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8
플로리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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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이라는 자리, 다섯 낱말
이 영화는 디즈니월드 건너편에서 찍었다. 모텔 이름은 매직 캐슬. 실제로 그 자리에 있는 모텔이고, 세트를 짓지 않고 그 건물에서 그대로 찍었다고 한다. 그 사실 하나가 이 영화의 거의 전부를 설명한다고 나는 처음에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늘 그렇듯, 절반만 맞았다.
작품을 한 줄로 요약하는 대신 낱말 다섯을 골랐다. 보라, 헬리콥터, 입장권, 이사, 프로젝트. 다섯 다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놓인 자리 이야기다.
보라
처음 눈에 들어오는 건 벽이다. 모텔 외벽이 온통 연보라색이다. 옆에는 퓨처랜드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고, 조금 가면 오렌지 월드라는 기념품 가게가 있다. 벽화에는 「플로리다에 온 걸 환영합니다, 좀 가져가세요」 하는 식의 문구가 적혀 있다. 전부 지나가는 관광객을 세우려고 칠한 색이고, 세우려고 세운 간판이다.
그런데 그 색 아래에서 사는 사람은 관광객이 아니다. 여섯 살 무니와 엄마 핼리는 그 방에 방세를 내며 산다. 보라색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칠한 색인데, 머무는 사람은 그 색을 매일 본다. 같은 색이 누구에게는 하루의 배경이고 누구에게는 여름 전체의 배경이다. 색은 그대로인데 서 있는 자리가 다르다.
헬리콥터
이 영화에는 음악이 거의 없다. 대신 소리가 있다. 모텔 근처에 관광 헬리콥터가 뜨고 내리는 곳이 있어서 하늘에서 자꾸 프로펠러 소리가 내려온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그 소리를 등장인물 하나처럼 여겼다고 말한 걸 읽었다. 처음엔 촬영에 방해였는데 나중엔 그냥 두기로 했다는 이야기다.
그 소리가 그렇게 자꾸 들리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헬리콥터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의 교통수단이다. 돈을 내고 올라가 아래를 구경하는. 모텔 주차장에서 트림 대회를 하는 아이들 머리 위로 그 소리가 지나간다. 아이들은 올려다보지도 않는다. 자리를 정하는 건 높이다. 같은 하늘 아래 있어도 한쪽은 구경하고 한쪽은 구경당하며, 구경당하는 쪽은 그 사실을 모른다.
입장권
어느 날 신혼부부 한 쌍이 이 모텔에 들어온다. 예약을 잘못한 모양이다. 아내가 소리친다. 「여긴 디즈니랜드도 아니잖아!」 이 대사가 이 영화에서 가장 정확한 지도다. 디즈니월드는 건너편에 있는데, 이 모텔에서 거기까지 가는 길은 거리로 재지 않는다. 입장권으로 잰다.
핼리는 처음에 싼 향수를 사다가 근처 리조트 호텔 앞에서 관광객에게 판다. 그게 막히자 나중에는 손에 들어온 디즈니 입장권 넉 장을 팔아 방세를 댄다. 입장권은 핼리에게 놀러 가는 표가 아니라 환전 수단이다. 건너편에 들어갈 수 있는 종이가 이쪽에서는 며칠치 방값으로 바뀐다. 정기권을 끼니로 바꾸는 사람,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는 사람, 마일리지를 팔아 월세를 내는 사람. 같은 물건이 어디 서 있느냐에 따라 다른 물건이 된다.
이사
모텔에서 손님은 손님이고 주민은 주민이다. 그런데 이 모텔에서 사는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 짐을 빼서 창고에 넣고, 옆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돌아온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면 법적으로 거주자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는 이걸 설명하지 않고 보여 준다. 핼리와 무니가 짐을 옮기고, 또 돌아온다.
공간으로 보면 이것은 집이 아니다. 집은 떠날 필요가 없는 곳이다. 그런데 매직 캐슬의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 떠나야 거기서 계속 살 수 있다. 머물기 위해서 떠난다. 모순이지만 모순이 규칙이 되면 사람들은 그냥 따른다. 관리인 바비도 그 규칙을 집행하는 쪽이다. 그는 아이들을 눈여겨보고 챙기지만 규칙은 바꿀 수 없다. 자리가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중간에 선 사람이다.
프로젝트
제목에는 사람 이름도 모텔 이름도 없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이 말은 두 가지를 가리킨다고 한다. 하나는 1960년대 디즈니가 올랜도 일대의 땅을 사 모으던 사업의 이름이다. 다른 하나는 2008년 금융 위기 뒤 집을 잃은 사람들을 돕던 지원 사업을 부르던 말이다. 같은 낱말이 거대한 놀이공원을 짓는 일과, 그 옆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동시에 가리킨다.
영화는 어느 쪽인지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 다다. 놀이공원이 생기지 않았으면 그 길가에 모텔이 그렇게 늘어서지 않았을 테고, 모텔이 없었으면 집 잃은 사람들은 다른 어딘가로 갔을 것이다. 한 사업이 다른 사업의 조건이 된다. 이게 내가 처음 세운 가설, 「건너편이라는 위치가 전부다」가 절반만 맞은 이유다. 위치만이 아니라 시간이 있다. 땅을 사 모은 1960년대와 집을 잃은 2008년 사이의 반세기가 이 보라색 벽 안에 들어 있다.
다섯 낱말을 다시 늘어놓는다. 보라는 보여 주는 색이고, 헬리콥터는 내려다보는 소리고, 입장권은 건너가는 종이고, 이사는 머물기 위한 떠남이고, 프로젝트는 그 모든 것을 만든 사업의 이름이다. 다섯 다 「건너편」을 가리킨다. 아이들은 그걸 모른다. 모르니까 그 주차장에서 여름 내내 웃는다. 어른은 아는데, 알아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보고 나서 한참 생각했다. 매직 캐슬과 매직 킹덤, 이름이 닮은 두 성 사이의 길이 어째서 그렇게 먼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의 문제인지. 영화는 답하지 않았고 나도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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