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9

더 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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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만 있는데 왜 내가 땀이 나나

삐뚜름관람· 2026. 10. 13.· 3,052자

먼저 밝혀 두자면 나는 남의 말을 끝까지 못 듣는다. 상대가 세 문장째로 넘어가면 머릿속에서 이미 대답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자주 엉뚱한 대답을 하고, 더 자주 혼이 난다. 듣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묻는 사람들아, 어렵다. 진짜로.

아무튼 더 길티를 봤다. 덴마크 영화다. 코펜하겐 긴급 신고 센터의 야간 근무자가 주인공인데, 원래는 거리에서 일하던 경찰이고 무슨 사건으로 재판을 앞두고 책상에 앉혀진 사람이다. 재판은 내일 아침이다. 그런데 오늘 밤 전화 한 통이 온다. 한 여자가 아이한테 말하듯 조용히 말하고, 이 사람은 그게 납치라는 걸 알아챈다. 흰 승합차, 북쪽으로. 거기서부터 끝까지 이 아저씨가 하는 일이 전화를 받는 거다. 진짜로. 헤드셋 끼고, 앉아서. 85분이다. 승합차도 안 나오고, 여자의 집도 안 나오고, 납치범 얼굴도 안 나온다. 전부 목소리다. 화면에 있는 건 이 사람 얼굴 하나다. 우리나라에는 2019년 봄에 개봉했다. 나는 그때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밤새 앉아서 전화 받는 영화라는 설명만 듣고는 안 봤을 거다. 봤으면 좋았을 텐데.

더 길티 스틸컷

이게 얼마나 무서운 대본인지 아는가. 직장인한테 모니터랑 키보드를 치우고, 대신 카메라를 코앞에 붙여 놓고 하루 종일 전화만 받으라는 거랑 비슷하다. 그것도 우는 손님 전화만. 이걸 13일 만에, 카메라 세 대로, 대본을 여덟 덩어리로 나눠 짧게는 5분 길게는 35분짜리로 통째로 찍었다고 한다. 35분 동안 컷 없이 전화를 받는 거다. 게다가 전화 상대 배우들은 목소리로만 따로 녹음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눈앞에 울어 주는 상대 배우가 없다. 귀에 들리는 목소리에 얼굴로만 대답해야 한다. 학교 다닐 때 짝이 결석한 날 혼자 하는 역할극이랑 비슷하다. 그걸 85분 하는 거다. 할 게 없을 때 사람은 괜히 뭘 한다. 눈썹을 올린다. 한숨을 쉰다. 헤드셋을 괜히 고쳐 쓴다. 먼 데를 본다. 볼펜을 돌린다. 나 같으면 이 다섯 가지를 1분 안에 다 하고 여섯 번째를 찾고 있었을 거다.

이 배우는 안 한다. 영화의 첫 쇼트가 이 사람 귀다. 귀에서 카메라가 느릿느릿 물러난다. 그다음부터 카메라는 손에 들린 채로 이 얼굴에 붙어 있고, 이 얼굴은 85분 동안 한 번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이지 않는다. 못하는 배우는 여기서 일어난다. 답답하니까. 걸으면서 전화를 받고, 벽을 짚고, 뭐라도 한다. 이 배우는 안 일어난다. 자리를 옮기긴 한다. 책상 여섯 개랑 정수기가 있는 사무실에서 더 어둡고 구석진 책상으로. 야간조가 들어오면 옆의 작은 방으로. 블라인드 뒤로 들어간다. 그게 다다. 창 하나 가려지는 게 이 영화에서 제일 큰 사건이다. 못하는 배우라면 여기서 뭔가 보여 주려고 했을 거다. '나 지금 집중할 거야'. 이 배우는 그냥 더 어두운 데로 간다. 그래서 그 뒤의 어둠이 무섭다. 점점 작은 방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작게 움직인다. 방이 좁아지는 만큼 동작을 줄이는 거다. 부럽고 얄밉다. 나는 앉아서 전화 한 통만 받아도 다리를 떤다. 대기 음악이 나오면 일어나서 돈다. 이 사람은 재판 전날 밤에 그 긴 통화를 하면서 의자에서 안 떨어진다.

더 길티 포스터

헤드셋 얘기를 해야겠다. 어느 평은 이 사람이 헤드셋을 개 목 보호대처럼 쓰고 있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수술한 개가 제 상처를 못 핥게 씌우는 그 고깔 말이다. 이 사람은 그걸 쓰고 밤새 남의 상처를 듣는다. 제 상처는 못 핥고. 그러는 동안 땀이 난다. 이마에 맺힌 땀이 화면에 보일 만큼 카메라가 가깝다. 얼굴은 거의 안 움직이는데 땀이 대신 움직인다. 나는 땀을 연기로 쳐 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근데 그 땀을 보고 있으니까 내 등이 축축해졌다. 그건 안다. 남이 땀 흘리는 걸 보고 내가 축축해지는 영화는 흔치 않다.

제일 좋았던 장면은 사과하는 장면이다. 이 사람은 밤새 전화기에 대고 못되게 군다. 약 먹고 전화한 남자한테는 네 잘못 아니냐고 한다. 그런 사람이 중간에 동료한테 사과를 한다. 그것도 정식으로. 못하는 배우는 여기서 사과를 멋있게 한다. 눈을 내리깔고, 목소리를 깔고, '나 지금 반성하고 있어요'. 이 배우는 사과를 못하는 사람처럼 사과한다. 어색하다. 받는 쪽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른다. 이 사무실의 누구도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다는 게 그 사과 하나로 보인다. 나는 그 어색한 사과에서 졌다. 사과를 잘하는 연기보다 못하는 연기가 백배 어렵다. 못하는 척을 하는 순간 티가 나니까.

하나 더. 여섯 살 아이와 통화하는 장면이 있다. 아이는 엄마를 다시 보고 싶다고 조른다. 화면에 아이는 없다. 아이 목소리와 이 사람 얼굴뿐이다. 나는 여기서 울 줄 알았다. 이 사람이 아니라 내가. 못하는 배우는 여기서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슬퍼 보이니까. 이 배우가 거기서 뭘 했는지 나는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아이 목소리만 기억난다. 자기 얼굴이 화면에 꽉 차 있는데 보는 사람이 목소리 쪽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 그게 이 배우가 한 일이다. 세 문장째에 대답을 만들어 놓는 나 같은 사람은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듣는 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가만히 있는 걸 끝까지 하는 거다.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범인은 잡아?" 나는 대답을 못 했다. 그게 그런 영화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그 질문이 이 영화에서 제일 안 중요한 질문인데 왜 안 중요한지 설명할 길이 없어서. 친구가 다시 물었다. "앉아서 전화만 받는데 왜 긴장이 돼?" 그건 설명이 된다. 이 아저씨가 끝까지 안 일어나서 그렇다. 친구는 못 알아들었다. 나도 설명하면서 못 알아들었다. 근데 맞는 말이다. 사람이 안 일어나면 보는 쪽이 대신 일어나고 싶어진다. 그게 이 영화의 긴장이다. 내가 대신 떨었다.

마지막에 딱 한 번 일어난다. 영화 전체에서 유일하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보이는 쇼트다. 밤새 얼굴만 보던 사람이 걸어 나가는데, 생각보다 키가 커서 놀랐다. 흰 빛 속으로 나간다. 나는 남의 말을 끝까지 못 듣는 사람이라 그 85분이 벌 같았다. 이 사람은 끝까지 들었다. 틀리게 듣고, 늦게 듣고, 그래도 끊지 않고 들었다. 다 듣고 나서야 일어났다. 좀 그랬다.

남의 말이 세 문장만 넘어가도 딴생각이 나는 사람들아, 오늘은 네 문장까지만 들어 보자. 다섯 문장은 내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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