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스픽 노 이블
작품 페이지에서 댓글 반응 보기 →
토끼가 길을 정한다
처마 밑 빗물받이 홈통에 토끼 인형이 처박혀 있다. 찢긴 채로. 떠나려던 가족은 차를 세우고, 아버지가 사다리를 가져다 지붕 밑으로 올라간다. 집주인은 아래에서 그 모습을 올려다본다. 「스픽 노 이블」에서 내가 가장 오래 들여다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이 봉제 토끼다. 이름은 호피. 딸 애그니스의 것이다.
영화는 2022년 덴마크 영화를 제임스 왓킨스가 다시 쓰고 연출한 것으로, 2024년 9월 11일 국내 개봉했다. 미국인 부부 벤과 루이스, 딸 애그니스가 이탈리아에서 만난 영국인 부부 패디와 키아라의 데번 농가에 초대받는 이야기다. 집주인 부부에게는 말을 못 하는 아들 앤트가 있다. 이 글은 그 농가에서 벌어지는 일의 순서를 사람이 아니라 토끼의 자리로 따라간다.
모름지기 공포 영화의 소품이란 두 번 쓰이면 장치고 세 번 쓰이면 인물이다. 호피는 네 번 나온다.
첫 번째. 이탈리아 휴양지에서 애그니스가 토끼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찾아 돌려주는 사람이 패디 부부다. 토끼를 매개로 두 가족이 친해진다. 돌려주는 손이 나중에 빼앗는 손이 된다는 것을 이때는 아무도 모른다. 런던으로 돌아온 뒤 루이스는 딸이 토끼에 너무 기댄다고 걱정한다. 불안할 때 안는 물건이다. 아이 품에 꼭 들어오는 크기의, 어디서나 파는 모양의 봉제 토끼다. 특별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 소품의 첫 번째 선택이다.
두 번째. 첫째 밤이 지나고 루이스는 당장 떠나자고 한다. 짐을 싣고 차에 오른 순간 애그니스가 토끼가 없다며 울기 시작한다. 벤이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간 자리에서 키아라가 사과를 하고, 잃은 딸 메리 이야기를 꺼내고, 손님 부부는 하루 더 머문다. 여러 리뷰가 이 장면을 원작과 리메이크가 갈라지기 시작하는 지점이라고 썼다. 토끼 하나가 가족을 집으로 되돌린다.
세 번째. 창고에서 다른 가족들의 사진을 본 뒤, 가족은 앤트까지 데리고 떠나려 한다. 타이어가 펑크 나 있다. 패디가 고쳐 준다. 그리고 다시, 토끼가 없다. 이번에는 집 안이 아니라 지붕 밑 홈통이다. 패디가 거기 있다고 알려 준다. 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꺼내 온 토끼는 갈기갈기 찢겨 있다. 애그니스는 그래도 떠나자고만 한다.
나는 이 순서에 감탄한다. 같은 물건을 세 번 잃게 하는데, 잃는 자리가 매번 바뀐다. 휴양지, 집 안의 어딘가, 그리고 지붕 밑. 점점 높아지고, 점점 꺼내기 어려워지고, 점점 집주인의 손이 분명해진다. 첫 번째는 호의였고 두 번째는 우연처럼 보였고 세 번째는 누가 봐도 그가 한 짓이다. 찢긴 토끼는 패디가 손님에게 보내는 마지막 통보다. 너희가 아끼는 것을 나는 이렇게 할 수 있다. 벤이 토끼를 꺼내 온 뒤, 패디는 문을 열어 주는 척하다가 앤트를 호수에 던진다.
물건이 사람을 대신 말하는 순간은 네 번째다. 집 안의 싸움이 끝나고, 패디가 벽돌에 맞아 쓰러지고, 네 사람은 공범 마이크의 차를 타고 농가를 떠난다. 뒷자리에서 애그니스가 찢긴 토끼를 앤트에게 건넨다. 앤트는 소리 없이 운다. 혀가 없어 말을 못 하는 아이와, 불안해서 말을 못 하던 아이가 낡은 인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이 장면이 유치하다는 말을 나는 안다. 할리우드식으로 바뀐 결말의 마지막 한 숟갈이라는 평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숟갈을 편든다. 영화 내내 토끼는 애그니스가 집으로 끌려 돌아가는 이유였다. 마지막에 애그니스는 그것을 손에서 놓는다. 토끼를 놓는 아이와 토끼를 받는 아이. 둘 다 어른이 못 한 일을 방금 해낸 아이들이다. 주사를 꽂았고 벽돌을 들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봉제 인형을 쥐여 주는 것은 유치한 게 아니라 정확한 것이다. 아이에게 어른의 일을 시켰으면 아이의 물건을 돌려줘야 한다.
만든 사람의 손을 상상해 본다. 상상이다. 원작에도 토끼 인형은 있었다고 한다. 각본을 다시 쓴 사람은 그 인형이 가족을 돌아가게 만드는 장치로 쓰인 것을 보고, 거기에 한 번 더 할 일을 줬을 것이다. 찢어 놓고, 그래도 건네게 하고. 찢긴 채로 건네는 것이 핵심이다. 멀쩡한 인형을 주는 장면이었다면 나는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찢긴 것을 주니까,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형 한 개가 다 말한다. 어디서나 파는 모양이라는 첫 번째 선택도 여기서 값을 한다. 특별한 인형이었다면 그 인형의 사연이 아이의 사연을 가렸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질투가 난다. 같은 인형을 네 번 쓰고, 매번 다른 사람의 손에 있게 하고, 마지막에 가장 낡은 모습으로 가장 큰 일을 시킨다. 소품 하나로 이야기의 지도를 그리는 솜씨다. 나라면 세 번째쯤에서 새 인형을 등장시켰을 것이고, 그 순간 영화는 망했을 것이다.
인정할 한계도 적는다. 토끼 때문에 돌아가는 두 번 모두 어른들이 아이를 설득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고, 그 설득 실패가 두 번째에는 다소 편리한 장치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떠나는 차 안에서 가장 많이 망가진 것이 가장 먼저 건네진다. 좋은 영화에서 소품은 그렇게 쓰인다. 사람보다 먼저 상하고, 사람보다 늦게 버려진다.
댓글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