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 2026

우주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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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키만 한 가래떡

고요한땀· 2026. 10. 28.· 2,645자

175센티미터. 이 숫자를 먼저 적어 둔다. 이 프로그램에 관해 내가 기억하는 것의 거의 전부가 이 숫자 하나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떡집 벌칙을 받은 네 사람 가운데 메인 셰프가 된 사람의 키이고, 그가 뽑고 싶다고 한 가래떡의 길이이고, 나중에는 손님이 20분 안에 먹어 치워야 하는 떡의 길이가 된다. 숫자 하나가 열두 주 동안 이력서를 쓴 셈이다. 그 이력서를 순서대로 따라가 본다.

2회 · 지나가는 말

개업 전날, 네 사람은 주방에 놓인 제병기를 본다. 떡을 뽑는 기계다. 이게 왜 여기 있느냐는 얼굴들 앞에 제작진은 증거를 내민다. 매일 만든 떡으로 장사하고 싶다고 메인 셰프가 보낸 과거의 문자다. 거기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자기 키인 175센티미터 길이의 가래떡을 뽑고 싶다는 것. 기계는 그 말을 들었고, 수증기와 설거지가 그 말의 값으로 따라왔다.

그날 주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기사 몇 개만 읽어도 대강 그려진다. 환풍기를 틀지 않아 주방이 김으로 가득 찼고, 제병기 조립이 틀렸고, 소금 양을 계산할 고학력자를 찾다가 네 사람 중 유일한 대졸자에게 맡겼더니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을 포기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떡볶이용 가래떡과 명란바지락스타용 절편과 밤티라미슈용 백설기를 배우는 사이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지고 정전이 났다. 그리고 메인 셰프가 사과한다. 떡 뽑는다고 해서 죄송하다고. 지나가는 말이었다고. 자기 말을 아무도 경청해 주지 않을 줄 알았다고.

나는 이 사과가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정직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지나가는 말로 자기 키만 한 것을 바란다. 다만 보통은 아무도 듣지 않는다. 듣는 사람이 생기는 순간 그 바람은 기계가 되어 주방 한가운데 놓이고, 설거지통이 되어 싱크대에 쌓인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지나가는 말이 기계가 되는 일이다. 메인 셰프는 그날 처음으로 자기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나 같으면 그 자리에서 문자를 지웠을 텐데, 문자는 이미 제작진 손에 있었다.

우주떡집 스틸컷

3회 · 20분

숫자가 두 번째로 나타나는 곳은 메뉴판이다. 옥황상제 떡볶이. 부트졸로키아를 넣은 매운맛 챌린지 메뉴인데 규칙이 이렇다. 175센티미터짜리 가래떡 하나로 만든 떡볶이를 20분 안에 다 먹으면 값을 받지 않는다. 메인 셰프는 이 메뉴를 두고 이건 나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가장 매운 정도에 맞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같은 숫자가 한 회 사이에 자리를 옮겼다. 2회에서 175는 자기가 뽑고 싶은 것의 길이였다. 3회에서 175는 남이 먹어야 하는 것의 길이다. 자기 키만 한 떡을 뽑는 사람과 자기 키만 한 떡을 남에게 먹이는 사람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사장이 된다는 것은 아마 그 거리를 건너는 일일 것이다. 첫 도전자들은 평온하게 완식했고, 맵기도 맛있게 맵고 먹을 만하다고 했다. 기념사진과 사인 냄비와 추가 떡볶이가 상으로 나갔다. 메인 셰프는 이런 메뉴는 처음 성공한 사람이 나오면 점점 매워지는 법이라고 했다. 자기에 대한 도전이라던 메뉴가 손님에 대한 도전이 되는 데는 한 테이블이면 충분했다.

내가 숫자 하나에 너무 많은 것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키가 175였고, 떡은 길수록 보기 좋고, 20분은 방송에 알맞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편해지는 생각은 대체로 틀린 쪽에 가깝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물론 그 경험도 틀렸을 수 있다.

6회 · 이름

고흥 매장을 닫고 서울로 가는 날, 주방을 맡았던 두 사람은 주방 기구 하나하나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제병기도 아마 거기 있었을 것이다. 서울 매장에는 화구 아홉 개와 포스기와 예약 시스템이 있었고, 셰프가 가르쳐 준 새 메뉴는 기정떡을 빵 대신 쓴 떡버거였다. 메뉴판에서 떡볶이 이름이 바뀐 것도 이때다. 오리지날 떡볶이가 이영지 오리지날 떡볶이가 되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자기 키를 재는 일과 비슷하다. 자기가 어디까지인지 선을 긋는 것이다. 다만 2회의 선은 떡의 길이였고 6회의 선은 메뉴판의 글자였다. 떡은 수증기와 설거지를 남기지만 글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서울에서 메인 셰프가 조금 편해 보였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내 짐작이고, 본인은 다르게 말할지도 모른다.

우주떡집 스틸컷

12회 · 고흥의 맛

마지막 영업에 고흥 메뉴가 돌아왔다. 오리지날 떡볶이와 명란바지락스타가 서울 메뉴판에 다시 올랐고, 메뉴 이름은 또 바뀌어서 내가너무버거워 같은 것이 되었다. 마지막 양념을 하는 기분을 묻자 메인 셰프는 고흥의 맛이 난다고 했고, 이 떡볶이를 먹으면 눈물이 날 것이라고 했다. 그날은 비가 왔다. 첫날처럼.

정산이 끝나고 한 사람당 70만 원쯤이 남았을 때, 그는 그 돈을 떡볶이 조리용 식기로 바꿨다. 다른 세 사람은 굿즈와 상품권과 본사 이용권을 골랐다. 자기 키만 한 떡을 뽑고 싶다던 사람이 열두 주 뒤에 고른 것이 떡볶이 식기라는 사실을 나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품위란 자기가 처음 한 지나가는 말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일 수도 있고, 그 말에서 끝내 못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 둘은 멀리서 보면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175센티미터는 그 사이 한 번도 줄지 않았다. 떡은 짧아졌을지 모르지만 사람은 그대로였다. 나는 키가 그보다 작고, 지나가는 말을 들어 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 조금 안전했다. 그게 다행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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