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91

터미네이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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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수직인 강

지도대장· 2026. 10. 30.· 2,771자

왜 이 영화의 추격전은 강에서 벌어질까? 물이 없는 강에서.

터미네이터 2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는 장면은 아마 트럭과 오토바이의 추격일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의 홍수 조절 수로, 그러니까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고 평소에는 바닥이 드러나 있는 콘크리트 강이다. 나는 이 장면을 액션이 아니라 공간으로 다시 봤다. 이 수로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생김새가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를 어떻게 정해 버리는지.

먼저 생김새다. 바닥은 평평한 콘크리트다. 양쪽 벽은 수직에 가깝다. 폭은 촬영지 기준으로 12미터쯤 된다고 한다. 위로는 도로가 지나가고, 중간중간 다리가 수로를 가로지른다. 이 공간에는 옆으로 나가는 문이 없다.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가거나, 둘뿐이다.

우리가 아는 공간 중에 이런 곳이 셋 있다. 지하주차장의 내리막 경사로. 아파트의 긴 복도. 그리고 고속도로. 셋 다 들어서는 순간 방향이 둘로 줄어드는 곳이다. 경사로에서는 뒤차가 밀면 앞으로 갈 수밖에 없고, 복도에서는 누가 양 끝을 막으면 끝이고, 고속도로에서는 다음 출구까지는 어떻게든 달려야 한다. 수로는 이 셋을 합쳐 놓은 것이다. 길고, 벽이 높고, 출구가 멀다.

터미네이터 2 스틸컷

장면 하나. 아이가 작은 오토바이로 수로에 뛰어든다. 쫓는 쪽은 대형 견인 트럭이다. 트럭은 수로 위 도로를 달리다가 난간을 부수고 수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온다. 그 순간부터 두 탈것은 같은 바닥 위에 있다. 폭이 12미터면 오토바이가 좌우로 피할 여지는 있지만, 트럭의 폭이 그 여지를 거의 다 먹는다. 아이는 앞으로만 달린다. 뒤를 돌아볼 틈도 없다. 이 공간에서는 빠른 쪽이 이기는 게 아니라 큰 쪽이 이긴다. 벽이 양옆을 막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장면 둘. 덩치 큰 보호자가 큰 오토바이를 타고 수로 옆 흙길을 달리다가 수로 안으로 뛰어내린다. 그리고 트럭과 아이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여기서 공간이 관계를 정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보호자가 수로 바깥 둑에 있을 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높이가 다르면 같은 싸움에 끼지 못한다. 그가 쓸모 있어지는 순간은 그 수직 벽을 넘어 바닥으로 내려왔을 때다. 지켜 주려면 같은 바닥에 서야 한다는 말을 이 수로가 그대로 보여 준다. 추격은 트럭이 다리 교각을 들이받고 터지면서 끝난다. 수로의 끝이 아니라 수로를 가로지르는 구조물이 끝을 냈다.

제작 뒷이야기를 조금 찾아봤다. 촬영은 로스앤젤레스 샌퍼낸도 밸리의 실제 수로에서 했고, 물을 다른 데로 돌려 바닥을 말린 뒤 찍었다고 한다. 추격 장면 하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로 여러 구간, 합쳐서 16킬로미터쯤을 나눠 찍어 이어 붙인 것이다. 트럭이 난간을 뚫고 떨어지는 장면은 미리 만든 경사로와 석고 벽으로 한 번에 찍었는데, 시속 60마일로 달려 9미터 아래로 떨어졌고 촬영 허가 시간이 10분 남았을 때 성공했다고 한다. 오토바이가 수로로 뛰어내리는 장면은 너무 위험해서 오토바이와 사람을 함께 내려 주는 장치를 썼고, 나중에 줄을 지웠다.

이 뒷이야기가 공간 얘기와 무관하지 않다. 수로 여러 구간을 이어 붙여도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공간의 성격이다. 어디를 잘라 붙여도 같은 벽, 같은 바닥, 같은 방향이다. 균질한 공간은 편집에 유리하다. 반대로 말하면, 균질한 공간 속의 인물은 어디로 가도 같은 자리에 있는 셈이다. 아이가 아무리 달려도 풍경이 바뀌지 않는다. 그게 이 장면이 주는 압박이다.

터미네이터 2 스틸컷

그렇다면 가설 하나. 이 영화의 공간은 전부 수로 같은 곳인가. 쇼핑몰 뒷복도도 그렇다. 아이가 오락실에서 도망쳐 들어간 서비스 복도는 좁고 길고 양 끝에 사람이 선다. 앞에는 꽃 상자를 든 남자, 뒤에는 경찰. 수로와 같은 구조다. 출구가 둘뿐이고 둘 다 막혔다.

절반만 맞다. 영화 마지막의 제철소가 정반대 공간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폰타나에 있던 실제 폐제철소에서 찍었는데, 이곳은 수평이 아니라 수직이다. 통로가 위아래로 겹치고, 사람들은 사슬과 난간을 붙들고 오르내리며, 그 아래에 쇳물 통이 있다. 수로에서는 앞뒤 둘뿐이던 방향이 여기서는 위아래까지 생긴다. 그리고 쇳물. 바닥이 평평하고 단단하던 수로와 달리, 제철소의 바닥에는 떨어지면 끝나는 구멍이 있다. 참고로 그 쇳물은 진짜가 아니라 물과 기름을 담은 통에 조명을 비추고 공기 방울을 넣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사실을 알고 봐도 뜨거워 보인다.

그래서 바뀐 공간이 무엇을 바꿨는지 보자. 수로에서는 큰 쪽이 이겼다. 제철소에서는 다르다. 액체 금속으로 된 추격자는 수로에서 트럭이 터져도 불 속에서 멀쩡히 걸어 나왔다. 평평한 바닥 위에서는 그를 멈출 방법이 없었다. 제철소의 수직 공간, 그중에서도 아래로 떨어지는 구멍이 처음으로 그를 끝낸다. 공간으로 보면 이 영화는 평평하고 벽이 높은 곳에서 시작해서, 층이 있고 바닥에 구멍이 있는 곳에서 끝난다. 평면에서는 쫓기기만 하던 사람들이 입체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쫓는 쪽을 끝낸다.

터미네이터 2 스틸컷

이 영화를 추격 영화라고 부르는 건 쉽다. 그런데 어디서 쫓기느냐를 빼면 추격은 다 같은 추격이다. 벽이 수직인 강에서 쫓기는 것과 계단이 많은 공장에서 쫓기는 것은 다른 일이다. 전자는 달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고, 후자는 어디로 올라가고 어디로 떨어뜨릴지 고를 수 있다. 고를 수 있는 공간에 들어서야 사람은 비로소 뭔가를 한다.

물이 없는 강에서 추격전을 벌인 이유로 돌아가 보자. 아마 답은 간단할 것이다. 거기에는 옆으로 빠질 길이 없기 때문이다. 쫓는 자에게 가장 좋은 공간이 쫓기는 자에게는 가장 나쁜 공간이고, 영화는 그 둘을 한 화면에 넣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화면을 1991년의 로스앤젤레스가 이미 콘크리트로 지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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