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살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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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포개 놓은 것뿐인데
고백하건대 나는 이 영화에서 귀신보다 돌을 더 오래 봤다. 수면에 떠오르는 것, 숲과 분간이 안 되는 것, 소리로만 있는 것. 그런 것들이 95분 동안 부지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이 내 눈은 자꾸 화면 구석의 돌탑으로 갔다. 돌 몇 개를 포개 놓은 것. 어느 산길에나 있고 누구나 하나쯤 쌓아 본 그 물건이 이 영화에서는 첫 장면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살목지」는 로드뷰 서비스 회사의 촬영팀 일곱 명이 저수지로 가는 이야기다. 로드뷰 화면에 찍은 적 없는 형체가 잡혔고, 당일 안으로 재촬영을 끝내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PD 수인이 급히 팀을 꾸린다. 같은 회사의 전 남자친구 기태, 촬영 업체를 하는 경태와 그의 형 경준, 막내 성빈, 공포 채널을 하는 세정. 그리고 현장에 가 보니 실종됐던 선배 교식이 거기 서 있다. 뼈대는 이렇고, 돌탑은 그 뼈대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물건이다. 등장하는 순서대로 적는다.
- 공터. 팀이 저수지 공터에 차를 대다가 돌탑을 건드린다. 돌이 무너진다. 아무도 보지 못한 돌탑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물건은 눈에 띄려고 거기 있는 게 아니다. 노파가 나타나 그걸 부수면 어쩌느냐고 나무라고, 다시 쌓으려는 사람들에게 그냥 쌓지 말고 먼저 소원을 빌라고 한다. 팀은 대충 쌓고 촬영을 시작한다. 공포영화가 금기를 세우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유치하다고 해도 좋다. 나는 이 유치함의 편이다. 돌 몇 개에 「만지지 마라」와 「빌어라」를 동시에 얹는 데 대사 두 줄이면 족하다.
- 노파의 말. 거긴 살아서는 못 나와요, 정 나가고 싶으면 빌어야죠. 이 영화에서 돌탑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유일한 문장이다. 출구가 없는 곳에 출구 하나를 두고, 그 출구를 돌 몇 개로 만들어 놓았다.
- 교식의 입. 다른 사람들이 물가에서 컨트롤러를 찾는 동안 수인이 교식에게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교식은 답하는 대신 너도 돌탑을 쌓았느냐고 되묻는다. 여기서 돌탑을 쌓으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자기 소원은 이뤄졌다고 하면서 웃는다. 같은 물건이 노파의 입에서는 출구였는데 교식의 입에서는 미끼가 된다. 물건은 그대로고 말하는 사람만 바뀌었다.
- SD카드. 수인이 찾은 카드 안에 교식이 돌탑을 쌓는 사진이 들어 있다. 쌓는다고 하기에는 동작이 부자연스럽다. 이 영화에서 돌탑이 보이는 방식 중 가장 무서운 대목이 여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귀신이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 돌을 들고 있는 사진 몇 장이 전부다.
- 기태의 전언. 기태가 노파의 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살아서 나온 사람이 없는 곳인데 노파의 딸은 돌탑을 쌓고 소원을 빌어 돌아왔다고. 이 대목에서 돌탑은 세 번째 얼굴을 얻는다. 출구, 미끼, 그리고 증언. 물건 하나가 세 사람의 입을 거치며 세 번 다른 것이 된다.
- 손. 어둠 속 돌탑에서 손이 뻗어 나온다. 마지막에 수인은 그 손에 붙들린 채로 돌탑을 무너뜨린다. 쌓으라던 물건을 부수는 것으로 영화는 자기가 세운 금기를 뒤집는다. 첫 장면에서 차가 실수로 무너뜨린 것을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이 작정하고 무너뜨린다.
눈에 보이는 것만 적어 보자. 물가의 돌탑은 어디서나 비슷하다. 넓적한 돌을 아래에 두고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올린다. 물기를 머금어 색이 짙다. 영화 속 돌의 색을 하나하나 말할 자신은 없다. 밤 장면이 대부분이고 조명은 돌보다 사람 얼굴에 가 있다. 다만 감독이 실제 저수지에서 본 것을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 근처에 돌탑이 스무 개에서 서른 개쯤 있고 멀리서 보면 사람 같다고. 물속에서 자라 나온 나무는 머리카락 같았다고. 이 두 문장이면 미술의 방향은 정해진다. 돌탑은 사람처럼 서 있어야 하고 나무는 머리카락처럼 늘어져야 한다. 그러면 돌과 나무와 귀신이 한 화면에서 서로를 흉내 낸다.
그 저수지의 스님은 뱀과 개구리가 많이 나와 그것들이 지낼 자리로 돌탑을 쌓았다고 했단다. 감독은 그 말을 거꾸로 받았다. 뱀과 개구리가 부정한 것이고, 부정한 것이 돌탑에 머문다고. 그러니 이 영화의 돌탑은 소원을 들어주는 물건이기 전에 무언가를 모아 두는 물건이다. 감독 자신도 다른 자리에서 물에 있는 돌탑은 귀신을 모은다고 말했다.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으로 돌을 쌓으면 그 소망이 귀신을 부른다는 구조다.
돌탑이 인물을 대신 말하는 순간은 하나로 모인다. 누가 쌓았고 누가 안 쌓았는가.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일곱 명 중 기태만 돌탑을 쌓지 않았고, 그래서 끝까지 바로 죽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있다. 교식은 쌓았고 소원이 이뤄졌다며 웃는다. 수인은 죄책감을 안고 이 저수지에 온 사람이고, 떠나보낸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소원이 돌탑으로 간다. 그러니 돌탑 앞에 선 사람의 자세가 곧 그 사람의 사정이다. 누구를 잃었는가, 누구를 다시 보고 싶은가. 돌 몇 개 앞에 쪼그려 앉는 것으로 다 말해 버린다. 캐릭터 포스터가 어둠 속 돌탑을 바라보는 촬영팀의 얼굴을 담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만든 사람들의 손을 상상해 본다. 상상이다. 미술팀은 아마 실제 저수지의 돌탑들을 보고 왔을 것이고, 차가 건드려 무너질 돌탑 하나를 어디에 둘지 정해야 했을 것이다. 범퍼 높이, 헤드라이트가 닿지 않는 각도, 무너질 때 소리가 날 돌의 크기. 그 돌탑은 처음에 한 번, 마지막에 또 한 번 무너져야 하니 적어도 두 번은 쌓였을 것이다. 돌을 포개는 일은 누구나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같은 모양으로 두 번 포개는 일은 아무나 못 한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나 싶고, 나라면 못 했다.
한계도 적는다. 이 영화는 돌탑의 규칙을 끝까지 정리해 주지 않는다. 쌓으면 소원이 이뤄진다고도 하고, 쌓지 않은 사람만 멀쩡하다고도 하고, 무너뜨려야 나갈 수 있다는 추측도 극 중에 나온다. 그 셋이 한 물건 위에 겹쳐 있어서 해석이 갈린다. 감독은 귀신의 사연을 일부러 설명하지 않았고 이유 없는 악의가 더 무섭다고 했는데, 돌탑은 그 설명 없음을 떠안은 물건이다. 설명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 돌탑은 불친절하다. 거기까지 편들 생각은 없다.
다만 끝 장면을 생각하면 다시 편드는 쪽으로 기운다. 기태는 회사 탕비실에서 수인과 마주 앉아 있다. 교식이 저수지에서 이미 죽은 채 발견됐다는 말이 전해지고, 수인은 애초에 거긴 가지 말아야 했다고 말하고, 싱크대에서 검은 물이 넘친다. 기태는 자기가 아직 물속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물 밑에서 수인이 눈을 뜨고 아무것도 믿지 말라고, 절대로, 하고 말한다. 이 장면에 돌탑은 없다. 그런데 이 장면은 돌탑이 한 일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노파의 출구, 교식의 미끼, 기태가 들은 증언. 믿을 만한 말이 세 번 왔고 셋 다 돌 몇 개 위에 얹혀 있었다. 모름지기 공포영화의 소품이란 믿게 만드는 물건이지 설명하는 물건이 아니다. 이 돌탑은 그 일을 했다.
볼까 말까 묻는다면, 보되 귀신 말고 돌을 보라고 하겠다. 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돌 앞에 선 사람들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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