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74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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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사람이 사탕 한 알로 버틴 세 시간

삐뚜름관람· 2026. 10. 31.· 2,196자

고백부터 한다. 나는 누벨바그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졸음이 온다. 흑백에, 담배에, 자막이 빠른 그런 영화일 거라고 멋대로 정해 놓고 피해 다녔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제목 때문에 골랐다. 배 타러 간다는데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아무튼 세 시간 십삼 분짜리를 봤다. 배는 맨 마지막에 잠깐 나온다. 속은 기분이었는데, 찾아보니 속인 게 아니라 내가 몰랐던 거였다.

몰랐던 것

셀린느는 싸구려 클럽의 마술사고 줄리는 도서관 사서다.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던 줄리가 물건을 흘리고 지나가는 셀린느를 쫓아가는 걸로 시작하는데, 이 추격전이 대사도 없이 한참 간다. 골목을 지나고, 케이블카를 타고, 몽마르트르 계단을 뛰어오른다. 나는 여기서 벌써 투덜댔다. 언제 줄거리가 나오나. 안 나온다. 그게 줄거리다.

그다음은 저택이다. 파리 안에 있는데 담쟁이로 덮인 집. 한 사람이 들어가면 기억을 잃고, 저녁에 거리로 밀려 나오는데 입안에 사탕이 하나 들어 있다. 그 사탕을 빨면 안에서 본 게 조금씩 떠오른다. 안에서는 홀아비와 그의 어린 딸, 홀아비를 노리는 두 여자의 멜로드라마가 매일 같은 순서로 돌아가고, 아이는 매번 죽는다. 둘은 그 집에 번갈아 유모로 들어간다.

처음 두 시간 넘게 이 짓을 번갈아 한다. 들어가고, 나오고, 사탕 빨고, 트렁크 위에 앉아 둘이 기억을 맞춘다. 나는 솔직히 중간에 몇 번 딴생각을 했다. 그게 겁이 나서 그랬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모르는 걸 세 시간 보는 게 겁이 났던 거다.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스틸컷

찾아본 것

첫째, 대본이 없었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읽었다. 제대로 된 각본은 애초에 없었고, 두 배우가 자기 인물을 알아서 만들었고, 둘의 대화는 밑그림만 두고 그 위에서 즉흥으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각본 자리에 감독 옆에 배우들 이름이 같이 올라 있다. 이걸 알고 추격전을 다시 생각했다. 대본이 없으니 저렇게 오래 뛴 거다. 뛰는 동안 뭐가 나올지 둘도 몰랐을 거다. 아마.

둘째, 제목. 프랑스어로 「배 타러 간다」는 말에는 남이 하는 이야기에 홀려서 끌려간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제목은 배 얘기가 아니라 셀린느와 줄리가 저택 이야기에 홀린다는 얘기다. 나도 홀렸으니 제목에 내 이름을 넣어도 된다. 안 넣어 주겠지만.

셋째, 사탕. 감독이 그랬다. 사탕을 떠올린 날이 모든 걸 하나로 묶을 방아쇠를 찾은 날이었다고. 그리고 저택 이야기는 어느 미국 소설가의 소설에서 가져왔는데, 만든 사람들 중 아무도 그 소설을 구하지 못해 읽지 못했고 각색본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이게 제일 위로가 됐다. 만든 사람도 원작을 안 읽었는데 내가 왜 읽고 봐야 하나.

그래서

몰라도 되는 것. 원작 소설, 누벨바그가 뭔지, 이 영화가 어느 명단 몇 위인지. 다 몰라도 저택은 똑같이 돈다.

알아야 더 좋은 것. 사탕이 영화표라는 것. 둘은 사탕을 입에 넣고 남의 집 드라마를 본다. 처음엔 멍하니 보다가, 나중엔 누가 범인인지 따지고, 마지막엔 둘이 같이 들어가 판을 뒤집는다. 그걸 알고 나면 처음 두 시간이 지루한 게 아니라 예습이다. 지루하긴 하다. 예습이 원래 그렇다.

막히는 장면은 정해져 있다. 저택 장면이 세 번째쯤 되풀이될 때다. 같은 대사, 같은 복도, 같은 손. 넘기는 법은 하나다. 둘이 트렁크 위에서 하는 걸 따라 하면 된다. 이번엔 뭐가 달라졌나 하나만 찾는다. 유모 얼굴이 바뀐다. 대사가 조금 비틀린다. 그 하나를 찾으면 다음 사탕까지 간다.

그리고 마지막 저택. 둘이 같이 들어가는데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고 있다. 안의 사람들은 매일 하던 대사를 하는데 둘은 대사를 잊고 타이밍을 놓친다. 집주인이 들어오자 유모 둘이 거울 앞에서 한 사람인 척 몸단장을 한다. 멜로드라마가 소동극이 되는데 안의 사람들은 눈치를 못 챈다. 나는 여기서 졌다. 두 시간 투덜댄 값을 여기서 다 받았다.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포스터

잘하는 사람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두 배우가 대본 없이 세 시간을 끌고 간다. 뛰고, 거짓말하고, 가발 쓰고, 사탕 빨고. 나는 대본이 있어도 삼 분을 못 끈다. 부럽고 얄밉다. 그런데 얄미운 게 세 시간 가면 그건 존경이다.

다음에 볼 것 하나. 어느 영화 기관이 몇 해 전 이 영화를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나란히 틀었다고 한다. 현실과 허구가 섞이는 구조가 닮았다는 이유로. 그쪽을 먼저 본 사람은 이걸 보면 되고, 이걸 먼저 본 사람은 그쪽으로 가면 된다. 둘 다 안 본 사람은 짧은 쪽부터. 이게 긴 쪽이다.

셀린느, 줄리. 다음엔 나도 데려가라. 사탕은 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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