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91
터미네이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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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 하나, 그리고 쏘지 않은 한 발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 갇힌다. 가둔 사람은 열쇠를 쥐고 그가 틀렸다고 적는다. 이 영화의 앞 삼십 분은 그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1991년의 이 속편을 액션으로 기억하는 당신이 많을 것이다. 액체 금속으로 된 추격자, 제철소의 마지막. 다 맞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다른 데를 봤다.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이 그다음에 무엇을 했는가. 사라 코너 이야기다. 장면 둘만 보겠다.
하나. 여섯 달 뒤에 다시 보자는 말
사라 코너는 페스카데로 주립병원에 갇혀 있다. 죄목은 컴퓨터 회사를 폭파하려 한 것이다. 그가 아는 것을 당신도 안다. 1997년 8월 29일에 기계가 깨어나고 핵이 떨어진다. 그는 그걸 막으려 했고, 그래서 미친 사람이 됐다.
면담 장면을 보라. 담당 의사 실버맨이 틀어 주는 예전 영상 속에서 그는 악몽을 말하며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소리친다. 지금의 그는 다르다. 의사의 무릎은 좀 어떠냐고 묻고, 차분히 앉아 있고, 아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한다. 의사는 거절한다. 경비가 덜한 병동으로 옮기는 것도 안 된다. 여섯 달 뒤에 다시 보자고 한다. 그는 의사의 멱살을 잡는다. 그러고는 다시 묶인다. 감독판에는 직원들이 힘으로 약을 먹이는 장면까지 있다.
여기서 그가 하지 않은 것을 보자. 애원하지 않았다. 자기가 옳다고 다시 설득하지도 않았다. 이미 해 봤고 그 결과가 그 영상이다. 그리고 그가 한 것. 면담 중에 클립 하나를 손에 숨겼다. 그 클립으로 결박을 풀고, 경비봉으로 의사의 팔을 꺾으면서 사람 몸에는 뼈가 215개 있는데 지금 그중 하나라고 말한다. 배수관 세척제를 채운 주사기를 의사에게 들이대고 복도를 걷는다. 구조를 기다린 게 아니다. 구조가 왔을 때 그는 이미 복도에 나와 있었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아들을 만난 순간 그는 안지 않는다. 몸부터 뒤진다. 다친 데가 없는지 확인하고, 왜 위험한 데로 스스로 들어왔냐고 다그친다. 부당한 세월은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 옳았던 사람이 옳기 위해 사람 노릇을 잘라 낸다. 영화는 이걸 숨기지 않는다. 그날 밤 차 안의 세 사람을 두고 한 평은 지옥에서 온 핵가족이라고 불렀다. 맞는 말이다.
둘. 세 발을 쏘고 멈춘 자리
두 번째 장면은 반대편이다. 이번에는 그가 부당한 쪽에 선다.
기계에게서 이름을 듣는다. 마일스 다이슨. 사이버다인의 기술자. 그가 만들고 있는 프로세서가 그 기계들의 시작이 된다. 사라는 악몽을 한 번 더 꾼다. 놀이터, 아이들, 섬광. 깨어나 칼로 탁자에 두 단어를 새긴다. 운명은 없다. 그리고 총을 챙겨 다이슨의 집으로 간다.
다이슨은 집에서 일하고 있다. 아내와 아들이 있다. 사라는 멀리서 조준한다. 첫 발은 빗나간다. 다이슨이 아들의 장난감 자동차를 주우려고 몸을 숙인 순간이었다. 사라는 집 안으로 들어가 권총으로 바꿔 든다. 세 발을 쏜다. 세 번째가 다이슨의 팔을 뚫는다. 아들이 아버지 앞을 막아선다. 아내가 운다. 사라는 쓰러진 남자 위에 서서 다 너 때문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여기서도 그가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을 세어 보자. 조준경 속의 형체였을 때 그는 쏠 수 있었고, 쐈다. 집 안에서 세 발을 더 쐈다. 그런데 아이가 앞을 막아선 남자에게는 다음 한 발을 쏘지 못했다. 못 쐈다는 말이 맞다. 그는 주저앉아 뒤따라온 아들을 안고 운다. 병원 복도에서 하지 않았던 포옹을 여기서 한다. 한 분석은 이 순간 그가 자기를 쫓던 기계가 되어 있었고, 그를 멈춘 것은 묻어 둔 연민이었다고 썼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이슨에게 말한다. 당신 같은 남자들이 수소폭탄을 만들었다고.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뭔지 아느냐고. 생명을 만드는 건 여자들이고, 당신들은 죽음을 만든다고. 거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방금 그 남자를 죽이려다 그만둔 사람이다. 말에 자격이 붙는다.
이 태도가 결말을 바꿨는가. 바꿨다. 다이슨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그는 기계의 팔 속 뼈대를 보고, 자기가 복제하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자기 손으로 회사 건물에 폭약을 설치한다. 경찰의 총에 맞고 더는 버틸 자신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기폭 스위치를 쥔 채 경찰들이 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그가 부순 것은 자기가 만든 것이다. 사라가 그날 밤 다음 한 발을 쐈다면 다이슨은 아무것도 고치지 못한 채 죽었을 것이고, 프로세서는 그대로 남았을 것이다. 추측이지만, 영화는 그렇게 짜여 있다.
마지막은 제철소다. 추격자는 쇳물에 녹고, 기계는 자기도 녹여야 한다고 말한다. 아들이 운다. 기계는 사람이 왜 우는지 이제 알겠다고, 그러나 자기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내리는 손잡이를 쥔 것은 사라다. 병원에서 의사의 팔을 꺾던 손이다. 그 손이 아들의 보호자를 쇳물에 내린다. 엄지가 올라오고, 잠긴다.
그러고 나서 도로다. 사라의 목소리. 기계도 생명의 값을 배웠다면 우리도 배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희망이라고 부르기엔 약한 문장이다. 나는 그게 맞다고 본다. 이 영화는 심판의 날이 취소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른다고 말한다. 모르는 채로 달린다.
당신에게 묻겠다. 지금 어디에 갇혀 있나. 열쇠는 누가 쥐고 있나. 여섯 달 뒤에 다시 보자는 말을 들었나. 그렇다면 클립 하나부터 챙겨라. 그리고 복도 끝에서 누군가의 아이가 앞을 막아서면, 거기서 멈춰라. 둘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라 코너는 둘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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