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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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지 못한다
압도적인 것 앞에서 사람은 이기지 못한다. 대부분의 싸움이 그렇다. 이길 수 있는 싸움만 골라서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질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쪽이 훨씬 많다. 그 자리에 서 본 사람은 안다. 버티는 일에는 승산이 필요 없다.
승산이 있어야 버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은 버텨 본 적 없는 사람의 말이다. 이길 가망이 보여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견딘다. 둘은 전혀 다른 말이다. 앞의 말은 격려고 뒤의 말은 사실이다. 사실 쪽이 더 오래 간다.
비무장지대에 붙은 작은 포구가 하나 있다. 호포항이라고 부른다. 지뢰 표지와 간첩 신고 경고판이 마을의 경계를 대신한다. 남아 있는 사람은 대부분 노인이다. 소가 찢겨 죽었고, 동네 청년들이 호랑이를 봤다고 한다. 출장소장 범석은 그 신고를 받고 나간다.
호랑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 것은 당연하다.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의 이름으로 부른다. 이 땅에서 소를 찢어 죽일 만한 짐승을 떠올리면 호랑이가 가장 크다. 그러니까 호랑이였던 것이 아니라, 호랑이까지가 이 마을이 가진 상상의 끝이었다. 영화는 그 끝을 아주 일찍 넘어선다.
이 영화는 156분 동안 이 마을이 지워지는 과정을 본다. 그사이에 넣을 수 있었지만 넣지 않은 것이 몇 가지 있다. 때맞춰 도착하는 군대가 없다. 각성해서 갑자기 강해지는 주인공이 없다. 목숨을 내놓은 사람에게 돌아가는 보상도 없다. 그런 장면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괴물이 나오는 영화가 결국 괴물을 설명해 준다고 믿는다. 어디서 왔고 무엇을 원하는지 끝에 가면 알려 준다고 믿는다. 알고 나면 덜 무섭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알려 주지 않는다. 감독은 서사라는 살을 내주고 디테일이라는 뼈를 얻으려 했다고 말했다. 설명은 오지 않는다.
설명이 오지 않는 쪽이 현실에 가깝다. 사람이 당하는 일의 대부분은 사후에도 해명되지 않는다. 해고 통보에는 이유가 적혀 있지만 진짜 이유는 적혀 있지 않다. 병원에서 듣는 말도 비슷하다. 왜 하필 나인가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그 공백을 견디는 법을 각자 알아서 익힐 뿐이다.
앞의 한 시간은 쫓는 데 쓰인다. 범석이 손에 든 것은 산탄총 한 자루다. 짐승의 사체가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사람의 시신이 나온다. 상대가 이 별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한 시간쯤 지나서야 드러난다. 그때까지 그는 자기가 무엇을 쫓는지 모른다. 모르는 채로 계속 간다.
이 전반부를 두고 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한 시간이 이 영화의 입장이다. 정체를 모른 채로 걸어 들어가는 시간이 재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 대피 방송이 먼저 나오는 재난은 재난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영화는 그 지루함을 깎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이 마을이 당한 일은 부당하다. 아무도 이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 주지 않았다. 죽을 이유를 들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런데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큰 것이 작은 것을 밟을 때 이유를 대는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세상은 대체로 그렇게 생겼다.
마을을 부순 그 존재는 사람 손에 죽지 않는다. 탱크로리에 치여 죽는다. 우연이다. 수습하는 과정에서 죽은 새끼가 나온다. 그것은 제 새끼를 찾느라 마을을 뒤지고 있었다. 사정을 알았다고 해서 되살아나는 사람은 없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쉬운 길을 하나 버린다. 사정을 안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길이다. 새끼를 잃은 쪽과 마을을 잃은 쪽이 마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그런 장면은 들어가지 않았다. 양쪽의 슬픔이 같은 무게라고 말하는 순간 죽은 사람들이 두 번 지워지기 때문이다.
숲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떨어진 배를 찾아낸다. 그 안에 여제가 있고 그를 지키는 자가 있다. 그들은 사람의 말로 자기를 변호하지 않는다. 사람 쪽에서 묻는 말도 닿지 않는다. 두 세계는 끝내 마주 앉는 자리를 만들지 못한다. 협상은 힘이 비슷한 쪽끼리 하는 것이다.
그 존재들을 연기한 배우들은 끝내 사람의 얼굴로 보이지 않는다. 이름 있는 배우를 데려다 컴퓨터 그래픽 아래에 묻어 둔 셈이다. 아깝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반대로 읽었다. 얼굴이 보이면 감정이 생기고, 감정이 생기면 사정을 봐주게 된다. 이 영화는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다.
순경 성애는 경찰차에 올라 총을 쏜다. 나중에는 아무리 괴물이라 해도 이래서는 안 된다고 소리친다. 그 말은 아무것도 멈추지 못한다. 상대는 듣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 말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 나는 그 차이를 작게 보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말이 쓸모없는 말은 아니다. 그 말은 말한 사람을 바꾼다. 소리친 뒤의 성애는 소리치기 전의 성애가 아니다. 다음 장면에서 그는 다시 차에 오르고 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바뀐 것은 상황이 아니라 그가 서 있는 자리다.
이 영화는 참극 한가운데서 사람들을 웃긴다. 욕이 자주 나오고 농담이 자주 끼어든다. 감독은 대중적인 재미를 위해 웃긴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넣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선택을 탓하지 않는다. 사람은 무서울 때 농담을 한다. 그것도 버티는 방식 가운데 하나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범석은 억울해하지 않는다. 원망하지도 않는다. 자기를 불쌍하게 여기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그는 마을에 남은 노인과 예비군과 사냥꾼을 불러 모은다. 이길 계산이 서서 모으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영웅이 아니다. 압도적인 것 앞에서 무력해지는 보통의 얼굴이다. 떨리는 손을 끝까지 숨기지 못한다. 그래도 사람을 세우고 자리를 나눈다.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어서 그것을 한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직함이 사람을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직함이 사람을 묶어 두기는 한다. 그는 이 포구에 배치된 사람이고, 배치된 사람은 남는다. 거창한 사명감으로 설명할 일이 아니다. 자기 이름이 적힌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런 사람 덕에 간신히 굴러가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마을에 남은 노인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떠날 데가 없어서 남은 사람들이다. 젊은 사람이 다 빠져나간 자리에서 밭을 매고 배를 댔다. 그 자리로 재앙이 왔다. 골라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개의 재난은 고를 수 없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촌 성기는 사냥꾼이다. 겁이 적은 쪽이 아니라 멈추는 법을 모르는 쪽이다. 총을 들고 숲으로 먼저 들어간다. 이 영화에서 가장 몸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상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목수 양배가 있고, 본 것을 더듬더듬 옮기는 노인이 있다. 이들은 작전에 쓸모가 있어서 화면에 남은 것이 아니다. 마을이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고 남아 있다. 이름이 불리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 마을이 지워질 때의 무게가 달라진다. 숫자로 죽는 사람과 이름으로 죽는 사람은 다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데가 한 군데 있다. 후반에 이르러 설명이 대사로 한꺼번에 쏟아지는 대목이다. 그때 영화는 두 시간 가까이 쌓아 둔 긴장을 스스로 조금 덜어 낸다. 끝까지 입을 다물었어야 할 쪽이 끝에 가서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짚을 것은 그 정도다.
이 영화를 두고 걸작이라는 말과 난장판이라는 말이 동시에 나왔다. 두 말이 같은 영화를 가리킬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설명을 비워 둔 영화는 그 빈칸을 본 사람 쪽이 채우게 된다. 빈칸을 견디는 사람은 걸작이라 부르고,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난장판이라 부른다. 영화는 그 반응까지 계산에 넣은 듯하다.
끝은 이렇다. 범석 일행은 겨우 빠져나온다. 그리고 또 한 척의 배가 가까운 곳에 떨어진다. 끝났다고 믿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문을 닫는다.
이 마무리를 불친절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다르게 봤다. 한 번 겪은 사람에게 세상이 한 번만 오는 법은 없다. 넘겼다 싶으면 다음 것이 온다. 그걸 아는 사람의 표정으로 영화가 끝난다는 점이 나는 마음에 걸리면서도 수긍이 갔다.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 짧은 장면이 하나 더 붙어 있다. 성기가 고속도로를 절뚝이며 걷는다. 구조대도 없고 음악도 크지 않다. 대단한 장면이 아니다. 대단하지 않아서 좋았다. 아직 걸어가고 있다는 것.

이 영화는 희망을 주지 않는다. 제목이 희망인데도 그렇다. 설명 없이 밀려나 본 적이 있는 당신에게 이 영화가 내미는 것은 위로가 아니다. 설명은 오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다. 그 사실 위에서도 사람은 걷는다. 절뚝이면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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