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0

타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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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내라는 사람과 가라앉히라는 사람

삐딱선· 2026. 10. 24.· 3,258자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영화를 멋진 영웅 때문에 다시 생각하게 된 게 아니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사람을 누군가 두 번이나 내려다보는 장면 때문이었다. 《타이탄》에는 주인공이 훈련을 받다가 넘어지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근위대장한테, 한 번은 늙지 않는 여자한테. 나는 그 두 번을 보다가 엉뚱하게도 스무 해 전 수영장 냄새를 맡았다. 염소 냄새. 이 얘기는 조금 뒤에 하겠다. 길지 않다.

줄거리는 아주 짧게만. 1981년 영화를 다시 만든 백여 분짜리 신화 액션이다. 어부 손에서 자란 페르세우스는 하데스가 보낸 것들에게 가족을 잃고 아르고스로 흘러든다. 왕궁에 나타난 하데스는 왕비를 그 자리에서 늙어 죽게 만들고, 열흘 뒤 일식 때 공주를 바치지 않으면 크라켄을 풀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있던 어부의 아들이 제우스의 자식이라는 것을 모두 앞에서 밝힌다. 페르세우스는 근위대와 함께 크라켄을 이길 방법을 찾아 떠난다. 여기까지가 출발이고, 내가 붙잡힌 장면은 그 길 위에 있다.

첫 번째. 근위대장 드라코가 그에게 칼을 쥐여 준다. 페르세우스는 어부다. 그물은 던져 봤어도 칼은 처음이다. 드라코는 몇 합 만에 그를 바닥에 눕히고 말한다. 「네 안에 신이 있다. 반드시 데려와라.」 그리고 수업 끝. 이 장면이 좋은 건 드라코가 그를 위로하지 않아서다. 일으켜 주지도 않는다. 네 안에 있는 걸 꺼내 오라는 말은 응원이 아니라 명령이고, 심지어 그 신을 미워하는 사람한테 하는 명령이다. 페르세우스는 제우스가 보내 준 칼마저 거절하고 이 일은 인간으로서 하겠다고 말한 사람이다. 멋있다. 그런데 드라코의 부하들은 그 멋 때문에 하나씩 죽어 간다. 나중에 드라코가 대놓고 말한다. 「네 자존심이 내 부하들을 죽이고 있다.」 받은 선물을 쓰라고. 나는 이 대사에서 처음으로 이 영화에 정색했다. 자존심이 남을 죽인다는 말을 이렇게 직접 하는 영화는 드물다.

두 번째. 이오가 있다. 이오는 신의 구애를 거절한 벌로 늙지 않게 된 여자이고, 페르세우스가 아기였을 때부터 멀리서 그를 지켜봐 왔다고 말한다. 신들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 사이에 끼어 있는 사람이라고 자기를 설명한다. 그런 이오가 길 위에서 그를 훈련시킨다. 이번에도 페르세우스는 넘어지고, 몇 번 넘어졌다가 울컥 올라와 이오를 넘어뜨린다. 반신의 힘이 화가 날 때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때 이오가 말한다. 「네 폭풍을 가라앉혀.」 이 대사를 두고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평이 많았다는 것을 나도 안다. 둘이 엉켜 있는 자세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런데 나는 이 대사를 듣고 수영장으로 돌아갔다.

(스무 해 전 얘기다. 나는 물을 무서워하는 어른이었고, 사촌 언니가 동네 수영장에서 강습 아르바이트를 했다. 언니는 내 팔을 잡고 딱 한 마디만 했다. 힘 빼. 힘을 빼면 가라앉을 것 같아서 더 힘을 줬고, 힘을 줄수록 더 가라앉았다. 언니는 설명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매주 같은 말을 했다. 힘 빼. 서너 달 뒤 어느 날 내가 물에 떴을 때 언니는 환호하지 않았다. 그렇지, 하고 다음 사람한테 갔다.)

그러니까 내가 본 건 이거다. 드라코는 꺼내라고 하고, 이오는 가라앉히라고 한다. 둘 다 같은 사람에게, 같은 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안에 있는 걸 데려오라는 말과, 그게 폭풍처럼 터지면 안 된다는 말. 모순 같지만 내 사촌 언니가 한 말과 똑같다. 물에 뜨려면 힘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힘을 꽉 쥐면 가라앉는다. 꺼내되 쥐지 마라. 영화는 이 두 장면을 따로따로 흘려보내고 설명하지 않는데, 사연이 있는 사람 눈에는 두 장면이 한 장면으로 붙는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훈련 장면들을 남들보다 오래 봤다. 남들은 전갈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전갈도 나온다. 칼리보스가 흘린 피에서 집채만 한 전갈들이 솟고, 사막의 진 족이 나타나 구해 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신나는 대목이 거기라는 데는 나도 동의한다.

타이탄 스틸컷

이오 얘기를 조금 더 하고 싶다. 이오는 지켜보는 사람이다. 아기 때부터 지켜봤고, 길 위에서는 안내자다. 메두사의 신전 앞에서는 자기는 들어갈 수 없다며 그를 들여보낸다. 이 여정의 이 부분은 혼자 해야 한다고. 신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른 분들이 자세히 쓰셨으니 나는 문 밖에 남은 사람 얘기만 하겠다. 문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영화에서 하는 일은 보통 없다. 그런데 신전을 나온 페르세우스 앞에서 이오는 칼리보스에게 뒤에서 찔린다. 그제야 페르세우스는 그동안 거절하던 신의 칼을 집어 들고, 이오는 죽어 가며 안드로메다와 아르고스를 지키라고 말한다. 몸이 금빛 안개가 되어 올라간다.

드라코도 신전 안에서 끝난다. 자기 안의 신을 꺼내라고 가르친 사람인데, 돌이 되기 직전에 남긴 말은 이 일을 인간이 했다는 걸 알리라는 말이었다. 꺼내라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사람 편을 든다. 이것도 모순 같지만, 내가 뜨자마자 다음 사람한테 가 버린 언니와 비슷하다. 가르친 사람은 가르친 걸 자기 공으로 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울었다.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오가 죽어서라기보다, 지켜보기만 하던 사람이 마지막에 하는 말이 나를 봐 달라는 말이 아니라 저쪽을 보라는 말이어서였던 것 같다. 사촌 언니는 지금 다른 도시에 산다. 내가 지난여름 바다에서 삼십 분을 떠 있었다는 걸 언니는 모른다. 알려 줄 생각도 없다. 언니는 그렇지, 하고 말 거다.

그 뒤는 빠르다. 검은 날개 달린 말이 와서 그를 아르고스로 데려가고, 일식과 함께 크라켄이 올라오고, 메두사의 머리가 크라켄을 돌로 만든다. 하데스는 번개가 실린 칼에 맞아 지하로 돌아간다. 페르세우스는 공주가 내미는 왕좌를 거절하고, 아버지가 내미는 올림포스도 거절한다. 신으로 영원히 사느니 저 사람들과 진흙 속에서 죽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제우스가 이오를 돌려보낸다.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타이탄 포스터

이 영화가 잘 만든 영화라고 우기지는 않겠다. 개봉 때 평이 좋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주인공이 선물을 끝까지 거절하다가 결국 그 선물로 일을 끝낸다는 지적도 맞다. 그런데 나는 그 지적이 틀렸다기보다, 그게 바로 이 영화가 한 말이라고 본다. 받은 걸 쓰라는 말과 그걸 쥐지 말라는 말을 둘 다 듣고도 사람은 한참을 버틴다. 버티다가, 누가 뒤에서 찔린 다음에야 집어 든다. 나도 그랬다. 물에 뜬 날은 언니 말을 알아들은 날이 아니라, 지쳐서 더는 힘을 줄 수 없던 날이었다.

볼까 말까 하는 분께는 이렇게 말하겠다. 괴물을 보러 가면 괴물은 나온다. 다만 넘어지는 장면 두 개를 건너뛰지 마시길. 누가 당신한테 꺼내라고 했고, 누가 가라앉히라고 했는지 떠오를지도 모른다. 떠오르면, 그 사람한테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된다. 그 사람은 아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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