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9

더 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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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잔

정담뜰· 2026. 10. 13.· 3,041자

책상 위 물잔에서 알약이 녹았다. 거품이 잔의 벽을 타고 올라왔다. 사내는 잔을 보고 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사내는 듣지 못했다. 옆자리 동료가 사내의 팔을 쳤다. 사내는 귀에 걸린 수화기의 단추를 눌렀다. 긴급 신고 센터입니다, 하고 사내가 말했다.

사내는 경찰이다. 사내는 사람을 쏜 일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재판은 다음 날 아침이다. 그때까지 사내는 거리에 나가지 못한다. 사내는 책상 앞에 앉아 전화를 받는다. 그것이 지금 사내의 밥벌이다. 사내의 손에는 총이 없다. 사내의 손에는 가늘고 검은 송화기가 있다. 사내는 송화기를 입가로 당겨 말하고, 손가락으로 그것을 밀어 올려 듣는다. 사내는 밤새 한 자리에 앉아 있다. 몸은 앉아 있고 말은 달린다.

첫 전화는 약을 먹고 몸이 이상해진 남자였다. 사내는 남자에게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냐고 말했다. 사내는 전화를 끊었다. 다음 전화는 차 안에서 여자에게 물건을 털린 남자였다. 사내는 남자가 있는 곳이 홍등가라는 것을 화면에서 읽었다. 사내는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순찰차를 보냈다. 서두르지 않고 보냈다. 사내는 전화 너머의 사람을 판단했다. 판단은 빨랐다. 손은 느렸다.

순찰차를 부르려고 사내가 건 전화를 상관이 받았다. 상관도 그날 밤 전화 당번이었다. 둘은 홍등가의 남자를 두고 잠깐 웃었다. 상관은 차를 보내겠다고 했다. 사내는 송화기를 밀어 올렸다. 웃음은 짧았다. 사내의 얼굴은 곧 돌아왔다. 이 방에서 사람들은 먹고, 웃고, 전화를 받았다. 사내는 먹지 않았다. 사내는 물에 녹는 알약을 보고 있었다.

사내의 개인 전화기도 울렸다. 변호사였다. 변호사는 내일 법정에서 할 말을 이야기했다. 사내는 근무 중에 그 전화를 받았다. 그것은 규정에 어긋났다. 사내는 전화를 끊고 다시 송화기를 당겼다. 사내의 밤은 두 개의 전화기 사이에 있었다. 한쪽은 남의 일이었다. 한쪽은 제 일이었다.

더 길티 스틸컷

세 번째 전화는 여자였다. 여자는 아이에게 말하듯 말했다. 사내는 끊으려 했다. 사내는 끊지 않았다. 사내는 묻는 말을 바꾸었다. 예와 아니오로만 답할 수 있는 말을 물었다. 여자는 흰 승합차 안에 있었다. 차는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전화가 끊겼다. 사내는 화면의 지도에서 발신 위치를 보았다. 사내는 그 지역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저쪽은 흰 승합차 한 대를 세웠으나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사내는 여자의 번호로 여자의 집을 찾았다. 여섯 살 난 딸아이가 전화를 받았다. 아이는 아버지가 왔고, 흰 차를 몰았고, 어머니를 데려갔다고 말했다. 아이는 동생 방에서 큰 소리가 났다고 말했다. 사내는 아이에게 동생 옆에 앉아 있으라고 말했다. 사내는 그 집에 순찰차를 보냈다. 이번에는 서둘렀다. 순찰차가 집에서 본 것을 사내는 귀로 들었다. 아이의 몸에 피가 묻어 있었다. 아이의 몸에 상처는 없었다. 피는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아기는 죽어 있었다.

교대 시간이 되었다. 동료가 야간조가 왔다고 말했다. 사내는 마무리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사내는 창의 가리개를 내렸다. 사내는 옆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에는 사내 혼자였다. 사내는 그 방에서 전화를 걸고 받았다. 나중에 그 방의 불이 나갔다. 사내는 어둠 속에서 송화기에 대고 말했다. 책상 위의 작은 등이 붉게 켜져 있었다.

더 길티 포스터

사내는 승합차 안의 여자에게 말했다. 손에 잡히는 것으로 남자의 머리를 치라고 말했다. 그리고 도망치라고 말했다. 여자는 그렇게 했다. 머리를 맞은 남자가 신고 센터로 전화를 걸어 왔다. 사내는 남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사내는 전화를 끊었다. 사내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사내는 사람을 구하려 했다. 지키는 것과 구하는 것이 한 책상 위에 있었다. 사내가 쥔 것은 송화기 하나였다. 송화기 하나로 사내는 한 사람의 머리를 치게 했다.

사내는 쉬는 날인 옛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자의 집에 들어가 보라고 했다. 동료는 들어갔다. 동료는 남자가 아이들을 만날 권리를 잃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동료는 여자가 정신병원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사내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사내는 남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머리를 맞고 길에 서 있었다. 여자는 달아나고 없었다. 사내는 남자에게 어디냐고 물었다. 조금 전에 사내가 소리를 질렀던 남자였다.

이 영화에서 사내가 아는 것은 전부 귀로 들어온다. 사내는 승합차를 보지 못했다. 집을 보지 못했다. 피 묻은 아이를 보지 못했다. 나도 보지 못했다. 영화는 사내가 있는 방 밖으로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여자의 숨소리와 빗소리와 차창을 쓸어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들은 것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틀렸다. 여자는 납치된 것이 아니었다. 남자는 여자를 병원으로 데려가던 길이었다. 아기를 그렇게 만든 손은 여자의 손이었다. 여자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하였다.

마지막에 여자가 다리 위에서 전화를 걸어 왔다. 여자는 자기가 한 일을 그제야 알았다. 여자는 다시 갇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사내는 여자에게 자기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사람을 쏘았다고 말했다. 열아홉 살이었다고 말했다. 정당방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바깥 자리의 동료들이 그 말을 들었다. 사내는 여자에게 경찰이 가고 있으니 그들에게 가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소리를 거의 다 지운다. 여자의 목소리만 남는다. 그것도 끊긴다. 사내는 송화기를 쥔 채 앉아 있었다.

나는 이 영화가 보여 준 노동이 듣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듣는 일은 몸을 쓰는 일이었다. 화면은 사내의 목덜미와 손을 가까이서 보여 주었다. 손가락이 번호판을 세게 눌렀다가 다시 천천히 눌렀다. 나는 사내의 판단이 틀린 자리에서 사내의 몸이 가장 많이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말은 앞서 갔다. 몸은 뒤에 남았다.

얼마 뒤 그 지역 경찰이 전화를 걸어 왔다. 여자를 데리고 있다고 했다. 잘했다고 했다. 사내는 일어섰다. 동료들이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전화를 한 통 더 걸었다. 그 전화가 누구에게 간 것인지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사내는 복도를 걸어 나갔다. 복도 끝의 문이 밝았다.

나는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말할 수 없다. 사내는 밤새 앉아 있었다. 책상 위 물잔에서 알약이 녹았다. 사내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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