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극장판 치이카와 : 인어 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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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백 배
극장판 치이카와를 봤다. 아흔아홉 분이다. 전체 관람가고, 자막이 다 오른 뒤에 한 장면이 더 붙어 있다. 보는 동안 별생각이 없었다.
작고 둥근 것들이 전단지 한 장을 보고 섬에 간다. 가서 먹고, 싸우고, 비밀을 알고, 돌아온다. 끝. 중간에 상황을 정리해 주는 인물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래서 편했다.
원작은 삼 년 전쯤 연재된 섬 이야기라고 한다. 원작자가 각본을 직접 썼다. 평소 일 분짜리 짧은 걸 그리던 사람이 아흔아홉 분을 쓴 거다. 그래서인지 장면이 뚝뚝 끊긴다. 끊기는 게 싫지는 않았다.

전단지 문구를 좀 오래 봤다. 보수 백 배. 섬에서만 나는 음식은 거의 공짜. 할 일은 간단한 토벌 몇 번. 회사 다녀 본 사람은 안다. 간단하다고 적힌 일이 간단했던 적이 없다.
보수가 큰 일은 보수가 큰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공고문에 안 적힌다. 적으면 아무도 안 오니까. 섬은 그걸 알고 썼다. (나도 비슷한 문구를 써 본 적 있다.)
섬에는 노래로 풀을 자라게 하는 게 하나 산다. 그 풀이 섬 특산물이 됐고, 그 특산물 먹으러 사람이 들어왔다. 그러니까 섬 살림 전체가 목청 하나에 매달려 있었던 거다. 한 사람 손에 실적이 전부 걸린 부서를 본 적 있다. 그 부서는 그 사람 기분을 늘 살폈다.
섬에 밥집이 하나 있다. 콧수염 난 아저씨가 혼자 한다. 앞치마에는 맛 자랑이라는 뜻의 글자가 박혀 있고, 벽에는 조갯국이라 쓴 나무판이 걸려 있다. 손님은 안 보인다. 아저씨는 의자에 앉아 자기가 끓인 걸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길을 잃은 주인공이 여기서 한 끼를 얻어먹는다. 나중에는 붙잡힌 것들을 꺼내러 간다. 이 아저씨가 영화에서 하는 일은 그 두 가지다. 섬에서 제일 멀쩡한 게 밥 파는 사람이었다. 좀 웃겼다.
주인공과 금세 친해지는 섬 사람 둘이 있다. 배에서 멀미하는 쪽에 탄산음료를 건넨 둘이다. 둘은 말을 안 한다. 얼굴도 거의 없다. 처음 구상에는 얼굴도 대사도 있었는데, 원작자가 말이 너무 많다고 느껴서 지웠다고 한다.
지우고 나니까 둘은 둥근 덩어리가 됐다. 친절한 배경 같은 거다. 그런데 이 섬의 비밀을 쥐고 있는 게 그 둘이다. 배경인 줄 알았던 쪽이 배경이 아니었던 거다. 말을 뺀 자리에 비밀을 넣은 건 영리했다.
일행이 쥐는 연장도 좀 봤다. 하나는 자루 긴 갈고리, 하나는 끝이 갈라진 작살, 하나는 국자처럼 생긴 거다. 셋 다 몸보다 길다. 쥔 손은 작다. 장비를 받았다고 일이 쉬워지는 건 아니라는 걸 저 그림이 다 설명한다.
먼저 나서는 건 일행의 스승이다. 치지 말고 말로 해 보자는 쪽이다. 그러다 붙잡힌다. 그런 사람이 제일 먼저 없어지는 것도 어디서 본 수순이다.
같은 소재를 요즘 예능이 가져갔다면 어땠을까. 섬 들어가는 배부터 찍는다. '보수 백 배의 섬'이라는 자막이 뜬다. 포장마차 먹방이 길게 나오고, 스튜디오 패널들이 감탄한다. 주민 인터뷰가 붙고 '30년 지킴이' 같은 자막이 따라붙는다.
그다음에 사라진 이웃 얘기가 나온다. 음악이 깔리고 주민이 운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이라는 자막이 받는다. 전문가가 몰래 온 손님처럼 들어와 한마디 한다. 마지막은 다 같이 불꽃놀이를 보고 끝난다. 누가 그 이웃을 없앴는지는 끝내 안 나온다.
섬은 이웃이 사라진 일을 제 손으로 처리하지 않고 보수 백 배라고 적은 종이를 바다 건너로 뿌려서 사정을 하나도 모르는 바깥 것들을 불러들였고, 그것들이 제 몸보다 긴 연장을 끌고 동굴로 들어가는 동안 정작 섬 사람들은 포장마차 뒤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그게 이 영화의 구조다. 위험한 일은 바깥에서 사 온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대목에서 아무도 혼내지 않는다. 섬 사람들을 악당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사과받는 장면이 없다. 주인공은 범인을 알고도 말하지 않는다. 고발이 없으니 응징도 없다.
보통은 여기서 누가 울면서 다 털어놓는다. 그러면 보는 쪽이 편해진다. 이 영화는 그걸 안 해 준다. 끝까지 안 해 준다. 불편한 채로 내보낸다. 전체 관람가인데 그렇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배를 탄다. 주머니에 비늘이 한 장 들어 있다. 주머니를 열고, 바람이 불고, 비늘이 날아간다. 쫓아가지 않는다. 그러고 끝난다.
자막 뒤의 한 장면에서는 도망친 둘이 새 동굴을 찾고 좋아한다. 화면이 바다 쪽으로 돌면 쫓아온 것들이 이미 와 있다. 이건 좀 친절했다.
보수 백 배라는 문구를 한참 생각했다. 그런 공고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있었으면 나도 배를 탔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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