 약점으로 드러난다고 했는데, 저는 그 말을 이렇게 들었어요. 약점을 들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약점을 아는 사람이 생기는 이야기라고요.
호랑 씨가 들은 말을 세어 봤습니다. 결혼하자는 말, 횡령했다는 의혹, 그리고 재수술 뒤 의사가 한 말. 이제 보배 씨의 강한 전기가 인공 심장에 과부하를 줄 수 있다는 경고였지요. 살려 준 사람이 위험한 사람이 됐다는 말을 깨어나자마자 들은 거예요. 그리고 보배 씨는 말없이 대전 부모님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전기가 더는 나오지 않고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지요.
그런데요, 호랑 씨는 그 말들 중 어느 것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대전까지 가서 부모님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방법은 자기가 찾을 테니 떠나라는 말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저는 이 말이 이분이 평생 듣고 싶었던 말을 거꾸로 꺼낸 거라고 봅니다. 떠나지 말라는 말. 심장 소리를 혼자 듣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곁을 부탁한 겁니다.
듣고 싶었던 말을 먼저 한 사람은 결국 그 말을 돌려받았어요. 보배 씨는 호랑 씨의 손을 잡고 서울로 돌아왔고, 할머니 공만설 회장님도 일단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도윤 씨는 음주운전과 경찰 폭행으로 체포되어 회사에서 쫓겨났지요.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 행동이 괜찮아지는 건 아닙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사람을 가두고 약을 먹인 일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요.
호랑 씨가 이상한 분이라서 숨긴 게 아니에요. 이상해서가 아니에요. 들킬 때마다 자리를 잃는 사람은 그렇게 삽니다. 그 사람 곁에 필요한 건 비밀을 캐묻는 사람이 아니라, 알고도 그냥 옆에 있는 사람이에요. 이 글을 읽는 분 곁에도 그런 분이 있다면, 묻지 말고 옆에 계셔 주세요.
마지막 장면을 기억합니다. 드라마 작가로 입봉한 보배 씨와 호랑 씨가 나란히 앉아 첫 방송을 보고 있었지요. 전기도 배터리도 그 장면에는 없었어요. 두 사람만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어요. 그날 호랑 씨가 들은 심장 소리는 더 이상 혼자 듣는 소리가 아니었을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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