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0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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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탄
제목에 악마가 들어가면 일단 의심부터 해요. 악마 탓을 하기 시작하면 사람 탓은 안 하게 되거든. 그게 편하잖아. 나쁜 일은 다 악마가 했고 우리는 당했고, 그러면 아무도 책임질 게 없어요. 그래서 별 기대 없이 봤어요. 두 시간 십팔 분이라길래 그것도 좀 길다 싶었고.
그런데 이 영화는 그걸 안 하더라고. 악마가 안 나와요. 전쟁에서 돌아온 남자가 나오고, 그 남자 아들이 나오고, 설교하는 사람 둘, 보안관 하나, 사진 찍는 부부 하나가 나와요. 1945년부터 60년대 중반까지, 오하이오하고 웨스트버지니아 시골을 왔다 갔다 해요. 아버지는 아내가 암에 걸리니까 아들 개를 죽여서 십자가에 바치고, 아내가 죽으니까 자기도 죽어요. 아홉 살짜리가 그걸 찾아내요. 그 애가 커서 총을 쏘게 되는 얘기예요. 그게 다예요. 악마는 없고 사람만 있어요. 그게 더 무섭지.
아버지 얘기부터 할게요. 전쟁터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병사를 보고 온 사람이에요. 돌아와서 식당에서 일하던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숲에 십자가를 세우고, 거기서 기도해요. 영화는 그 기도를 근사하게 안 찍어요. 아들더러 더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고, 결국엔 개를 죽여요. 믿음이 깊은 사람이라고 포장하면 쉬웠을 텐데, 그냥 무서운 사람으로 보여 줘요. 전쟁에서 뭘 보고 온 사람은 그래요. 본인도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개가 살아나지는 않잖아.
이 영화에는 식당에서 서빙하던 여자가 둘 나와요. 하나는 아빈 엄마가 되고, 하나는 미끼가 돼요. 같은 일을 하다가 어떤 남자를 만났느냐로 갈린 거예요. 영화는 그걸 운명이라고 안 불러요. 그냥 그렇게 됐다고 보여 줘요. 나는 그게 좋았어요. 운명이라고 하면 근사해지잖아. 근사해질 일이 아니거든.
나는 이 영화에서 샌디라는 여자가 제일 오래 남았어요. 미드라는 동네 식당에서 서빙하던 여자예요. 남편 칼은 사진사라는데 일거리가 없어요. 그래서 둘이 뭘 하느냐. 여름이면 차를 몰고 나가서 길에서 젊은 남자를 태워요. 여자가 미끼가 되고 남자는 사진을 찍고, 그러고 죽여요. 영화는 이걸 로맨스로 안 그려요. 근사한 악당 부부, 그런 거 안 만들어요. 그냥 일처럼 보여 줘요. 차 타고, 태우고, 찍고, 돌아오고. 여자는 지쳐 있고, 남편을 점점 미워해요. 식당에서 서빙하다가 이 일로 넘어온 거예요. 왜 넘어왔는지 영화는 설명을 안 해요. 그게 또 맞아요. 사람이 어쩌다 그 일을 하게 됐는지, 본인도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
칼은 사진사예요. 일거리는 없는데 카메라는 있어요. 사람이 연장은 못 버려요. 연장이 있으면 뭐라도 하게 돼요. 그 사람은 그걸로 죽는 사람을 찍었어요. 왜 그러는지 영화는 설명을 길게 안 해요. 그냥 찍는 걸 보여 줘요. 나는 설명 안 하는 쪽이 낫다고 봤어요. 설명하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봐주게 되거든. 봐줄 일이 아니잖아.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직업이 있어요. 보안관은 샌디의 오빠예요. 동생 집에 와서 하는 말이, 자기 재선 끝날 때까지 조용히 하라는 거예요. 동생이 사람을 죽이는 걸 알면서. 선거 있는 사람은 그래요. 나중에 동생 부부가 찍어 둔 사진을 찾아서는 다 태워요. 선거가 있으니까. 목사도 직업이에요. 새로 온 목사가 어린 여자애들한테 옷을 벗고 신께 자기를 열라고 해요. 그걸 기도라고 불러요. 일하는 사람이 자기 일의 말을 그렇게 써요. 보안관은 선거라는 말을 쓰고 목사는 기도라는 말을 쓰고. 말만 다르지 하는 짓은 같아요. 자기 자리 지키는 거.

그 보안관이 어릴 때 아빈한테 한 말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묻히려고 태어난다." 아버지 시체 찾아낸 애한테 그래요. 틀린 말은 아닌데 아무 말도 아니잖아. 그런 말 할 시간에 애를 집에 데려다주지. 그 말 한 사람이 나중에 숲속 통나무 옆에서 자기가 묻혀요. 말은 그렇게 돌아와요. 멋있게 한 말일수록 빨리 돌아오더라고.
레노라 얘기도 해야겠어요. 아빈하고 남매로 자란 애예요. 부모가 둘 다 없고, 학교 끝나면 날마다 엄마 무덤에 가요. 그 목사가 그 애한테 손을 댔고, 애가 생겼고, 헛간에서 양동이 위에 올라섰다가 마음을 바꿔요.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요. 영화는 여기서 음악을 크게 안 틀어요. 애가 마음을 바꿨는데도 그냥 죽어요. 보통 영화 같으면 누가 달려와서 붙잡잖아. 안 와요. 나는 그게 정직하다고 봤어요. 마음 바꾼다고 다 사는 거 아니거든. 발을 헛디디면 헛디딘 거지.
샌디 역을 한 그 배우 얘기를 하고 싶어요. 차 안에서 혼자 우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영화가 그 눈물로 그 여자를 봐주지 않아요. 그 여자는 떠나려고 차에 짐을 다 실어요. 그러고 못 떠나요. 다시 집에 들어가요. 짐 싸는 것까지는 누구나 하거든. 못 떠나는 게 사람이에요. 마지막에 아빈을 태우고, 남편이 총에 맞고, 그 여자가 총을 뽑아요. 쏘는데 공포탄이에요. 남편이 몰래 바꿔 놓은 거예요. 아내를 못 믿어서. 그 여자는 그것도 모르고 쏜 거예요. 그 장면이 길지 않아요. 억울하다고 소리치는 대목도 없어요. 그냥 쏘고, 안 나가고, 끝나요. 그 배우, 참 잘하더라고요. 불쌍한 얼굴을 오래 하지 않아서 더 그랬어요.
마지막에 좀 웃었어요. 히치하이커를 죽이던 부부를 쏜 애가, 그 길로 또 길가에 서서 엄지를 들어요. 빨간색 흰색 폭스바겐이 서고, 머리 긴 남자가 신시내티 간대요. 라디오에서는 대통령이 베트남에 군대를 더 보낸다고 하고, 그 애는 그 차에서 잠이 들어요. 모르는 사람 차에서. 방금 모르는 사람 차에서 죽을 뻔했는데. 사람이 그래요. 방법이 그거 하나뿐이면 또 그걸 해요. 걸어갈 수는 없잖아. 무서워서 안 타면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는 거고, 그러면 아무 데도 못 가요. 타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고는 잠이 와요. 사람이 그래요.
샌디가 억울하냐 하면, 글쎄. 식당에서 일하다가 미끼가 됐고, 떠날 짐까지 다 쌌는데 못 떠났고, 마지막에 쏜 총에는 공포탄이 들어 있었어요. 억울할 만하지. 그런데 그 여자가 태운 남자들은 더 억울하거든. 그 생각을 하면 글쎄, 가 돼요. 영화도 거기서 어느 쪽 편을 안 들어요. 그래서 괜찮았어요.
배울 거 없어요. 사람이 그렇게 산다는 걸 두 시간 넘게 보는 거예요. 악마가 있었으면 차라리 편했을 텐데, 없더라고.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 여자가 공포탄인 줄 알았으면 쐈을까. 그것만 가끔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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