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 2026
우주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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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된 사람과 그 옆에 선 사람
만 삼천오백 원어치 김밥이었습니다. 4회에서 홀을 맡은 안유진 씨와 이은지 씨가 읍내에 나갔다가 주방 사람들 점심으로 김밥을 사 옵니다. 메인 셰프 이영지 씨는 물어보고 사기로 하지 않았느냐며 화를 냅니다. 그 뒤 안유진 씨가 혼자 한 말이 이랬어요. 「너무 서러웠는데 꾹 참았다. 그때는 뒤를 돈다. 카메라에 안 찍히려고.」 저는 이 프로그램에서 이 두 분의 사이만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먼저 사정을 조금만 적겠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앞선 여행 예능에서 방 탈출에 실패한 네 사람이 벌칙으로 떡집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1회에서 메인 셰프 선발전이 열리고, 이영지 씨가 초딩 떡볶이로 미미 씨를 1점 차로 이기고 메인 셰프가 됩니다. 그리고 역할을 나눕니다. 미미 씨는 주방과 디저트, 이은지 씨는 주방과 홀과 퍼포먼스, 안유진 씨는 홀 서빙. 목표 수익은 1억 원으로 정합니다. 전남 고흥에 1호점을 열고, 나중에 서울 연희동에 2호점을 엽니다.
이영지의 자리
이분은 사장이 되었습니다. 선발전에서 이겼으니까요. 그런데 이기는 것과 맡는 것은 다른 일이에요. 2회에서 이분은 제병기를 들여와 매일 떡을 뽑아 장사하고 싶다고 합니다. 다른 분들은 수증기와 설거지를 걱정합니다. 첫 영업날에는 비바람이 주방까지 들이치고, 손님은 오지 않습니다. 이분은 밖에서 홍보를 하다가 사진을 찍고 있는 안유진 씨를 보고 지적을 합니다. 말이 세게 나갔어요. 홀 쪽에서는 시급도 안 주면서 폭언을 한다며 파업 분위기가 됩니다.
그다음에 이분이 한 일을 저는 오래 봤습니다. 미미 씨에게 가서 묻습니다. 「메인이고 내가 사장인데 내가 지금 오픈 시간에 사진 찍는 사람들 나무라는 게 내가 이상한 거야? 내가 꼰대야?」 화를 낸 사람이 바로 자기 화를 의심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직원 관리에 대한 조언을 듣고는 동료들에게 다가가 앞치마를 챙겨 주고 칭찬을 건넵니다. 사과라는 말은 없었지만 저는 그게 사과였다고 믿어요.
3회 영업이 끝난 뒤 이분은 안유진 씨에게 자기가 예민했느냐고 묻고, 평소에 꼼꼼하지 못해서 힘들다고, 자기의 불안한 모습을 자기가 보는 게 싫다고 말합니다. 이분이 바란 것은 아마 가게가 잘되는 것보다 앞에 있었을 거예요. 사장답게 보이는 것. 틀리지 않는 것. 그래서 김밥 하나에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말이 먼저 나왔을 겁니다.
안유진의 자리
이분은 홀을 맡았습니다. 3회에서 이분은 사장이 불안해 보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언니가 진짜 불안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뭐냐면 질문을 50개 하더라.」 이거 지금 멈춰요, 이거 그대로 꺼내도 돼요, 하고 계속 묻더라는 거예요. 맞는지 틀린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덧붙입니다. 화를 낸 사람을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분은 그날 세게 들은 말을 마음에 두고도, 그 말을 한 사람이 무서워서 그랬다는 걸 먼저 봤어요.
김밥 일에서 이분이 서러웠던 건 돈이 아니었습니다. 주방 사람들이 밥을 잘 챙겨 먹지 않는 게 걱정돼서, 시간이 없는데도 사 왔는데, 고맙다는 말 대신 왜 물어보지 않았느냐는 말을 들었다는 것. 이분이 듣고 싶었던 말은 짧았을 거예요. 고마워, 한마디. 그 대신 이분은 카메라를 등지고 돌아섰습니다.
그런데요, 이분은 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5회에서 열여섯 명 단체 손님을 위한 떡 코스를 준비할 때 이분은 수첩을 들고 그동안의 매출과 메뉴를 분석하고, 코스 순서를 짜고, 동치미에 애플민트를 하나씩 얹자고 제안하고, 직접 알밤을 갈아 떡 디저트를 만듭니다. 서빙을 하면서는 손님들 식사 속도를 보고 주방에 다음 메뉴 시점을 알립니다. 주방이 늦어지자 홀에서 돌아와, 식사 다 하시고 기다리고 계신다고 다급하게 전합니다. 사장의 가게를 자기 가게처럼 든 거예요. 서러웠던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둘 사이
두 분이 엇갈린 말은 한 쌍입니다. 한쪽은 왜 물어보지 않았느냐고 했고, 다른 쪽은 서러웠는데 꾹 참았다고 했습니다. 같은 김밥을 두고 한 사람은 절차를 보고 한 사람은 마음을 봤어요. 둘 다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아팠을 거예요.
관계가 바뀐 장면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이영지 씨가 수첩 한번 보자고 말을 거는 것. 가계부를 같이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둘이 그 김밥을 같이 먹는 것. 이영지 씨는 먹으면서 농축된 사랑이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끝내 그 모양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저는 그 문장을 그 말로 들었어요. 이분은 사과도 감사도 자기 식으로밖에 못 하는 분이고, 안유진 씨는 그 식을 알아듣는 분입니다.
마지막 회에서 정산을 하고 나니 한 사람당 70만 원쯤이 남았습니다. 이영지 씨는 그 돈을 떡볶이 조리용 식기로 바꿨고, 안유진 씨는 본사의 건물과 사람을 쓸 수 있는 이용권으로 바꿨습니다. 한 분은 다음에도 떡볶이를 만들 생각을 했고, 한 분은 다음에도 같이 일할 사람들을 생각한 거예요. 두 분이 이 가게에서 각자 무엇을 가져갔는지가 그 선택에 다 있습니다.
일터에서 무언가를 맡게 된 분이 곁에 계시다면, 그분이 화를 낼 때 그 화가 당신을 향한 것인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인지 한 번만 가려 봐 주세요. 그리고 당신이 그 옆에 선 사람이라면, 서러운 날 카메라를 등지고 돌아서는 대신 수첩을 들고 오는 사람이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동안은 그냥 옆에 있어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만 삼천오백 원어치 김밥이었습니다. 그걸 같이 먹는 장면이 이 프로그램에서 제가 가장 오래 본 장면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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