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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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서가 딸려 오는 마녀
교실 칠판에 기생충 이야기가 적혀 있다. 다른 장면에서는 기생충 다큐멘터리가 틀어져 있다. 나는 그 칠판을 보고 생각했다. 아, 이 영화는 끝에 가서 저걸 써먹겠구나. 틀렸다. 칠판은 미끼였다. 범인은 기생충이 아니라 빨간 가발을 쓴 할머니였고, 나는 속은 쪽이었다. 속은 건 괜찮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내가 호러에서 질색하는 것부터 적는다. 끝에 가서 괴물의 원리를 설명서처럼 읊어 주는 결말. 아무 상관없는 쪽으로 관객을 끌고 가는 가짜 단서. 어둠 속에서 얼굴을 불쑥 들이미는 놀래킴. 아이의 목소리로 여는 내레이션. 두 시간 조용하다가 마지막 십 분에 소리를 지르는 마무리. 다섯이다. 이 영화는 다섯을 전부 한다. 전부 하는데 셋은 잘하고 둘은 못한다. 그 차이를 적는 게 이 글이다.
설정은 이렇다. 수요일 새벽 2시 17분에 한 반 아이 열일곱이 집을 뛰쳐나가 사라진다. 남은 아이는 하나다. 영화는 여섯 사람의 챕터로 이 밤을 돈다. 교사, 아버지, 경찰, 좀도둑, 교장, 그리고 남은 아이. 128분이다. 개봉 때 일부 극장이 이 영화를 오후 2시 17분에 틀었다고 한다. 숫자 장난이다. 나는 숫자 장난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건 영화 바깥의 일이니 넘어간다. 영화 안의 일만 따진다.
잘한 것 첫째, 가짜 단서. 칠판의 기생충은 끝까지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보통 영화는 미끼를 던져 놓고 뒤에서 회수한다. 알고 보니 그것도 관련이 있었다는 식으로. 이 영화는 회수하지 않는다. 미끼는 미끼로 끝난다. 나는 이게 맞다고 본다. 회수되는 미끼는 미끼가 아니라 복선이다. 복선은 관객을 똑똑하게 만들고 미끼는 관객을 겸손하게 만든다. 호러에 필요한 건 겸손한 관객이다.
둘째, 내레이션. 아이 목소리가 2년 전 어느 수요일 밤의 일이라고 말하며 문을 연다. 아이 내레이션은 대개 어른이 쓴 문장을 아이 입에 넣어 순진함을 사 오는 장치다. 나는 그게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 이 영화의 목소리는 끝에서 한 번 더 온다. 돌아온 아이들 가운데 일부만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2년이 지났는데도 일부라고. 처음의 목소리가 무엇을 알고 말하던 목소리였는지 그제야 짚인다. 순진함을 사 온 게 아니라 거리를 둔 거였다. 봐준다.
셋째, 놀래킴. 있다. 효과도 있다. 보통의 놀래킴은 소리로 때린다. 이 영화는 어둠을 오래 보여 준 다음에 들이민다. 기다리게 하고 나서 때리는 놀래킴은 억울하지 않다. 내가 놀란 건 소리 때문이 아니라 내가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정당하다.
이제 못한 것. 첫째, 설명서. 마지막 챕터에서 할머니가 아이를 앉혀 놓고 말한다. 자기 병은 진짜라고. 남의 기운을 가져와야 산다고. 도구도 전부 나온다. 거꾸로 된 삼각형과 숫자 6이 새겨진 종, 가시 돋은 나뭇가지, 자기 피, 상대의 물건, 상대의 머리카락. 가지를 꺾으면 켜지고 물에 담그면 꺼진다. 나는 여기서 리모컨 설명서를 읽는 기분이었다. 앞의 한 시간 반 동안 나를 불안하게 만든 건 모르는 것이었다. 알고 나니 불안이 규칙으로 바뀌었다. 규칙은 무섭지 않다. 규칙은 공략된다. 실제로 남은 아이가 그 규칙 그대로 할머니를 공략한다. 설명서가 나온 순간 결말은 정해진 셈이다.
둘째, 소리 지르는 마무리. 아이 열일곱이 동네를 가로질러 할머니를 쫓아가 잔디밭에서 이로 물어뜯는다. 그 장면에서 웃음과 불편이 같이 온다고들 하는데, 나도 둘 다 왔다. 다만 두 시간 동안 조용히 조여 오던 영화가 마지막에 와서 목청을 높이는 건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봤다. 이 영화만 할 수 있는 건 조용한 쪽이었다. 조용한 쪽을 끝까지 밀었으면 어땠을까. 그건 내가 보고 싶은 영화지 이 감독이 만들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적는다. 싫은 건 싫다고 써야 한다.
그런데도 설명서에 빠진 페이지가 하나 있다. 이 할머니가 무엇인지는 끝내 안 나온다. 어디서 왔는지, 왜 하필 이 집인지, 병이 무슨 병인지. 영화는 원리는 다 알려 주고 정체는 안 알려 준다. 나는 그 반대였으면 했다. 정체는 몰라도 되니 원리를 숨겨 줬으면. 하지만 빠진 페이지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평가한다. 다 알려 주는 영화보다는 한 장 찢어 놓은 영화가 낫다. 찢긴 자리가 이 영화에서 제일 오래 남는 자리다.
솔직히 말하자. 다섯 가지 질색을 전부 하면서 끝까지 보게 만든 게 못마땅하다. 못마땅한데 좋았다. 모순이 아니다. 잘 만든 설명서는 그래도 설명서고, 잘 만든 설명서를 읽는 두 시간은 그래도 두 시간이다.
그리고 칠판. 영화가 끝나고 나니 그 칠판이 제일 마음에 든다. 아무 뜻도 없이 거기 적혀 있었다는 점이. 이 영화에서 설명되지 않은 유일한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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