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9
더 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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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만 있는데 왜 내가 땀이 나나
먼저 밝혀 두자면 나는 남의 말을 끝까지 못 듣는다. 상대가 세 문장째로 넘어가면 머릿속에서 이미 대답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자주 엉뚱한 대답을 하고, 더 자주 혼이 난다. 듣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묻는 사람들아, 어렵다. 진짜로.
아무튼 더 길티를 봤다. 덴마크 영화다. 코펜하겐 긴급 신고 센터의 야간 근무자가 주인공인데, 원래는 거리에서 일하던 경찰이고 무슨 사건으로 재판을 앞두고 책상에 앉혀진 사람이다. 재판은 내일 아침이다. 그런데 오늘 밤 전화 한 통이 온다. 한 여자가 아이한테 말하듯 조용히 말하고, 이 사람은 그게 납치라는 걸 알아챈다. 흰 승합차, 북쪽으로. 거기서부터 끝까지 이 아저씨가 하는 일이 전화를 받는 거다. 진짜로. 헤드셋 끼고, 앉아서. 85분이다. 승합차도 안 나오고, 여자의 집도 안 나오고, 납치범 얼굴도 안 나온다. 전부 목소리다. 화면에 있는 건 이 사람 얼굴 하나다. 우리나라에는 2019년 봄에 개봉했다. 나는 그때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밤새 앉아서 전화 받는 영화라는 설명만 듣고는 안 봤을 거다. 봤으면 좋았을 텐데.

이게 얼마나 무서운 대본인지 아는가. 직장인한테 모니터랑 키보드를 치우고, 대신 카메라를 코앞에 붙여 놓고 하루 종일 전화만 받으라는 거랑 비슷하다. 그것도 우는 손님 전화만. 이걸 13일 만에, 카메라 세 대로, 대본을 여덟 덩어리로 나눠 짧게는 5분 길게는 35분짜리로 통째로 찍었다고 한다. 35분 동안 컷 없이 전화를 받는 거다. 게다가 전화 상대 배우들은 목소리로만 따로 녹음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눈앞에 울어 주는 상대 배우가 없다. 귀에 들리는 목소리에 얼굴로만 대답해야 한다. 학교 다닐 때 짝이 결석한 날 혼자 하는 역할극이랑 비슷하다. 그걸 85분 하는 거다. 할 게 없을 때 사람은 괜히 뭘 한다. 눈썹을 올린다. 한숨을 쉰다. 헤드셋을 괜히 고쳐 쓴다. 먼 데를 본다. 볼펜을 돌린다. 나 같으면 이 다섯 가지를 1분 안에 다 하고 여섯 번째를 찾고 있었을 거다.
이 배우는 안 한다. 영화의 첫 쇼트가 이 사람 귀다. 귀에서 카메라가 느릿느릿 물러난다. 그다음부터 카메라는 손에 들린 채로 이 얼굴에 붙어 있고, 이 얼굴은 85분 동안 한 번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이지 않는다. 못하는 배우는 여기서 일어난다. 답답하니까. 걸으면서 전화를 받고, 벽을 짚고, 뭐라도 한다. 이 배우는 안 일어난다. 자리를 옮기긴 한다. 책상 여섯 개랑 정수기가 있는 사무실에서 더 어둡고 구석진 책상으로. 야간조가 들어오면 옆의 작은 방으로. 블라인드 뒤로 들어간다. 그게 다다. 창 하나 가려지는 게 이 영화에서 제일 큰 사건이다. 못하는 배우라면 여기서 뭔가 보여 주려고 했을 거다. '나 지금 집중할 거야'. 이 배우는 그냥 더 어두운 데로 간다. 그래서 그 뒤의 어둠이 무섭다. 점점 작은 방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작게 움직인다. 방이 좁아지는 만큼 동작을 줄이는 거다. 부럽고 얄밉다. 나는 앉아서 전화 한 통만 받아도 다리를 떤다. 대기 음악이 나오면 일어나서 돈다. 이 사람은 재판 전날 밤에 그 긴 통화를 하면서 의자에서 안 떨어진다.

헤드셋 얘기를 해야겠다. 어느 평은 이 사람이 헤드셋을 개 목 보호대처럼 쓰고 있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수술한 개가 제 상처를 못 핥게 씌우는 그 고깔 말이다. 이 사람은 그걸 쓰고 밤새 남의 상처를 듣는다. 제 상처는 못 핥고. 그러는 동안 땀이 난다. 이마에 맺힌 땀이 화면에 보일 만큼 카메라가 가깝다. 얼굴은 거의 안 움직이는데 땀이 대신 움직인다. 나는 땀을 연기로 쳐 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근데 그 땀을 보고 있으니까 내 등이 축축해졌다. 그건 안다. 남이 땀 흘리는 걸 보고 내가 축축해지는 영화는 흔치 않다.
제일 좋았던 장면은 사과하는 장면이다. 이 사람은 밤새 전화기에 대고 못되게 군다. 약 먹고 전화한 남자한테는 네 잘못 아니냐고 한다. 그런 사람이 중간에 동료한테 사과를 한다. 그것도 정식으로. 못하는 배우는 여기서 사과를 멋있게 한다. 눈을 내리깔고, 목소리를 깔고, '나 지금 반성하고 있어요'. 이 배우는 사과를 못하는 사람처럼 사과한다. 어색하다. 받는 쪽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른다. 이 사무실의 누구도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다는 게 그 사과 하나로 보인다. 나는 그 어색한 사과에서 졌다. 사과를 잘하는 연기보다 못하는 연기가 백배 어렵다. 못하는 척을 하는 순간 티가 나니까.
하나 더. 여섯 살 아이와 통화하는 장면이 있다. 아이는 엄마를 다시 보고 싶다고 조른다. 화면에 아이는 없다. 아이 목소리와 이 사람 얼굴뿐이다. 나는 여기서 울 줄 알았다. 이 사람이 아니라 내가. 못하는 배우는 여기서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슬퍼 보이니까. 이 배우가 거기서 뭘 했는지 나는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아이 목소리만 기억난다. 자기 얼굴이 화면에 꽉 차 있는데 보는 사람이 목소리 쪽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 그게 이 배우가 한 일이다. 세 문장째에 대답을 만들어 놓는 나 같은 사람은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듣는 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가만히 있는 걸 끝까지 하는 거다.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범인은 잡아?" 나는 대답을 못 했다. 그게 그런 영화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그 질문이 이 영화에서 제일 안 중요한 질문인데 왜 안 중요한지 설명할 길이 없어서. 친구가 다시 물었다. "앉아서 전화만 받는데 왜 긴장이 돼?" 그건 설명이 된다. 이 아저씨가 끝까지 안 일어나서 그렇다. 친구는 못 알아들었다. 나도 설명하면서 못 알아들었다. 근데 맞는 말이다. 사람이 안 일어나면 보는 쪽이 대신 일어나고 싶어진다. 그게 이 영화의 긴장이다. 내가 대신 떨었다.
마지막에 딱 한 번 일어난다. 영화 전체에서 유일하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보이는 쇼트다. 밤새 얼굴만 보던 사람이 걸어 나가는데, 생각보다 키가 커서 놀랐다. 흰 빛 속으로 나간다. 나는 남의 말을 끝까지 못 듣는 사람이라 그 85분이 벌 같았다. 이 사람은 끝까지 들었다. 틀리게 듣고, 늦게 듣고, 그래도 끊지 않고 들었다. 다 듣고 나서야 일어났다. 좀 그랬다.
남의 말이 세 문장만 넘어가도 딴생각이 나는 사람들아, 오늘은 네 문장까지만 들어 보자. 다섯 문장은 내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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