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6

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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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우리는 무엇을 묻고 가는가

고요한땀· 2026. 10. 09.· 1,646자

나는 영수증을 버리지 못한다. 지갑에 접어 넣어 두었다가 반년쯤 뒤에 발견한다. 이미 나간 돈인데 종이를 쥐고 있으면 조금 덜 나간 것 같다. 아까운 것은 돈이 아니다. 아까워했던 시간이 아깝다. 그 시간이 아까워서 또 쥐고 있는다.

그런 내게 한 사내가 손가락 하나를 치켜든다. 「타짜」는 돈을 잃는 사람들의 영화가 아니라, 잃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영화다. 건달로 시작해 사업가가 된 남자가 있다. 곽철용이다. 십억이 걸린 판에서 패가 어그러진다. 파투. 물러설 자리가 생긴다. 그는 물러서지 않는다.

타짜 스틸컷

그가 하는 말은 다섯 음절이다.

묻고 더블로 가!

묻는다는 것은 덮는다는 뜻이다. 덮는다는 것은 없던 일로 하겠다는 뜻이다.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은, 없던 일이 아님을 혼자만 알고 있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저 말은 손실을 지우는 말이 아니라 손실을 혼자 떠안겠다는 선언이다. 더블은 그 선언에 붙는 이자다.

이 사내가 화면에 있는 시간은 139분 중 13분이다. 그 13분 동안 그는 부하에게 담배를 청하고, 길이 막힌다는 보고를 받고, 한 번 더 건다. 길이 막힌다는 보고에 그가 돌려주는 말은 이렇다.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이 문장은 원래 대본에 없었다고 한다. 운전수 역을 맡은 배우가 정적을 메우려 던진 말에 맞받아친 것이 그대로 남았다는 것이다. 즉흥으로 나온 한마디가 사람의 뼈대가 되었다. 우회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 다리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 그 믿음은 멋있고, 멋에는 값이 붙는다.

맞은편에 앉은 청년은 정반대로 설계되어 있다. 고니는 판을 짜 두고 기다린다. 어그러진 패도 그의 몫이다. 그는 잃은 것을 되찾으러 왔고, 되찾기 위해 자기가 무엇을 얼마나 잃었는지를 계속 들여다본다. 영수증을 버리지 못하는 쪽은 사실 이쪽이다. 다만 이쪽은 그 종이를 세고 있고, 저쪽은 쥐고만 있다.

타짜 스틸컷

감독은 인물에 전념하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했다. 시시콜콜 설명하는 대신 등장만으로 짐작하게 하고 싶었다고. 노름에 대해서는 이기느냐 지느냐의 승부이고 게임이라 부르기엔 처절하다고 말했다. 그 말에 기대면 곽철용은 지는 법을 끝내 배우지 못한 사람이고, 이 영화에서 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한다.

타짜 스틸컷

그러나 나는 이 사내를 비웃을 수 없다. 비웃으려면 나는 묻지 않고 일어서 본 적이 있어야 한다. 끝난 관계, 안 맞는 일, 삼 년째 결제만 되고 있는 멤버십, 반쯤 읽다 꽂아 둔 책, 지갑 속의 영수증. 나는 한 번도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일어서지 못했다. 다만 소심해서 더블을 못 걸었을 뿐이다. 더블을 못 건 것을 나는 오랫동안 신중함이라고 불러 왔다.

십삼 년이 지나 이 다섯 음절은 영화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한 개그맨이 올린 영상이 백만 번 넘게 재생되었고, 한 달 사이 배우에게 광고 섭외가 서른 건 넘게 들어왔다. 끝내 그는 햄버거 광고에 서서 패티가 두 장이라고 외쳤다. 목숨을 걸고 하던 말이 패티 한 장 값으로 환산되는 데 십삼 년이 걸린 셈이다. 이것을 타락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나는 그렇게 부르지 않기로 했다. 비극은 충분히 오래되면 농담이 되고, 농담이 되어야 사람들이 매일 입에 올린다. 매일 입에 올려야 잊히지 않는다.

오늘 지갑을 열어 영수증을 한 움큼 꺼냈다. 버리려다 도로 접어 넣었다. 묻고 더블로 간 것이다. 패는 아직 돌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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