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0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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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사도 안 하고 가냐

삐뚜름관람· 2026. 10. 12.· 3,062자

먼저 밝혀 두자면 나는 작별 인사를 못한다. 모임이 끝날 때쯤 화장실 가는 척 일어나서 그대로 집에 간다. 다음 날 '어제 갔어?' 하는 문자가 오면 그제야 미안하다고 보낸다. 그게 다다.

아무튼 이 영화를 봤다. 두 시간 십팔 분이다. 전쟁터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병사를 보고 돌아온 아버지가 오하이오 시골 숲에 십자가를 세우고, 쓰러진 나무를 기도 자리로 삼고, 아들을 매일 거기 무릎 꿇린다. 아내가 암에 걸리자 아들의 개를 죽여서 거기 바친다. 아내는 죽고, 아버지는 그 십자가 밑에서 목을 긋는다. 아홉 살짜리가 아버지를 찾아낸다. 이게 시작이다. 진짜로. 그 아이는 웨스트버지니아 할머니 집으로 가고, 거기엔 부모를 둘 다 잃은 레노라라는 여자애가 먼저 와 있다. 둘은 남매로 자란다. 생일에 아버지가 전쟁에서 가져온 루거 권총을 선물로 받는다. 그리고 교회에 새 목사가 온다. 연쇄살인 부부랑 부패한 보안관도 따로 돌아다닌다. 원작 소설가가 직접 내레이션을 한다. 이 사람들이 전부 아빈이라는 애 하나한테 모여든다. 1945년부터 60년대 중반까지, 그 애한테만. 나 같으면 이사를 갔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컷

이게 얼마나 무서운 대본인지 아는가. 이 배우가 맡은 인물은 영화의 절반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 어릴 땐 아버지가 밀렵꾼들을 때리는 걸 본다. 커서는 교회 만찬에 할머니가 닭간 튀김을 해 갔는데 새 목사가 그걸 내장이라고 부르면서, 가련한 영혼이 가져온 음식은 자기가 먹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본다. 그 자리에서 뒤집지 않는다. 나중에야 라디오에서나 떠드는 질 낮은 인간이라고 한마디 한다. 회사에서 상사가 회의실에서 우리 팀을 깎아내리는데 반박 못 하고 앉아 있는 거랑 비슷하다. 그럴 때 사람은 괜히 뭘 한다. 턱에 힘을 주고, 주먹을 쥐었다 펴고, 콧김을 한 번 내쉬고, 눈을 질끈 감는다. '나 지금 참고 있어요'를 온몸으로 알린다. 나는 회의 때마다 그런다. 카메라가 없는데도.

목사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 영화에서 잘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하늘색 재킷에 주름 장식 셔츠를 입고 강단에 서는 사람이다. 느끼하고, 말이 많고, 자기 죄를 설교 제목으로 쓴다. 보는 내내 손이 근질근질했다. 그런데 그 사람 맞은편에 앉은 인물은 아무것도 안 한다. 그게 이 대본의 함정이다. 느끼한 사람 앞에서 가만히 있는 사람이 더 어렵다. 느끼한 건 할 게 많다. 가만히 있는 건 할 게 없다.

이 배우는 그걸 안 한다. 동생이 죽고, 목사를 쏘기로 하고, 집을 떠나는 날 할머니한테 인사를 안 한다. 쪽지 한 장 남기고 나간다. 보통은 여기서 한 번 돌아본다. 문 앞에 서서, 자는 할머니를 한 번 쳐다보고, 그다음에 나간다. 이 영화엔 그 장면이 없다. 쪽지가 전부다. 교회에서도 그렇다. 총 들고 소리치며 들이닥치지 않는다. 참회하러 온 사람처럼 앉아서 목사가 한 짓을 하나씩 늘어놓는다. 목사가 성경책을 던지자 그제야 반사적으로 한 발이 나가고, 손에 맞고, 두 발이 더 나간다. 계획한 사람의 첫 발이 아니라 놀란 사람의 첫 발이다. 그게 더 무섭고, 그래서 더 부럽고 얄밉다. 나였으면 들어가기 전에 문 앞에서 심호흡부터 세 번 했을 거다. 그 심호흡을 관객이 다 봤을 거고.

그리고 기다리는 장면들이 있다. 동생이 헛간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부검에서 아이를 가졌었다는 게 나온다. 이 인물은 그 길로 목사한테 달려가지 않는다. 목사를 따라다닌다. 다른 어린 여자애한테 수작 거는 걸 보고 나서야 움직인다. 따라다니는 연기가 뭔지 아는 사람은 안다. 하는 게 없다. 걷고, 보고, 또 걷는다. 못하는 사람은 여기서 뭔가를 한다. 이를 악물거나, 차 안에서 핸들을 한 번 치거나. 이 배우는 그냥 본다. 화면에서 제일 오래 가만히 있는 사람이 제일 바쁜 사람이라는 걸, 이 영화 보고 다시 알았다. 나는 회사 복도에서 상사 기다릴 때 삼 분도 가만히 못 서 있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포스터

제일 좋았던 장면은 둘이다. 하나는 동생을 괴롭히던 놈들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못하는 배우라면 얼굴을 보면서 때린다. 분노를 보여 줘야 하니까. 이 인물은 그놈 얼굴에 종이봉투를 씌운다. 그러고 봉투가 피에 젖을 때까지 때린다. 얼굴을 안 본다. 때리는 쪽이 보는 걸 못 견디는 거다. 다른 하나는 차가 고장 나서 히치하이크를 하다가 어떤 부부 차에 타는 장면이다. 그 부부가 뭐 하는 사람들인지 관객은 안다. 이 인물은 모른다. 근데 남자의 총을 먼저 본다. 먼저 보고, 먼저 쏜다. 여자의 총엔 알고 보니 공포탄밖에 없었다. 남편이 몰래 빼 둔 거다. 나는 그 '먼저'에서 졌다. 대단한 동작도 아니다. 그냥 먼저 봤을 뿐이다. 먼저 본다는 건 그 차에 타기 전부터 계속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아버지 밑에서 배운 게 그거다. 보는 거. 근데 나는 평생 먼저 본 적이 없다. 뭐든 다 지나가고 나서 본다.

친구한테 이 영화 얘기를 했다. "그래서 누가 이겨?" 아무도. "그럼 걔는 어떻게 돼?" 차를 얻어 타. "그게 끝이야?" 응. "재밌어?"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재밌다는 말이 안 나오는 영화가 있다. 친구는 다른 거 보겠다고 했다. 그 친구는 모임에서 나갈 때 한 사람씩 다 인사하고 간다. 그래서 늘 제일 늦게 나간다. 나는 그 친구가 늘 부럽다. 인사하고 나가는 것도 연기가 필요한 일이라서.

마지막 장면 얘기를 해야겠다. 보안관까지 쏘고 나서 이 인물은 아버지의 총을 개 뼈랑 같이 묻는다. 그러고 길에 나가 엄지를 든다. 히피가 모는 밴에 타고, 라디오에서 대통령이 베트남에 군대를 더 보낸다고 하고, 이 인물은 잠이 든다. 자기 앞날이 아버지랑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인사도 안 하고 나온 애가 남의 차에서 잔다. 나는 모임에서 몰래 나와서 버스 타면 꼭 잔다. 그래서 그 장면이 좀 그랬다. 걔는 돌아갈 데가 없어서 자는 거고, 나는 집에 가면서 자는 건데. 그게 뭐가 다른지 설명이 안 됐다. 버스에서 깨면 우리 동네인데, 걔는 깨면 신시내티다. 거기서 뭘 할지 아무도 모른다. 군대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잔다. 그걸 보고 나서 내가 왜 그렇게 급하게 모임을 빠져나오는지 잠깐 생각했다. 답은 안 나왔다. 좀 그랬다.

인사 못 하고 나오는 사람들아. 쪽지라도 써라. 그 애도 썼다. 그리고 차에서 자도 된다. 깨면 어디든 도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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