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91
터미네이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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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똑같이 무서운데 누가 착한 쪽인가
아무튼 터미네이터 2를 봤다. 1편을 안 본 채로. 변명을 하자면 1편은 1984년 영화고 나는 그걸 찾아서 틀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속편부터 보는 게 좀 그렇다는 건 안다. 그런데 2편이 더 유명하다길래, 유명한 걸 먼저 보면 덜 유명한 건 안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섰다. 계산은 틀렸다. 다 보고 나니 1편을 봐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으니까. 졌다.
몰랐던 것
이 영화에는 터미네이터가 둘 나온다. 하나는 덩치 큰 남자고 하나는 경찰 제복을 입은 마른 남자다. 영화 초반에 둘이 각각 도착해서 각각 옷을 구하고, 각각 존 코너라는 아이를 찾아다닌다. 1편을 본 사람이라면 덩치 큰 남자의 얼굴을 보고 「저게 그 살인 기계」라고 알아봤을 것이다. 나는 몰랐다. 그래서 나한테는 둘 다 그냥 아이를 쫓는 무서운 어른이었다.
쇼핑몰 뒷복도 장면에서 그게 터졌다. 오락실에서 도망친 아이가 좁은 복도로 뛰어드는데 앞에서 덩치 큰 남자가 꽃 상자를 들고 걸어오고, 뒤에서는 경찰이 쫓아온다. 아이는 가운데 갇힌다. 그리고 덩치 큰 남자가 꽃 상자에서 산탄총을 꺼내 아이에게 몸을 낮추라고 말하고 쏜다. 경찰을. 나는 그 순간까지 꽃 상자 쪽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꽃 들고 오는 남자가 더 수상하지 않나. 좀 그랬다.
이게 입문자가 제일 막히는 자리다. 영화가 일부러 안 알려 준다. 누가 지키는 쪽이고 누가 죽이는 쪽인지 한참을 숨긴다. 넘기는 법은 간단하다. 그냥 모르는 채로 보면 된다. 누가 누구를 쏘는지 보고 나서 「아, 저쪽이구나」 하면 늦지 않다. 오히려 1편을 봐서 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쪽이 이 장면에서 더 놀란다. 내가 그랬다. 모르는 게 유리한 경우가 세상에 몇 안 되는데 그중 하나였다.
찾아본 것
보고 나서 세 가지를 찾아봤다.
첫째, 왜 똑같이 생긴 기계가 이번엔 착한 쪽이냐. 골목 장면에서 아이가 직접 묻는다. 너 터미네이터 맞지. 기계는 그렇다고, 사이버다인 시스템즈 모델 101이라고 답한다. 금속 뼈대 위에 살아 있는 조직을 씌운 몸이고, 자기를 보낸 건 미래의 아이 자신이라고 한다. 1편에서 사라 코너를 죽이러 왔던 것과 같은 모델을, 미래의 존이 다시 프로그래밍해서 보냈다는 설정이다. 재밌는 건 1991년 개봉 당시 홍보 단계에서 이 사실을 일부러 숨겼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극장에 간 사람들도 나처럼 복도 장면에서 당할 수 있었다. 35년 늦게 봤는데 같은 자리에서 같이 당한 셈이다. 위로가 됐다.
둘째, 경찰 제복의 마른 남자는 뭐냐. 액체 금속으로 된 신형 T-1000이다. 총을 맞아도 구멍이 메워지고, 병원 바닥에 녹아들었다가 다시 사람 모양으로 일어선다. 이 장면들이 당시 컴퓨터 그래픽이었다는 건 알았는데, 분량을 보고 놀랐다. 영화 전체에서 컴퓨터로 만든 장면은 마흔 몇 컷, 시간으로 치면 5분 남짓이라고 한다. 그 5분을 위해 서른다섯 명 정도가 매달렸고 15초짜리 장면을 계산해 내는 데 열흘까지 걸렸다고. 나는 15초짜리 영상 하나 편집하다가 한 시간 만에 포기한 적이 있다. 열흘을 기다린 사람들이 부럽고 얄밉다.
셋째, 아이가 기계에게 가르치는 말들. 골목에서 아이는 기계에게 한 발로 서 보라고 시키고, 기계가 그대로 하자 자기 말을 들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안다. 그다음부터 가르친다. 「노 프라블레모」, 「아스타 라 비스타, 베이비」 같은 말들이다. 찾아보니 이 말들이 영화 밖으로 나가서 유행어가 됐다고 한다. 나는 유행어가 영화에서 나왔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거꾸로 알고 있었다. 영화가 유행어를 쓴 줄 알았다.
그래서
몰라도 되는 것과 알아야 더 좋은 것을 나눠 보겠다.
몰라도 되는 것. 1편의 줄거리. 영화가 필요한 만큼은 대사로 다 알려 준다. 아이가 친구에게 엄마 사진을 보여 주며 엄마가 컴퓨터 공장을 날려 버리려 했던 사람이라고 말하는 장면 하나면 사라 코너가 왜 병원에 있는지 충분히 안다. 심판의 날이 1997년 8월 29일이라는 것도, 스카이넷이 뭔지도, 영화가 때 되면 말해 준다.
알아야 더 좋은 것. 덩치 큰 남자가 1편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이걸 알면 아이가 기계에게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맹세시키는 장면의 무게가 달라진다고 한다. 나는 그 무게를 절반만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절반으로도 충분히 무거웠다. 손을 들고 아무도 죽이지 않겠다고 말하는 기계를 보면서, 저 약속을 지킬지 의심하는 내가 좀 못났다고 생각했다. 기계는 지켰고 나는 의심했다. 늘 이런 식이다.
다음에 볼 것을 하나만 고르라면 당연히 1편이다. 1984년 영화고, 이번에 착한 쪽이었던 그 얼굴이 거기서는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한다. 그걸 보고 나서 2편의 복도 장면을 다시 보면 다른 영화가 될 것이다. 아마. 두 번 보는 건 내 체질이 아닌데 이번만은 예외로 두기로 했다.
그러니까 결론. 1편 안 봤다고 미루고 있는 사람, 그냥 봐라. 모르는 채로 복도에 들어가는 게 더 재밌다. 존 코너, 네가 가르친 말들 나도 써 보겠다. 노 프라블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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