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4
킬러들의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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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론이 싫다
나는 드론이 싫다. 결혼식장 천장에서 윙윙거리는 드론은 더 싫다. 남의 집 마당 위에 떠서 카메라를 아래로 내리고 있는 드론은 참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드론은 파리 소리를 낸다. 파리는 적어도 손으로 잡을 수 있다. 드론은 잡으려 들면 주인이 나타나 사유 재산이라고 말한다. 누가 그 소리를 좋아하는가. 나는 그 주인의 얼굴을 끝까지 보고 싶지 않다. 나는 파리채를 들고 하늘을 노려보는 사람이다. 파리채는 드론에 닿지 않는다. 그게 더 화가 난다.
그 화를 풀어 준 것이 이 드라마다. 2024년 1월 17일부터 2월 7일까지 디즈니+에 여덟 편으로 올라온 「킬러들의 쇼핑몰」. 강지영의 소설이 원작이고, 이권이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1화는 초토화된 집에서 시작한다. 삼촌이 죽고 혼자 남은 대학 새내기 정지안이 날아드는 총알을 피해 집 안을 기어다닌다. 그 집으로 총을 단 드론이 날아든다. 지안은 삼촌이 쥐여 준 새총으로 그것을 떨어뜨린다. 새총이다. 고무줄과 나무 손잡이. 처음에는 지안도 그 물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드디어 누군가 드론의 본질을 찍었다. 드론은 남의 집 위에 떠서 남의 것을 가져가려는 물건이고, 그것을 떨어뜨리는 데는 아이의 장난감이면 충분하다는 것.

집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드라마의 무대는 거의 한 집이다. 겉은 농기구 파는 인터넷 가게가 딸린 보통 주택이다. 속은 바깥의 공격을 막게 지은 요새이고, 지하는 킬러들에게 무기를 파는 쇼핑몰의 사무실이자 창고다. 지안은 그 집에서 자랐는데 그 집을 모른다. 이 드라마는 지안이 아는 만큼만 보여 준다. 그래서 보는 사람도 여덟 편 내내 지안과 같이 벽을 더듬게 된다. 지하로 내려가면 삼촌이 남긴 사용 설명서가 있다. 유언 대신 설명서. 나는 그 선택이 마음에 든다. 설명서는 읽는 사람의 감정을 구걸하지 않는다. 1번, 2번, 3번만 있다.
솔직히 말하자. 이 드라마는 길다. 이야기가 지금에 있다가 14년 전으로 가고, 거기서 더 전으로 간다. 화면 빛깔로 때를 알려 주는데도 나는 두 번 되감았다. 회차 제목을 보면 이 드라마가 삼촌 이야기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다. 2화 제목이 「정진만, 정진만, 정진만」이고 6화 제목이 또 「정진만」이다. 소설 읽듯 좋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는 더딘 쪽에 섰다. 과거를 뒤섞으면 깊어진다는 믿음이 있다. 뒤섞인 과거는 그냥 뒤섞인 과거다. 긴 회상은 길면 그냥 길다. 뉴욕타임스가 이 드라마를 2024년 최고의 국제 TV쇼로 꼽았다는데, 그 목록을 만든 사람은 되감기 버튼이 없는 텔레비전을 쓰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드라마를 좋아한다. 이유는 하나다. 지안의 태도. 이 드라마는 지안에게 울 시간을 주지 않는다. 삼촌이 죽은 다음 날부터 총알이 날아오고, 지안은 숨고, 기어가고, 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총 대신 말로 쇼핑몰을 넘겨받는다. 포스터에서도 지안은 빨간 운동복 차림으로 총 든 어른들 한가운데 앉아 있다. 그 자리가 맞다. 감독은 성장이란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문장보다 새총을 믿는다. 새총은 설명을 안 한다. 당기고 놓는다. 지안의 특기는 새총과 중국어다. 둘 다 돈이 안 든다.

8화를 보자. 제목이 「잘 들어, 정지안」이다. 킬러들이 집으로 몰려온다. 민혜와 브라더가 방벽을 치고 집을 막는다. 폭탄과 총을 든 용병 앞에서 결국 무너진다. 파신과 민혜는 지안을 지하로 내려보내고, 저격수 성조가 둘을 쓰러뜨리고 지하로 따라 내려간다. 지안이 성조를 쏜다. 여덟 편 동안 삼촌이 「잘 들어」라고 했고, 마지막 편에서 지안은 듣는 사람이 아니라 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남은 킬러들을 앉혀 놓고 조건을 건다. 삼촌 대신 나한테 붙으면 쇼핑몰을 싸게 쓰게 해 주겠다고. 총으로 시작해서 영업으로 끝난다. 나는 그 끝이 마음에 든다. 영업은 드론보다 조용하다.
나는 액션물의 어떤 관습을 견디지 못한다. 적을 앞에 두고 늘어놓는 설명, 구하러 온 사람의 느린 걸음, 죽기 전에 하는 긴 말, 천장을 올려다보며 흘리는 한 줄기 눈물. 이 드라마에는 그게 없다. 지안을 구하러 온 킬러 소민혜는 설명하지 않는다. 와서 드론을 떨어뜨리고, 지안에게 창고 밑으로 내려가라고 말한다. 무에타이 스승 파신은 지안에게 「굼벵이, 느려」라고 한다. 그게 그의 교육이다. 지하 창고를 지키는 브라더는 복면을 쓰고 말을 더듬는다. 말을 못 하는 삼촌 친구 하나는 지안을 지키려고 싸우는데, 이 드라마는 그의 침묵을 눈물의 재료로 쓰지 않는다. 그는 그냥 싸운다. 아무도 자기 사연을 읊지 않는 집이다.
품위란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가 왜 왔는지, 왜 쏘는지, 왜 떠나는지 말하지 않고 그냥 하는 것. 이 드라마의 어른들은 전부 그렇다. 삼촌은 조카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 「강하면 짖지 않아」라고 가르친다. 3화 제목이 그 말이다. (물론 가끔은 설명이 필요하다. 세금 고지서 같은 것.)
물건 하나를 보자. 소민혜의 옷이다. 검은 옷에 똑단발, 붉은 입술. 감독은 이 옷을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참고해 만들었고, 싸우기 좋게 고른 옷이라고 했다. 나는 반만 동의한다. 똑단발은 맞다. 창고의 어둠 속에서 얼굴의 윤곽을 세우는 머리다. 붉은 입술도 맞다. 먼지투성이 선반 사이에서 유일하게 색이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옷은 만화에서 왔고 만화에 남아 있다. 농기구 창고의 먼지와 철제 선반 사이에서 그 옷만 다른 세계의 것처럼 보인다. 이 드라마가 지안에게도 그런 옷을 입혔다면 나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안은 운동복이다. 운동복은 먼지가 묻어도 된다. 새총을 쏘는 사람의 옷은 그래야 한다.

길다. 좋다. 둘은 모순이 아니다. 이 드라마에는 총 쏘는 드론과 개 모양 로봇과 저격총이 나오고, 그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은 고무줄 달린 나무 막대다. 나는 그 순서가 마음에 든다. 돈 든 것이 돈 안 든 것에 진다. 세상의 모든 드론은 그렇게 떨어져야 한다. 드론은 여전히 싫다. 그러나 새총이 있는 집이라면 드론이 와도 된다. 나는 이제 하늘에서 윙윙 소리가 나면 고무줄부터 찾을 것이다. (찾아도 쏘지는 않을 것이다. 사유 재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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