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4
킬러들의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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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생
봤다. 「킬러들의 쇼핑몰」. 2024년 1월에 디즈니+에 여덟 편으로 올라온 것. 강지영 소설이 원작이라고 하고, 이권이 극본과 연출을 했다. 뉴욕타임스가 그해 최고의 국제 TV쇼로 뽑았다고 하고, 올여름엔 시즌2도 나왔다고 한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총이 많이 나온다. 드론도 나오고 개처럼 생긴 로봇도 나온다. 그 정도면 됐다 싶었다. 좀 길었다. 좋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삼촌이 죽고, 조카 집에 킬러들이 오고, 조카가 지하실로 내려가고, 끝. 중간에 14년 전으로 갔다가 돌아온다. 여덟 편 내내 거의 한 집이다. 집 밖으로 잘 안 나간다. 집이 보통 집이 아니라서 그렇다. 겉은 농기구 가게 딸린 주택, 속은 요새, 지하는 킬러들한테 무기 파는 쇼핑몰 창고. 조카 지안은 그 집에서 컸는데 그걸 몰랐다. 보통은 한 집에서 여덟 편 버티는 게 단점이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배경이 안 바뀌니까 사람 얼굴만 보면 된다. 피곤한 날 보기엔 그런 드라마가 낫다. 집에 오면 또 집이니까.
가게부터 보자. 삼촌 가게 창고엔 호스가 둘둘 말려 있고 상자가 선반에 쌓여 있고 공구가 벽에 걸려 있다. 그 아래 지하에 총이 있다. 위층은 농기구, 아래층은 무기. 두 층 다 재고 관리는 똑같을 거다. 들어온 거 세고 나간 거 세고. 지하 손님은 등급으로 나눠서 받는다. 죽이는 쪽, 엿보는 쪽, 뒤처리하는 쪽. 거래처 분류다. 사장은 두 가게 장부를 같이 썼을까. 나는 그게 제일 궁금했는데 드라마는 안 알려 준다.
이 집에서 내 눈에 들어온 건 알바생이었다. 삼촌 정진만의 가게는 겉으로는 농기구 파는 인터넷 가게다. 거기 알바생이 둘이다. 조카 지안, 그리고 지안의 동창 정민. 집 지하에 있는 진짜 가게에도 알바생이 있다. 브라더라고 부른다. 복면을 쓰고 창고를 지킨다. 말을 더듬는다. 사장이 1화에서 죽고 나면 가게를 굴리는 건 전부 알바생들이다. 회사 다녀 본 사람은 안다. 사장 없는 날 회사가 더 잘 돌아간다는 걸. (나도 사장 출장 간 날 제일 열심히 일했다. 눈치 볼 사람이 없어서.)

알바생 중에 사장을 죽게 만든 애도 있다. 정민이다. 컴퓨터를 잘한다. 머더헬프라는 그 지하 쇼핑몰 사이트를 우연히 뚫었다가 나쁜 쪽에 붙잡혔고, 지안이 납치된 것처럼 꾸며서 삼촌을 몰아갔다. 삼촌은 그래서 죽은 걸로 됐다. 지안을 살리려고 그랬단다. 브라더가 소리친다. '저 놈 믿지 마, 사장님은 배정민 때문에 죽었다'고. 알바생이 알바생을 고발하는 가게. 그런 가게도 있다. 사장이 뽑은 알바가 사장을 잡는 것도, 뽑힌 적 없는 알바가 사장 편인 것도 회사랑 비슷하고.

브라더 얘기를 더 하자면, 이 알바생은 지안을 지하에 가둔다. 지안이 삼촌이 남긴 사용 설명서를 읽고 쇼핑몰 주인이 되겠다는 조건을 받고서야 내보낸다. 알바가 사장을 뽑는 가게다. 총무팀이 대표이사 임명장을 쓰는 격이다. 나는 이게 이 드라마에서 제일 그럴듯했다. 어느 회사든 진짜 권한은 열쇠 가진 사람한테 있다. 사장은 죽고 없고, 열쇠는 복면 쓴 알바가 들고 있고.
삼촌 편에서 오는 사람들도 알바 같다. 민혜라는 킬러가 온다. 옛날에 삼촌한테 신세를 졌다고 지안을 지키러 왔다. 중국 사람이 하는 한국말로 말한다. 회사로 치면 거래처 사람이 와서 남의 회사 야근을 해 주는 거다. 8화엔 민혜와 브라더가 방벽을 치고 집을 지킨다. 폭탄 든 용병 앞에서 무너지고, 파신과 민혜는 지안을 지하로 내려보낸다. 사장 조카 하나 살리자고 거래처 사람과 알바가 몸으로 문을 막는다. 회사에서 그런 일은 없다. 그래서 드라마겠지.
삼촌이 조카한테 준 것도 신입 교육 같다. 총 쏘는 법, 새총, 중국어. 무에타이는 친구 파신한테 외주를 줬다. 중요한 교육일수록 외주를 준다. 회사도 그렇다. 신입 교육은 늘 옆 부서 대리가 한다. 삼촌은 그 사이에 가게를 봤겠지. 주문은 들어오니까.
삼촌은 조카를 혼자 키웠다. 일곱 살에 데려와서 총 쏘는 법을 가르쳤다. 요즘 예능이라면 이렇게 간다. 거실에 관찰 카메라를 단다. '말 없는 삼촌의 특별한 육아'. 삼촌이 새총을 사 오면 패널이 '어머' 한다. 자막으로 '무뚝뚝 삼촌의 진심'. 조카가 무에타이 도장에서 맞고 오면 슬로모션. 중간에 전문가가 나와서 애착 얘기를 한다. 말을 못 하는 삼촌 친구 하나가 지안을 지키려고 싸우는데, 그 사람은 사람들이 '양말삼촌'이라고 부르며 좋아했다고 한다. 예능이면 그 사람 자막이 제일 길었을 거다. '말 대신 몸으로 지키는 남자'. 마지막엔 몰래 온 손님으로 다 큰 조카가 나오고 삼촌이 운다. 안 울면 울 때까지 찍는다.
텔레비전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어른을 보면 먼저 불쌍하게 만들고 그다음에 감동적으로 만드는데, 그 두 단계를 거치고 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사연'이 되어서, 뭘 해도 자막이 대신 말해 주고 뭘 안 해도 패널이 대신 운다. 이 드라마에는 자막이 없다. 삼촌은 설명을 안 한다.
지안을 불쌍한 자리에 세우지 않는다는 얘기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한동안 말을 못 했다는 것도 지나가듯 보여 준다. 삼촌은 '강하면 짖지 않아'라고 한다. 3화 제목이 그거다. 무에타이를 가르치는 파신은 '굼벵이, 느려'라고 한다. 둘 다 칭찬이 아니다. 둘 다 그냥 일이다. 감독은 성장이 보호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하는 거라고 했다. 예능이라면 그 말을 자막으로 넣었을 거다. 여기선 지안이 그냥 한다. 새총으로 드론을 떨어뜨리고, 저격수를 쏘고, 마지막엔 총 대신 말로 조건을 걸어서 쇼핑몰을 넘겨받는다. 알바생이 사장이 되는 데 여덟 편 걸렸다. 빠른 편이다.

끝은 이렇다. 싸움이 끝나고 청소 업체가 온다. 집을 치운다. 그다음 날 아침에 죽은 줄 알았던 삼촌이 들어온다. 나는 삼촌보다 청소 업체가 더 반가웠다. 총질한 집도 누가 치워야 한다. 그 사람들도 아마 알바겠지. 삼촌이 돌아온 건 좀 그랬다. 시즌2를 하려면 그래야 했겠고.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할 일이 밀린 주문 확인이면 좋겠다. 사장이 없는 동안 가게는 돌아갔으니까. 청소 업체가 치운 집은 아마 깨끗했을 거다. 다음 총알이 올 때까지는.
우리 집은 내가 치운다. 알바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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