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6
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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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무엇을 보여 주지 않기로 했는가
질문에서 시작하겠다. 「타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개 패를 기억한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지탱하는 것이 패가 아니라 패를 다루는 방식, 더 정확히는 패를 혼자 두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묻겠다. 이 영화는 무엇을 보여 주지 않기로 했는가.
첫 번째 질문.
영화는 고니가 잃는 장면으로 열린다. 가구공장에서 일하며 삼 년 동안 모은 돈이 짜인 판에서 한번에 사라진다. 당신은 여기서 그가 무엇에 어떻게 속았는지를 또렷하게 보여 주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화투패를 혼자 화면에 두지 않는다. 카메라는 얼굴에 있다가 패를 돌리는 손으로 내려오고, 손에서 다시 얼굴로 올라간다. 패는 언제나 누군가의 손과 함께, 누군가의 얼굴과 함께 있다. 아니, 다시 말하겠다. 보여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혼자 두지 않는 것이다. 혼자 둔 패는 정보가 되고, 손과 얼굴에 붙은 패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원작은 화투의 서사였다. 영화는 그 화투를 덜어 냈다. 시나리오에 남긴 화투판은 아홉 번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자기가 가진 가장 화려한 것을 아홉 번으로 줄이고, 비워진 자리에 얼굴과 말을 넣기로 한 것이다. 평경장은 도박판에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원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는 고니의 얼굴이 같은 화면에 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한 프레임 안에 함께 놓이는 시간이, 이 영화에서는 패가 뒤집히는 시간보다 길다.

두 번째 질문.
그렇다면 마지막은 무엇을 보여 주지 않기로 했는가. 영화의 마지막 승부는 배 안에서 벌어진다. 한 장소, 한 테이블, 열다섯 분. 카메라가 할 수 있는 것은 넷을 담는 쇼트, 둘을 담는 쇼트, 하나를 담는 쇼트뿐이다. 당신은 이 좁음을 답답함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요청이라고 읽는다. 여기서 나가지 말라는 요청, 끝까지 이 자리에 함께 앉아 있으라는 요청.

그런 다음 영화는 닫힌다. 고니는 공중전화를 지나치다 멈추고, 돌아와서 전화를 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전화를 받는 사람을 보여 주지 않는다. 나는 이 대목을 쓰지 않으려 했다. 쓰고 나면 그것이 설명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적어 두겠다. 첫 장면에서 이 영화는 그가 잃는 순간을 끝까지 보여 주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 영화는 그가 무엇을 되찾았는지를 끝내 보여 주지 않는다. 잃는 것은 화면 안에 있고 되찾는 것은 화면 밖에 있다, 라는 자리바꿈. 그것이 이 영화가 내놓은 답이다.
나는 이 생략을 지지한다.
마지막 질문은 당신에게 넘기겠다. 화면이 끝내 보여 주지 않은 그 통화를 당신은 지금 누구와의 통화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근거는 화면 안에 있는가, 아니면 당신이 지금 걸고 싶은 전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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