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나를 충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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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틸 사람과 접을 사람
열 편, 합쳐서 열 시간 이십칠 분. 로맨틱 코미디 한 편이 요구하는 시간치고는 길다. 이 글은 그 시간을 쓸지 말지 정하는 가이드다. 앞쪽 「보라」 목록은 결말을 피했고, 뒤쪽 「피하라」 목록부터는 결말이 나온다. 거기서 멈추고 싶으면 멈춰라.
설정만 정리한다. 어릴 때 벼락을 맞은 뒤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드라마 작가 나보배가 있다. 손이 닿으면 상대가 감전되니 흰 장갑을 끼고 다닌다. 인공 심장에 배터리를 단 재벌 3세 백호랑이 있다. 인파에 떠밀려 두 사람이 입을 맞추는데 호랑만 감전되지 않는다. 수술 날 병원이 정전되어 호랑의 심장이 방전되고, 같은 병원에 있던 보배 덕에 살아난다. 닿으면 충전, 떨어지면 방전. 호랑은 「딱 3개월만 나 좀 살려달라」며 동거를 제안하고, 로맨스 대본이 막힌 보배가 받는다. 여기까지가 두 회다.
이런 사람은 보라
- 아는 맛을 찾는 사람. 연출자가 제작발표회에서 아는 맛을 굳이 다른 맛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말 그대로다. 계약 연애, 동거, 삼각관계, 재벌가 후계 다툼이 빠짐없이 나온다. 재료가 뭔지 알고 주문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장점이다.
- 두 사람이 붙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설정에서 나오는 걸 좋아하는 사람. 떨어지면 방전되니 4회에서 보배는 얼떨결에 호랑의 수행비서가 되어 회사에서도 하루 종일 옆에 있게 된다. 억지로 붙여 놓는 게 아니라 붙어 있어야 산다. 이 장르에서 드문 핑계다.
- 숨기는 사람 쪽에 마음이 가는 사람. 보배를 맡은 배우는 이 인물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능력을 숨긴다고 잡았다고 했다. 인파 속에서 장갑 낀 손으로 입을 막고 선 모습이 그 설명 그대로다. 호랑도 인공 심장을 숨기고 일만 한다. 숨기는 사람 둘이 서로에게만 숨기지 못하게 되는 구조다.
- 일로 인정받는 여자 주인공을 바라는 사람. 6회에서 보배는 리조트 광고 프로젝트에서 실력으로 인정을 받는다. 배우도 보배를 자기 힘으로 문제를 푸는 인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연약해서 구해지는 쪽이 아니다.
- 조연 하나가 극을 들고 가는 걸 괜찮아하는 사람. 비서 윤재호와 호랑이 주고받는 말이 극의 숨통이다. 해외 시청자 평에 윤 비서 말고는 조연이 심심했다는 말이 있었다. 뒤집으면 그 하나는 확실하다는 뜻이다. 처음엔 수상해 보이던 이 비서가 끝까지 호랑 편이었다는 것까지가 그 사람 몫이다.
- 한 회가 한 시간을 넘어도 괜찮은 사람. 회당 59분에서 1시간 7분이다. 짧게 끊어 보는 습관이 있으면 중간에 끊기 좋은 자리가 많지 않다.
이런 사람은 피하라
여기부터 결말이 있다. 아직 안 봤고 볼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아래 목록은 건너뛰고 맨 끝 문단으로 가라.
- 판타지 바깥의 세계가 단단하길 바라는 사람. 대기업 후계자가 수술받는 병원에 비상 전력이 돌지 않는다. 중고 신인이라는 톱스타가 마스크 하나 쓰고 거리를 다닌다. 전기 흐르는 사람은 받아들여도 이런 건 걸리는 사람이 있다. 나는 걸렸다.
- 앞의 속도가 끝까지 가길 바라는 사람. 여섯 회까지는 두 사람 이야기다. 그 뒤로 사촌 최도윤의 계략으로 호랑이 횡령과 비리 의혹 기자회견에 서고, 창립기념일에는 감금과 약 탄 술이 나온다. 전반부는 즐겁고 후반부는 힘이 빠진다는 해외 시청자 평이 있었다. 나도 같은 자리에 섰다.
- 재벌가 암투가 수사극 흉내를 내는 게 싫은 사람. 비서들이 총지배인의 비리를 캐겠다고 현장을 급습하는 대목이 있다. 수사물로 보면 허술하고 코미디로 보면 길다.
- 악역의 퇴장에 값을 바라는 사람. 도윤은 음주운전과 경찰 폭행으로 체포되어 회사에서 쫓겨난다. 열 편 동안 꾸민 일의 값으로는 싱겁다. 꾸민 일이 밝혀져 무너지는 게 아니라 다른 일로 잡혀간다.
- 능력의 끝이 분명하길 바라는 사람. 마지막에 보배는 전기를 전부 쏟아 호랑을 살리고, 그 뒤로 몸에서 전기가 나오지 않는다. 돌아올지는 열어 둔다. 열어 둔 걸 여운으로 받는 사람이 있고 비었다고 받는 사람이 있다. 후자라면 마지막 회가 허전할 것이다.
- 오래된 대사에 약한 사람. 「그 자식보다 내가 더 잘해줄게요」 같은 말이 그대로 나온다. 이 말을 듣고 웃을 수 있으면 보고, 손이 오그라들면 접어라.
둘 다 아닌 사람에게. 3회까지만 보라. 한집에 살기로 한 두 사람이 조항을 빼곡히 적은 계약서를 쓰고, 그 조항에 따라 보배의 드라마 자료 조사 명목으로 첫 데이트를 나간다. 이 드라마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그 한 회에 다 있다. 설정이 주는 핑계, 오래된 대사, 두 배우가 거리를 좁히는 속도. 거기서 다음 회를 누르고 싶으면 열 시간을 써도 된다. 누르고 싶지 않으면 거기까지가 당신 몫이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누르든 끄든, 남의 평 때문에 정하지 마라. 당신이 걸리는 자리와 내가 걸리는 자리는 다르다.
볼까 말까 묻는다면, 3회까지. 그다음은 당신 배터리 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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