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극장판 치이카와 : 인어 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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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그냥 삼킨다고
먼저 밝혀 두자면 나는 비밀을 못 지킨다. 누가 말하지 말라고 하면 그날 밤을 못 넘긴다. 입이 가벼운 게 아니라 속이 좁은 거다. 알고만 있으면 체하는 체질이라서 그렇다.
아무튼 이 영화를 봤다. 작고 둥근 것들이 전단지 한 장 보고 섬으로 간다. 간단한 토벌 몇 번에 보수 백 배라고 적혀 있다. 그 말에 넘어가서 배를 탄다. 가는 길에 주인공은 뱃멀미를 하고, 섬 사람 둘이 탄산음료를 건네준다. 그 한 병으로 친구가 된다. 시작이 그렇게 순하다.

섬은 잔치로 맞아 준다. 포장마차가 깔리고 주민들이 노래를 부른다. 근데 섬에서는 사람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주민들은 동굴에 사는 걸 범인으로 찍어 놨다. 일행은 그걸 치우러 불려 온 거다. 보수 백 배의 정체가 그거다.
먼저 나서는 건 일행의 스승이다. 치지 않고 말을 붙여 보려고 한다. 그러다 붙잡힌다. 말로 풀어 보자는 쪽이 제일 먼저 없어지는 건 어느 이야기나 비슷하다. 그래서 남은 것들이 동굴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터는 이 작품이 자기 주인공한테 시킨 일을 좀 생각해 봤다. 이 주인공은 말을 거의 안 한다. 원래도 길게 말하는 애가 아니다. 짧은 소리 하나, 눈 한 번, 그게 다다. 그 재료로 아흔아홉 분을 끌고 가야 한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대본인지 아는가. 회의실에 발언권 없이 두 시간 앉혀 놓는 거랑 비슷하다. 근데 표정은 계속 지으라고 한다. 졸면 안 되고, 딴생각하는 티를 내도 안 된다. 심지어 얼굴은 선 몇 개로 그려져 있다. 쓸 수 있는 건 숨소리밖에 없다.
할 게 없으면 사람은 괜히 뭘 한다. 눈썹을 올렸다 내린다. 한숨을 쉰다. 먼 데를 본다. 고개를 괜히 한 번 젓는다. 나는 전화할 때 아무도 안 보는데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나 지금 듣고 있어요'를 몸으로 증명하려는 짓인 거다.
중간에 주인공이 혼자 길을 잃는 대목이 있다. 섬에서 밥 파는 아저씨를 만나서 따뜻한 한 끼를 얻어먹는다. 거기서도 긴 대사가 없다. 받아서 먹는다. 그게 다다. 근데 그 장면이 뒤에 나올 것들을 다 받쳐 준다.
진짜 얘기는 그다음이다. 주인공이 다친 쪽을 돌보고 있다. 그때 다른 하나가 몰래 와서 쓰러진 몸에 뭔가를 갈아 끼운다. 주인공이 그걸 본다. 여기서 보통은 숨을 들이켠다. 짧게 '헉' 소리를 내든지, 뒤로 한 발 물러나든지 한다.
안 한다. 그냥 본다. 소리를 안 낸다. 몸도 안 움직인다. 화면에 남는 건 눈뿐이다. 나는 그 대목에서 좀 억울했다. 저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제일 어려운 건데 아무도 안 알아줄 것 같아서.
그러고 나서 주인공은 그 집에서 비늘을 찾아낸다. 앞뒤가 맞아 버린다. 이제 다 안 거다. 아는 걸 혼자 안고 있는 상태가 된 거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바로 그 상태다.
제일 좋았던 건 축제 장면이다. 섬에서 불을 놓고 불꽃이 올라간다. 머리에 풀을 엮어 쓰고 앉아서 그걸 본다. 주인공은 두 사람한테 말을 하려고 한다. 입을 떼려는 순간에 친구가 다가온다. 그래서 안 한다.
말을 삼키는 건 보통 목으로 한다. 꿀꺽 소리를 내거나 눈을 한 번 감거나. 여기선 그것도 없다. 그냥 말이 안 나온다. 안 나오는 걸 소리로 만들어야 하는 거다. 나는 그 '안 나옴'에서 졌다.
친구한테 이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거 애들 보는 거 아니야" 그런다. 맞다. 전체 관람가다. 나는 뭐라고 더 붙이려다가 말았다. 설명할수록 내가 더 이상해지는 종류의 얘기가 있다.
근데 그 친구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애들 보라고 만든 거 맞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애들 앞에서 그 장면을 그냥 한다. 알고도 말 안 하고 끝내는 걸 그대로 보여 준다. 봐주는 구석이 없다. 그게 좀 서늘했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비밀을 안고 배를 탄다. 손에는 비늘이 있다. 주머니를 연다. 바람이 분다. 비늘이 날아간다.
여기서도 안 하는 게 있다. 보통은 손을 뻗는다. 아, 하고 소리를 낸다. 난간 쪽으로 한 발 간다. 아무것도 안 한다. 그냥 날아가게 둔다. 그 둘 사이의 차이가 이 영화 전부라고 생각한다.
자막 뒤에 한 장면이 더 붙어 있다. 도망친 두 사람이 새 동굴을 찾고 좋아한다. 화면이 바다 쪽으로 돌면 쫓아온 것들이 이미 와 있다. 거기엔 주인공이 없다. 배 위에서 할 일을 다 끝낸 거다.
나는 이걸 보고 아까 말한 내 못난 점을 다시 생각했다. 나는 비밀을 못 지킨다. 못 지키는 이유는 하나다. 혼자 안고 있는 게 무서워서다. 말해 버리면 내 것이 아니게 되니까 편해지는 거다. 저 둥근 건 그걸 끝까지 제 것으로 뒀다. 좀 그랬다.
아는 걸 말 못 하고 혼자 삭이는 사람들아. 입이 근질거려서 밤에 뒤척이는 사람들아. 오늘은 그냥 한 번 삼켜 보자. 아흔아홉 분 동안 그걸 해낸 게 있으니까 우리도 하루쯤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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