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4

킬러들의 쇼핑몰

작품 페이지에서 댓글 반응 보기 →

남긴 게 총이더라고요

무뚝뚝· 2026. 10. 12.· 3,197자

액션이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일단 의심부터 해요. 대단하다는 건 보통 돈을 많이 썼다는 뜻이거든. 총은 많이 나오는데 사람은 안 남는 걸 여러 번 봤어요. 2024년 1월에 디즈니플러스에서 여덟 편으로 나온 이 드라마도 그래서 한참 미뤄 뒀어요. 제목부터가 좀 그렇잖아. 킬러들의 쇼핑몰이라니, 뭘 또 세게 만들려고 그러나 싶었어요. 그러다 별 기대 없이 틀었어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하나를 안 하더라고요. 주인공을 근사하게 보내 주는 일. 삼촌 정진만이 시작하자마자 죽어요. 그것도 자살로 정리된 채로. 조카 지안은 그 집에 혼자 남고, 냉장고 뒤에 엎드려서 미니밴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요. 울 틈이 없어요. 원래 주인공이던 사람은 그다음부터 지나간 장면으로만 나와요. 그게 1화예요.

보통은 이런 사람을 보낼 때 공을 들이잖아요. 빗속에서 쓰러지든, 마지막 말을 길게 남기든. 여기선 그걸 안 해요. 그냥 없어진 자리부터 시작해요. 나는 그게 솔직하다고 봤어요. 사람이 없어지면 남은 사람한테 제일 먼저 닥치는 건 슬픔이 아니라 처리할 일이거든. 집이며 돈이며 짐이며, 그게 먼저 와요.

삼촌이 남긴 것도 편지가 아니라 쇼핑몰이에요. 겉으로는 농기구 파는 인터넷 가게인데 자기 집 지하에 진짜 물건이 있어요. 다크웹에서 무기를 파는 데였지. 손님도 등급으로 나눠서 받아요. 죽이는 사람은 레드코드, 염탐하는 사람은 퍼플코드, 뒤를 치우는 사람은 옐로코드. 창고를 지키는 사람도 따로 있고요. 나는 이 대목이 좋았어요. 거창한 사연을 안 붙이고 그냥 장사로 그려 놨거든.

삼촌도 원래는 바빌론이라는 큰 용병 회사에서 팀장을 하던 사람이에요. 거기 베일이라는 자가 하는 짓이 영 아니어서 다 내려놓고 조카 곁으로 돌아왔다고 해요.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그 사람을 성자로 만들진 않아요. 손 씻고 와서 한 일이 무기 장사거든. 사람 죽이는 일에서 사람 죽일 물건 파는 일로 옮겨 온 거지. 그게 깨끗하냐 하면 아니죠. 먹고살려고 한 거고 조카 먹이려고 한 거고, 거기다 무슨 뜻을 더 붙이지 않는 게 나는 마음에 들었어요.

삼촌이 조카한테 해 준 것도 좋은 말이 아니에요. 일곱 살에 데려와서 총 쏘는 법을 가르쳐요. 친구한테 보내서 무에타이를 배우게 하고. 새총도 잘 쏘게 되고 중국어도 하게 돼요. 같이 액션 영화를 보면서는 사람 눈에 안 보이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려 줘요. 입버릇은 "잘 들어, 지안" 이 한마디고.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해요.

킬러들의 쇼핑몰 스틸컷

안 하는 게 맞지. 그 집 사정을 보면 그래요. 애 부모가 바로 그 레드코드 손에 죽었거든. 그런 집에서 사랑한다고 말해 봐야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어른들이 애한테 흔히 하는 말이 있잖아. 다 너를 위해서다, 하는. 틀린 말은 아닌데 아무 말도 아니잖아. 줄 거면 쓸 걸 줘야지. 이 삼촌은 말 대신 쏘는 법을 줬어요.

어린 조카가 철망 앞에서 주먹을 올리고 서 있는 장면이 있어요. 그 나이에 배우는 게 그거예요. 나는 그 장면에서 불쌍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애가 불쌍한 얼굴을 안 하거든. 그냥 시키니까 하는 얼굴이에요. 애들이 원래 그래요. 자기 사정이 남들하고 다른 줄도 모르고, 그게 그 집의 보통인 줄 알고 하는 거지.

킬러들의 쇼핑몰 스틸컷

그 삼촌을 하는 배우는 여덟 편 내내 거의 웃지를 않아요. 표정이 하나예요. 처음엔 저래도 되나 싶었는데 보다 보니까 그게 맞더라고. 사연 많은 사람이 사연 많은 얼굴까지 하면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이에요. 지나간 장면에서도 서러운 척을 안 해요. 요즘은 눈에 힘을 줘서 슬픔을 설명하는 연기가 많은데, 이 사람은 설명을 안 하더라고. 참 잘하더라고요.

조카를 하는 배우도 그래요. 인터뷰를 보니까 석 달 전부터 총 쏘는 연습을 하고 무에타이를 배웠대요. 그 얘길 하면서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말하지도 않더라고. 극 중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소파 뒤에 엎드려서 조준경 달린 총을 겨누는데, 비장하지가 않아요. 무서운데 해야 되니까 하는 얼굴이지. 사람이 진짜 겁나면 표정이 크지 않잖아요.

킬러들의 쇼핑몰 스틸컷

집으로 몰려오는 쪽도 하나같이 사람이에요. 바빌론에서 삼촌하고 같이 일했다는 스나이퍼가 있고, 맨손이든 총이든 칼이든 다 한다는 여자 킬러도 있고. 드론이 총을 쏘고 폭탄도 터져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세상을 가지려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지하에 있는 물건이 탐나서 오는 거지. 돈 되는 걸 가지러 오는 사람들이에요. 그게 차라리 무섭더라고요.

더 고약한 건 가까운 데 있었어요.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찾아온 애가 있거든. 컴퓨터 잘하는 애요. 그 애가 꾸민 일 때문에 삼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쪽으로 몰린 거예요. 조카를 살리려고 그랬다고 하는데, 나는 그 대목에서 말이 안 나왔어요. 사람을 죽이는 게 꼭 총인 건 아니잖아요. 멀쩡한 얼굴로 와서 웃는 쪽이 더 하지.

그 와중에 조카를 지켜 주는 사람도 생겨요. 예전에 삼촌한테 신세를 졌다는 킬러예요. 은혜 갚으러 온 거지. 이 드라마가 재밌는 게, 그 관계도 결국 주고받은 걸로 굴러가요. 의리라고 길게 설명하지 않아요. 빚이 있으니까 갚는 거예요. 나는 그 무뚝뚝함이 사람 사는 것하고 가깝다고 봤어요.

끝에 가서 조카가 그 쇼핑몰을 갖게 되는데, 총으로 끝내지 않아요. 앉아서 조건을 놓고 말로 정리해요. 어린애가 일곱 살부터 배운 게 총 쏘는 법인데, 마지막에 쓴 건 셈하는 머리예요. 그게 좀 웃기지. 결국 장사하는 집 애였던 거예요. 삼촌이 물려준 게 총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그러고는 죽은 줄 알았던 삼촌이 살아서 돌아와요. 문으로 들어오면서 웃고, 조카도 따라 웃고. 나는 좀 웃었어요. 사람 하나 죽여 놓고 여덟 편을 끌고 오더니 기어이 데려오는구나 싶어서. 그런데 밉지가 않았어요. 없어졌다는 걸 끝까지 못 견디는 게 사람이잖아. 만드는 쪽도 보는 쪽도 그걸 못 견뎌서 저러는 거예요. 사람이 그래요.

물론 중간에 엉킨 데가 있어요. 현재로 갔다 과거로 갔다 그 과거의 과거로 또 가니까 따라가다 지치는 데가 있지. 화면 색을 바꿔서 언제 적 이야기인지 표를 내 주긴 하는데, 그래도 헷갈려요. 짐승 한 마리가 컴퓨터로 만든 티가 나는 장면도 있고. 그게 억울하냐 하면, 글쎄. 나는 그 정도는 넘어가요. 앞뒤가 다 맞는 이야기를 보려고 드라마를 트는 건 아니니까.

끝나고 남은 건 하나예요. 어떤 어른은 애한테 말을 못 남기고 기술을 남기는구나. 그게 좋은 거냐 나쁜 거냐는 나도 모르겠어요. 좋은 삼촌이라고 하기엔 지하에 쌓아 둔 게 너무 많고, 나쁜 삼촌이라고 하기엔 애가 살아남았으니까. 저런 집도 있구나, 하고 봤어요. 그러고 말았어요.

댓글

0 / 1,000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킬러들의 쇼핑몰의 다른 리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