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 2026

우주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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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비, 마지막 날 비, 그 사이의 각본 논쟁

예민한책장· 2026. 10. 28.· 2,584자

떡집 예능을 보시다가 결국 떡볶이를 시켜 드신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시라. 나도 그랬고, 내 친구도 그랬다. 다만 친구는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내내 「이거 다 짜 놓은 거야」를 입에 달고 있었고, 나는 「모르는 일이다」로 버텼던 것이다. 열두 회를 다 보고 난 뒤 전화로 한 시간쯤 싸운 내용을 기억나는 대로 옮긴다. 작품에 관한 사실은 방송에 나온 것만 적었고, 친구의 성격은 실제보다 조금 나쁘게 적었다.

나: 1회부터 가자. 메인 셰프 뽑는 선발전에 심사위원으로 유명한 셰프가 오셨다. 그런데 그분이 심사 도중에 폭로를 하신다. 이영지 님과 안유진 님이 자기 가게에 오셔서 뒷담화하는 걸 들었다고. 바빠 죽겠는데 요리까지 시키냐, 그런 말이었다고.

친구: 그게 각본이지. 심사위원이 심사하러 온 게 아니라 폭로하러 온 거잖아. 비리 논란 터뜨리려고 부른 사람이야.

나: 이영지 님은 해명을 하셨다. 식사를 하고 싶어서 약속을 잡았는데 가기 며칠 전에 미션이 왔다는 것이다. 셰프님도 요리 과외는 해 준 적이 없다고 하셨고. 그리고 결과를 보시라. 뒷담화를 하신 분이 초딩 떡볶이로 1등을 하셨다. 그게 짜 놓은 거라면 뒷담화한 사람을 1등 시키는 각본이란 말인데, 그런 각본은 세상에 없다 하겠다.

친구: 그러니까 더 수상한 거야. 1점 차. 딱 재미있을 만큼만 차이 나잖아.

나: 1점 차가 재미있는 건 맞다. 그게 연출인지 운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심사위원이 비리를 폭로하고 연출자가 화를 내는 장면에서, 정작 비리의 당사자는 요리를 하고 있었다. 떡볶이는 각본을 읽지 않는다.

우주떡집 스틸컷

친구: 2회. 개업 첫날 손님 0명. 그거는 진짜 못 참겠더라. 마을 사람들이 떡집 여는 걸 다 아는데 아무도 안 와? 제작진이 막은 거지.

나: 그날 비바람이 쳤고 정전까지 났다. 이영지 님이 직접 길로 나가셨는데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었고, 이은지 님과 안유진 님은 가게 앞을 지나는 승용차를 붙잡고 홍보를 하셨다가 실패하셨다. 이 장르에는 수순이 있다. 개업 고사, 가오픈, 첫날 폭우, 손님 0명, 사장의 호객, 첫 손님, 만석. 순서대로 다 나왔다. 수순을 따랐다고 조작이라 하면 세상 모든 식당 예능이 조작이 되겠다.

친구: 그래서 수순대로 만석이 됐잖아. 몇 시간 만에.

나: 만석이 된 경위를 보셔야 한다. 주문도 없는데 절편을 썰고 계시던 미미 님이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거셔서 자리에 앉히셨고, 이은지 님과 안유진 님이 첫 예약 손님을 받으셨고, 마을 이장님이 도우셨다. 그러고 나서 대기 손님까지 생겼다. 본사가 손님을 풀었다면 그렇게 한 테이블씩 구질구질하게 채울 이유가 없다. 손님을 풀 거면 한꺼번에 풀지 않겠나.

친구: 그건 네가 본사를 너무 믿는 거고.

나: 나는 본사를 믿는 게 아니라 첫날 매출을 믿는다. 32만 7,800원. 만석이었다는 가게의 첫날 매출이 그 정도였다. 연출이면 숫자부터 손봤을 것이다.

친구: 그러면 3회 그 떡볶이는 뭐야. 옥황상제 떡볶이. 4만 원짜리 챌린지 메뉴를 처음 시킨 손님들이 그냥 평화롭게 다 드셨잖아. 그러니까 사장님이 자존심 상해서 내일부터 더 맵게 하겠다고 하고. 손님한테 고통을 파는 가게가 어디 있냐.

나: 이영지 님 말씀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원래 챌린지 품목이라는 게 처음 먹었을 때 성공하신 분들이 계셔서 계속 매워지는 것이라고. 나는 이 대목이 이 프로그램에서 제일 구수했다. 4만 원을 내고 매운맛에 도전하신 손님이 멀쩡히 드시고 가셨는데, 사장님은 그것을 가게의 패배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그런 사장님이 어디 있냐고 하셨는데, 여기 계시다.

친구: 구수한 게 아니라 무서운 거지. 다음 손님은 더 매운 걸 먹어야 하잖아.

나: 다음 손님은 메뉴판을 보고 안 시키면 된다. 손님에게는 그 자유가 있고, 사장에게는 지고 못 사는 자유가 있다. 둘 다 있어야 식당이다.

우주떡집 스틸컷

친구: 좋아. 그럼 마지막 날. 12회. 하필 마지막 영업날에 비가 쏟아지더라. 미미 님이 그러셨지. 첫날과 마지막 날 왜 비가 오냐고.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첫날 비, 마지막 날 비. 너무 깔끔하잖아.

나: 그 말씀은 이은지 님이 「무섭다」고 받으셨다. 나도 무섭다. 그런데 그게 각본이면 본사가 날씨를 시킨 것인데, 비를 시킬 수 있는 본사라면 첫날 손님부터 시켰을 것이다. 첫날 손님을 못 시킨 본사가 마지막 날 비를 시킬 수는 없다.

친구: 아니면 비 오는 날만 골라서 찍었거나.

나: 고흥 사흘, 서울 닷새를 비 오는 날만 골라 찍었으면 그 사이에 맑은 날이 없어야 한다. 홀 팀이 바닷가에서 사진 찍던 날이 있다. 이건 연출이 아니라 날씨다. 그리고 미미 님의 그 한마디가 각본이라면, 각본가가 아니라 시인이라 하겠다.

친구: 그래서 결론이 뭔데.

나: 결론은 없다. 네가 짜 놓은 거라고 한 장면마다 나는 사람이 있었고, 내가 사람이라고 한 장면마다 너는 본사가 있었다. 둘 다 화면에 있다.

친구: 하나만 합의하자. 떡볶이는 맛있어 보였다.

나: 그건 합의한다. 아무튼.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해 보니, 친구의 「다 짜 놓은 거야」와 나의 「모르는 일이다」는 같은 말의 앞뒤였던 것 같다. 짜 놓았는지 모르니 보는 것이고, 모르니 짜 놓았다고 말해 보는 것이다. 열두 주 동안 금요일마다 그 짓을 하신 분들이라면, 떡볶이는 이미 시키셨을 줄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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