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0
타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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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겠다던 칼로 두 번
칼 한 자루가 있다. 올림포스에서 벼린 칼이라고 한다. 《타이탄》에서 이 칼은 주인공보다 일찍 자기 할 일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은 내내 쓰지 않겠다고 하고, 칼은 내내 근처에 있다. 나는 영화를 보다가 사람보다 사물의 행적을 따라가는 버릇이 있는데, 그러면 줄거리가 흐려지는 대신 다른 것이 또렷해진다. 그래서 이 글은 페르세우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쓰지 않겠다고 한 칼의 이력서다. 쓰다 보니 이력서가 그 주인의 이력보다 길어졌다. 사물에게도 그런 일이 있다.
발급. 길 위에서, 거절
칼이 처음 등장하는 자리는 아르고스를 떠난 원정대의 길목이다. 신들의 왕 제우스가 아들 페르세우스를 돕겠다고 보낸 것으로, 영화는 이 칼이 올림포스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신이 만들어 사람 손에 건넨 물건이니 가전제품으로 치면 보증 기간이 영원인 셈이다. 페르세우스는 그것을 받지 않는다. 어부의 아들로 자란 그는 자기 가족을 바다에 빠뜨린 쪽이 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자기 아버지가 그 신들 중 하나라는 것도 막 알게 된 참이다. 그가 말한다. 「이 일을 한다면, 나는 인간으로서 할 것이다.」 거절의 문장으로는 아주 멋지다. 다만 멋진 거절 뒤에는 늘 실무가 남는다. 칼은 땅에 두고 가면 녹슬고, 들고 가면 거절이 무효가 된다. 그래서 칼은 근위대장 드라코의 짐에 들어간다. 거절한 사람이 아니라 거절을 지켜본 사람이 그것을 지고 간다. 나는 이 장면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미리 말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뒤에서 다시 적겠다.
보관. 전갈과 사막
칼은 한동안 쓰이지 않는다. 그동안 원정대는 숲에서 칼리보스에게 습격당하고, 드라코가 그의 손을 잘라 쫓아내며, 땅에 떨어진 칼리보스의 피에서 집채만 한 전갈이 솟아 나온다. 사람들은 쇠로 된 보통 칼로 전갈과 싸우고, 사막의 종족 진의 지도자 술레이만이 길동무가 된다. 이 대목에서 올림포스의 칼은 화면에 없다. 그런데 없는 물건이 있는 물건보다 더 신경 쓰이는 때가 있다. 집에 두고 온 우산이 그렇고, 서랍에 넣어 둔 사직서가 그렇다. 페르세우스가 흙과 피 속에서 보통 칼로 간신히 살아남는 동안 관객은 짐 속의 그 칼을 잊지 못한다. 영화도 잊지 않는다. 제우스가 다시 찾아와 올림포스로 오라고 권하고, 페르세우스는 다시 거절한다. 그 대신 그는 금화 한 닢을 받는다. 지하 세계의 뱃사공 카론에게 낼 뱃삯이라고 했다. 칼은 거절하고 뱃삯은 받는 것. 나는 여기서 조금 웃었다. 원칙이란 대개 이렇게 품목별로 적용된다. 나도 남의 도움은 사양하면서 남이 산 커피는 마신다.
사용. 신전 밖에서
스틱스의 마녀들이 알려 준 답은 메두사의 머리였다. 메두사가 사는 신전으로 들어갈 때 이오는 밖에 남는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다른 글들이 더 잘 적을 것이고, 이 글은 칼의 이력서니까 칼이 다시 나오는 자리로 건너간다. 페르세우스는 방패 안쪽의 거울면으로 메두사를 등 뒤로 보며 목을 베고, 머리를 들고 신전을 나온다. 그 밖에서 칼리보스가 이오를 뒤에서 찌른다. 그다음에 페르세우스는 올림포스의 칼을 집어 든다. 그러니까 칼은 원래 쓰라고 준 용도, 즉 괴물을 베고 도시를 지키는 일에는 쓰이지 않았다. 메두사는 보통 칼과 방패로 잡았다. 신의 칼이 처음 피를 묻힌 상대는 신의 벌을 받아 괴물이 된 한 인간, 즉 페르세우스의 어머니를 바다에 던진 그 왕이다. 죽어 가는 칼리보스가 신이 되지 말라고 한다. 이 대사는 묘하다. 신의 칼을 쥔 사람에게 신이 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담배를 사 주면서 끊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 영화가 그 모순을 알고 찍었는지 끝까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알고 찍었다면 꽤 깊고, 모르고 찍었다면 꽤 솔직하다.
투척. 도시 위에서
검은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가 페르세우스를 아르고스로 데려간다. 크라켄은 메두사의 머리와 눈이 마주쳐 돌이 되어 무너진다. 이 결전에서도 칼은 주역이 아니다. 머리 하나가 주역이다. 칼이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그 뒤에 온다. 페르세우스가 제우스의 이름을 부르며 하데스에게 칼을 던지고, 번개가 칼을 타고 내려와 하데스를 지하로 돌려보낸다. 여기서 칼은 처음으로 신의 물건답게 쓰인다. 사람이 던지고 신이 마무리한다. 던지기는 인간의 동작이고 번개는 신의 몫이니, 공로를 나누자면 반반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이 장면을 조금 비루한 비유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자전거 뒤를 잡고 뛰어 주던 날, 나는 혼자 탄 줄 알았다. 그 뒤로 영화는 제우스가 아들에게 올림포스를 다시 권하고 아들이 다시 거절하는 장면으로 간다. 거절은 세 번째다. 그리고 제우스는 이오를 살려 돌려보낸다. 칼을 돌려받았는지는 영화가 보여 주지 않는다.
이력서 뒤에 붙이는 말
권력이란 무엇인가. 아마 빌린 칼 같은 것일 것이다. 내 것이 아니라서 쓰기 꺼려지고, 꺼리면서도 짐에 넣어 가고, 가장 급한 순간에 집어 들고, 다 쓰고 나서는 던져서 손에서 떼어 놓는다. 영화 속 페르세우스는 「신이 되어 영원히 사는 것보다 저 사람들과 진흙 속에서 죽는 쪽이 낫다」고 말한다. 그 말은 진심일 것이다. 다만 진심과 칼의 이력은 따로 적힌다. 그는 인간으로 남았고, 그 결정을 끝까지 지켜 준 것은 두 번 집어 든 신의 칼이었다.
내 해석이 너무 멀리 간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어쩌면 그냥 큼지막한 괴물과 날아다니는 말을 보여 주려고 만들어졌고, 칼은 소품 담당이 챙긴 물건 중 하나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떤 소품은 자기 역할보다 오래 손에 남는다. 인간으로서 하겠다고 말한 사람이 신의 칼을 두 번 쥐었다는 사실은, 영화가 끝나고도 내 손바닥에 자루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권력을 다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몇 번 거절했는지는 셀 수 있다. 세 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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