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8

플로리다 프로젝트

작품 페이지에서 댓글 반응 보기 →

그럴 수 있다, 그래도 그건 아니다

무뚝뚝· 2026. 10. 24.· 2,219자

호텔 조식 뷔페예요. 아이는 접시 가득 담아 와서 쉬지 않고 떠들고, 엄마는 맞은편에 앉아 거의 말이 없어요. 평소 같으면 아이보다 엄마 입이 더 바빴을 텐데 그날은 듣기만 하더라고요. 자기 방값도 못 내는 사람이 밥값은 남의 방에 달아 놓고 나와요. 나는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제일 오래 남았어요. 아이가 먹는 걸 보면서 엄마가 울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내 눈에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어요.

영화 얘기부터 조금 할게요. 디즈니월드 건너편, 보라색 벽의 모텔에 여섯 살 무니와 엄마 핼리가 살아요. 핼리는 스물둘이래요. 춤추는 가게에서 일하다 손님 요구를 거절하고 잘렸고, 그 뒤로 일자리를 못 구해요.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으려면 일자리를 알아본 기록을 내야 하는데 그것도 못 내고요. 그 여름 한 철을 영화가 따라가요.

나는 이 글에서 무니 얘기는 많이 안 하려고요.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는 다들 쓰더라고요. 나는 엄마 쪽을 봤어요. 스물둘짜리 엄마가 그 여름에 한 일 세 가지를 놓고, 나이 먹은 사람 눈에 어떻게 보였는지만 적을게요.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하나. 핼리는 도매로 떼 온 싸구려 향수를 들고 근처 리조트 호텔 주차장에 가서 관광객한테 팔아요. 경비한테 걸리면 물건을 빼앗기고, 그 자리에서 경비한테 욕을 퍼부어요. 다른 날엔 옆 모텔에서 방값을 안 깎아 준다고 바닥에 음료수를 부어 버리고 나오고요. 어른이 볼 땐 한심한 짓이죠. 그런데 나는 보면서 저 나이엔 그럴 수 있다 싶었어요. 스물둘이면 세상이 나한테 뭘 안 해 주는 게 다 억울할 때잖아요. 억울한 걸 입으로 푸는 것 말고는 방법을 모르는 나이예요. 나도 저 나이에 윗사람 책상에 서류 던지고 나온 적 있거든요. 자랑은 아니고요.

둘. 잰시 생일이라고, 핼리가 애들 둘을 데리고 차를 얻어 타고 놀이공원 근처 길가까지 가요. 디즈니 불꽃놀이가 올라오는 걸 풀밭에서 올려다보면서 컵케이크를 나눠 먹어요. 입장권 살 돈은 없으니까 담 밖에서 보는 거죠. 애들은 그게 공짜 구경인지 몰라요. 그냥 자기 생일에 하늘에서 불꽃이 터진다고 알아요. 나는 이 장면에서 돈 생각을 했어요. 저 불꽃은 저 안에서 돈 낸 사람들 보라고 쏘는 건데, 담 밖에서도 똑같이 보이잖아요. 컵케이크 값만 들었을 거예요. 핼리가 가진 돈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생일이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애들한테 그보다 비싼 생일을 해 주고도 저만큼 좋아하는 얼굴을 못 봤어요.

플로리다 프로젝트 포스터

셋. 이건 그래도 아니다 싶은 쪽이에요. 핼리 친구 애슐리는 식당에서 일하면서 남는 음식을 몰래 갖다 줬어요. 애들이 빈 건물에 불을 낸 뒤로 애슐리가 거리를 두고, 음식도 끊겨요. 핼리는 그다음에 방에서 남자를 받아요. 아이한테 수영복 입은 자기 사진을 찍게 해서 광고에 올리고요. 애슐리가 그 일을 알고 핼리를 몰아세우자, 핼리가 애슐리를 바닥에 눕혀 놓고 때려요. 애슐리 아들 스쿠티가 보고 있는 앞에서요. 카메라가 그 아이 눈높이에 있어서 맞는 사람은 잘 안 보이고 보는 아이만 보여요. 저건 아니에요. 돈 때문에 한 일들은 내가 뭐라고 할 처지가 못 돼요.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남의 애가 보는 앞에서 그 애 엄마를 때리는 건 돈이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그건 스물둘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넘으면 안 되는 선이에요.

그 뒤에 아동가족국 직원들이 와요. 핼리는 처음엔 순순히 따라요. 그러다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니까 소리를 지르고요. 영화에 마지막으로 남는 핼리 얼굴은 벌어진 입이에요. 여름 내내 경비한테 욕하고 모텔 관리인한테 대들던 그 입이요. 끝까지 남은 게 그거더라고요.

처음 얘기로 돌아가요. 조식 뷔페는 애슐리를 때린 뒤, 그러니까 거의 마지막 날이에요. 핼리는 아마 자기한테 무슨 일이 닥칠지 알았을 거예요. 그래서 그날은 입을 다물고 아이가 먹는 것만 봤겠죠. 여름 내내 입으로 살던 사람이 마지막 아침에 입을 닫은 거예요. 나는 그걸 철이 들었다고 하진 않을래요. 하루아침에 철이 드는 사람은 없고, 저 나이에 저 형편이면 더 그래요.

핼리한테 한마디 하라면 훈계는 안 할래요. 애한테 잘못했다고 할 생각도 없고요. 그냥 이 말이에요. 그 조식, 잘 사 줬어. 네가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이야. 그 밥값을 남의 방에 달아 놓은 건, 글쎄, 그건 또 네가 한 일 중에 제일 너다운 일이고.

일은 일이다, 하고 넘기면 편할 텐데 이 영화는 그게 잘 안 돼요. 저 엄마가 잘못했다는 것도 알겠고 저 엄마밖에 없다는 것도 알겠고, 그 둘이 같이 있는 게 사람 사는 일이라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다음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댓글

0 / 1,000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다른 리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