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6
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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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의 고광렬을 보다가
타짜를 봤다. 화투는 민화투도 모른다. 패가 도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는 거의 못 따라갔다. 그런데 끝나고 남은 사람은 고광렬이었다.
돈 잃은 청년이 타짜가 되고, 스승이 죽고, 판이 커지고, 배 위에서 끝난다. 중간에 고광렬이 붙는다. 붙어서 전국을 돌고, 같이 따고, 같이 튄다. 주인공은 영화 내내 변하는데 이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고광렬은 판에 앉으면 입을 안 쉰다. 패를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본다. 계속 떠들어서 상대 속을 긁고, 긁어서 흔든다. "무서우면 죽으시든가"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회사 다녀 본 사람은 안다. 회의실에서 제일 말 많은 사람이 제일 일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사람 빠지면 회의가 안 굴러간다. 말로 빈자리를 메우는 데도 체력이 든다. (나도 그 역할 해 봤다.)

이 사람 설정은 남들 버는 만큼만 따면 된다는 쪽이다. 크게 먹을 생각이 없다. 주인공은 잃은 걸 되찾으려고 판에 들어왔는데, 옆 사람은 그냥 출근하듯 들어왔다. 둘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는 게 좀 이상했다. 생각해 보면 회사도 그렇다.
요즘 예능이라면 이런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먼저 '입담 장인' 자막이 붙는다. 하단에 느낌표 세 개가 깜빡인다. 패널들이 스튜디오에서 손뼉을 치며 '저분 진짜 물건이다' 하고 감탄한다. 2부쯤에 가족이 몰래 온 손님으로 나오고, 본인은 안 우는데 패널이 운다. 마지막엔 '사실은 아픔이 있었다'는 자막이 깔리고 음악이 느려진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웃기는 역할을 맡은 사람한테는 대체로 몸이 상하는 일이 배당되고, 그 상함은 본인의 사정으로 다뤄지는 대신 주인공이 독해지는 계기로 정산되는데, 그 정산을 거치고 나면 웃기던 사람의 통증은 그 사람 몫이 아니라 남의 재료가 된다. 이 영화도 그 수순을 쓴다. 고니가 배에 도착했을 때 고광렬은 이미 팔목이 부러져 있다.
다만 끝까지 가지는 않았다. 원작에서 이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 영화는 안 죽인다. 손은 아작이 났고 본인은 자기를 두고 가라고 하는데, 영화는 굳이 살려서 데리고 나온다. 원래 시나리오에 없던 장면도 하나 들어갔다고 한다. 고니와 연락이 끊긴 뒤 고광렬이 정 마담에게 고니의 안부를 묻는 장면인데, 유해진의 제안으로 추가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한 장면 때문에 이 사람은 재료에서 사람으로 돌아온다.

마지막에 고니는 공중전화 앞에 선다. 누구한테 거는지는 안 나온다. 그 자리는 20년 동안 비어 있었고, 최근에 최동훈 감독이 고광렬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아' 하고 말았다. 영화 안에서 끝내 안 보여 준 걸 밖에서 들은 셈이다.
그래도 화투는 여전히 모른다. 배울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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