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나를 충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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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돌려주는 드라마와 돌려주지 않는 드라마
아홉 해 차이다. 2017년 봄에 끝난 「힘쎈여자 도봉순」과 2026년 가을에 공개된 「나를 충전해줘」 사이의 거리다. 둘 다 남을 다치게 하는 힘을 타고난 여자가 그 힘을 숨기고 살다가, 사랑하는 남자를 살리는 데 힘을 다 쓰고 잃는 이야기다. 겹치는 뼈대가 이 정도면 비교는 피할 수 없고, 피할 이유도 없다. 질문은 이것이다. 같은 자리에 섰을 때 두 작품은 무엇을 택했는가.
먼저 적어 둘 것이 있다. 「나를 충전해줘」를 보고 나온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이 비교 자체가 과하다고 할 것이다. 병원 비상 전력이 번개 한 번에 꺼지고, 톱스타가 마스크 하나로 거리를 다니는 세계를 두고 무슨 견주기냐는 말이다. 나도 그 세계의 허술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설정의 구멍과 설정의 선택은 다른 문제다. 이 글은 후자만 다룬다.
두 작품 · 힘쎈여자 도봉순
JTBC에서 2017년 2월부터 4월까지 16부로 방송됐다. 극본 백미경, 연출 이형민. 도봉순은 모계로 내려오는 괴력을 타고났고, 그 힘에는 금기가 붙어 있다. 죄 없는 사람에게 힘을 쓰면 힘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어머니 황진이가 그렇게 힘을 잃었다. 그래서 봉순은 힘을 숨기고 살았고, 아인소프트라는 회사의 대표 안민혁의 경호원이 되면서 이야기가 굴러간다. 형사 인국두가 삼각의 세 번째 꼭짓점이다.
이 작품에서 힘은 정체성에 가깝다. 13회에서 납치범 김장현은 봉순의 약점을 알고 함정을 판다. 봉순은 힘을 잃는다. 그 직전에 봉순이 민혁에게 한 말이 「저한테 연애는 사치인 것 같다」였다. 위험한 자기 곁에 사람을 둘 수 없다는 뜻이다. 14회는 힘을 잃은 봉순이 부엌에서 사과를 쪼개 보려다 실패하는 장면으로 간다. 민혁은 그걸 모른 척하고 사과를 받아 칼로 썰어 주스를 만든다. 어머니는 자기가 힘이 빠지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힘 없는 삶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작품은 그 길로 가지 않는다. 같은 회에서 봉순은 다시 납치되고, 폭탄이 설치된 방에 묶인다. 민혁이 위치를 찾아내지만 자물쇠 때문에 문을 열지 못한다. 봉순이 저 사람을 살릴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순간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고, 힘이 돌아오고, 폭탄은 제거된다. 15회에서 봉순은 방탄복을 입고 범인의 총 앞에 서고, 민혁과 국두가 밀항하려는 김장현을 잡는다. 드라마는 범인 검거와 두 사람의 로맨스로 끝난다.
다시 말해 「도봉순」은 힘을 잃는 이야기가 아니라 힘을 잃었다가 돌려받는 이야기다. 돌려받아야 끝나는 구조다. 힘 없는 봉순은 열여섯 회 중 한 회를 채 못 버틴다.
두 작품 · 나를 충전해줘
넷플릭스에서 2026년 10월 9일 10부가 한꺼번에 공개됐다. 극본 송유채, 연출 박수원, 원작은 같은 제목의 웹소설이다. 나보배는 어릴 때 벼락을 맞은 뒤 몸에 전기가 흐른다. 손이 닿으면 상대가 감전되니 흰 장갑을 끼고 산다. 인파에 떠밀려 입을 맞춘 재벌 3세 백호랑만이 감전되지 않는다. 호랑은 인공 심장에 배터리를 달고 사는 사람이고, 병원 정전으로 심장이 방전됐다가 같은 병원에 있던 보배 덕에 깨어난다. 「재수술 전까지 딱 3개월만 날 충전해 줘요.」 계약의 문장이다.
겉으로는 「도봉순」과 같은 배치다. 힘을 숨기는 여자, 재벌가 남자, 그 남자 곁에 붙어 있어야 하는 여자. 그런데 힘의 성격이 다르다. 봉순의 힘은 금기로 묶인 무기다. 쓰지 말라는 규칙이 있고, 규칙을 어기면 빼앗긴다. 보배의 힘에는 규칙이 없다. 그냥 닿을 수 없다. 누구를 벌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손을 잡을 수 없다는 문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힘의 예외는 곧 사랑의 조건이 된다. 세상에 한 사람만 닿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설정이 미리 정해 둔 일이다.
마지막 회는 「도봉순」 14회와 거의 같은 자리에 선다. 창립기념일에 사촌 최도윤이 보배와 윤 비서를 외딴 절에 가두고 호랑에게 약을 탄 술을 먹인다. 호랑은 심정지로 쓰러진다. 보배는 평생 숨겨 온 전기로 문을 부수고 나와 호랑에게 전기를 전부 쏟아붓는다. 호랑은 살고 재수술에 성공한다. 그리고 보배의 몸에서는 그 뒤로 전기가 나오지 않는다. 의사는 보배의 전기가 이제 인공 심장에 과부하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여기서 두 작품이 갈린다. 「도봉순」이라면 하늘에서 빛이 내려올 자리다. 「나를 충전해줘」는 빛을 내려 주지 않는다. 보배는 전기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말없이 대전 부모님 집으로 내려가고, 호랑이 거기까지 찾아와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방법은 자기가 찾을 테니 떠나라는 말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보배는 그 손을 잡고 서울로 돌아온다. 전기는 돌아오지 않은 채다. 마지막 장면은 드라마 작가로 입봉한 보배와 호랑이 나란히 앉아 첫 방송을 보는 것이다.
무엇을 택했는가
「도봉순」은 힘을 택했다. 봉순에게 힘은 자기 자신이고, 작품은 그걸 빼앗았다가 돌려주는 것으로 주인공을 완성한다. 힘을 돌려받은 뒤에야 봉순은 범인 앞에 설 수 있고, 로맨스는 그 뒤에 온다. 민혁이 사과를 대신 썰어 주던 14회의 부엌은 이 작품에서 가장 조용하고 좋은 장면이지만, 작품은 거기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힘 없는 봉순을 받아들이는 남자를 보여 주고는 곧바로 힘을 돌려준다. 받아들임이 결론이 아니라 통과 지점이었던 셈이다.
「나를 충전해줘」는 접촉을 택했다. 보배의 힘은 처음부터 사람을 밀어내는 힘이었고, 그 힘이 사라진 상태는 보배가 평생 바라던 상태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품은 힘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돌려주면 오히려 호랑의 심장에 위험하다는 의사의 말이 그 선택을 설정 안에서 봉인한다. 힘이 없어진 여자가 남자의 손을 잡고 돌아오는 장면이 이 작품의 마지막 한 걸음이다. 「도봉순」에서 그 걸음은 힘이 돌아온 뒤에 왔다.
어느 쪽이 더 잘했는가는 내 질문이 아니다. 다만 어느 쪽이 더 어려운 길이었는가는 말할 수 있다. 「도봉순」의 길은 안전하다. 주인공에게 힘을 돌려주면 보는 사람은 안심하고, 범인을 잡으면 이야기는 닫힌다. 「나를 충전해줘」의 길은 허전하다. 열어 둔 채 끝나는 능력을 비었다고 느낄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도 마지막 회를 보며 잠깐 그랬다. 그러나 두 사람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장면에 전기도 배터리도 없다는 것은 작품이 고른 결론이지 빠뜨린 결론이 아니다. 닿는 것이 목적이었던 이야기가 닿은 채로 끝났다.
반대쪽 논리를 한 번 더 성실하게 적자면 이렇다. 「나를 충전해줘」가 힘을 돌려주지 않은 것은 선택이 아니라, 열 회 안에서 재벌가 암투를 수습하느라 자리가 없었던 결과일 수 있다. 사촌의 퇴장이 음주운전과 경찰 폭행으로 처리되는 걸 보면 그 의심에는 근거가 있다. 나는 그 의심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그래도 화면에 남은 것만 놓고 보면, 아홉 해 전 작품이 하늘의 빛으로 메운 자리를 이 작품은 사람의 손으로 메웠다. 의도였든 사정이었든 그 차이는 화면에 남는다.
힘을 돌려주는 드라마와 돌려주지 않는 드라마. 둘 중 어느 쪽이 사랑 이야기에 더 가까운지, 나는 아직 답을 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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