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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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로리로 신을 치는 법

삐딱하게보기· 2026. 10. 11.· 4,062자

고백하건대 나는 거창하게 등장한 괴물이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죽는 장면을 몹시 좋아한다. 어떤 종류의 영화는 괴물에게 끝까지 품위를 지켜 주려 애쓰는데, 나는 그 예의가 늘 조금 지루했다. 괴물의 품위를 지켜 주는 일은 결국 관객에게 경배를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영화가 한 짓에 대해서는 먼저 감사부터 표해 두어야겠다.

영화는 초반에 관객과 계약서 한 장을 쓴다. 이 영화가 쓴 계약서의 첫 줄에는 호랑이라고 적혀 있다. 소가 찢겨 죽었고, 동네 청년들이 호랑이를 봤다고 한다. 비무장지대에 붙은 작은 포구 호포항, 그 출장소장인 범석이 신고를 받고 나가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관객은 그 줄을 읽고 도장을 찍는다. 짐승 한 마리와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보러 왔다고 믿으면서.

영화는 그 계약을 아주 느긋하게 어긴다. 한 시간 가까이 상대를 보여 주지 않는 것이다. 보여 주는 것은 짐승의 사체, 그다음에는 사람의 시신, 그리고 산탄총 한 자루를 든 중년 경찰의 뒤통수뿐이다. 각본가라면 누구나 여기서 슬슬 정체를 흘려 줘야 한다고 배운다. 이 영화는 배운 대로 하지 않는다. 그것도 아주 태연하게.

한 시간이 지나서야 그것이 호랑이가 아니라 이 별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장르의 수순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람들이 온갖 총포를 동원해 상대하던 그 불사의 존재가, 결국 탱크로리에 치여 죽는다. 교통사고로 죽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감탄하다가 조금 분해졌다.

분한 이유는 이것이 공짜 농담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 시간 동안 그 존재를 신의 자리에 올려놓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데는 10초도 쓰지 않는다. 그 낙차가 곧 이 영화의 논지다. 거대한 것은 거대한 방식으로 죽지 않는다. 각본이 머리를 싸매고 고안한 특별한 약점 따위는 없다. 그저 더 무거운 쇳덩이가 더 빠르게 지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영화는 죽은 것의 사정을 뒤늦게 알려 준다. 수습 과정에서 죽은 새끼가 나오고, 그것이 제 새끼를 찾아 마을을 뒤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보통의 각본이라면 이 정보를 더 앞에 두어 관객의 마음을 미리 흔들어 두었을 것이다. 뒤에 둔 덕분에 이 사실은 용서로 기능하지 못한다. 동정은 사후에 도착해서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 나는 그런 종류의 악의를 사랑한다.

이제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오래 들여다본 물건 이야기를 해야겠다. 전봇대에 매달린 나무 상자 안의 수화기다. 성기가 그 앞에 서서 신고 전화를 거는 장면이 있다. 마을의 바깥과 연결되는 선이 그 한 대뿐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한마디 설명도 없이 소품 하나로 처리해 버린다. 상자는 손으로 짠 것처럼 투박하고, 선은 전봇대를 타고 어딘가로 사라진다.

호프 스틸컷

이 상자가 영화 전체의 무게를 어떻게 지는지 보라. 구조 요청은 저 선을 타고 나가야 한다. 선이 끊기면 마을은 즉시 섬이 된다. 재난물에서 통신을 끊는 것은 자다가도 쓸 수 있는 수법이건만, 이 영화는 통신 기기를 일부러 부수는 장면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 애초에 하나뿐인 것을 굳이 부술 필요가 없다. 미술팀이 저 상자의 위치를 고른 순간 이 영화의 고립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의상 쪽도 한 번 짚고 넘어가자. 사냥꾼 성기는 사냥꾼처럼 입지 않았다. 청재킷에 초록색 그물 모자, 그리고 낡은 가죽 탄띠다. 어느 모로 보나 읍내 정비소에서 일하다 나온 동네 청년의 차림이다. 전문가의 복장을 입히지 않은 선택이 자못 영리하다. 저 옷을 입은 사람이 총을 들면, 관객은 그가 이길 거라고 믿지 않는다.

호프 스틸컷

순경 성애의 몫도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 그는 경찰차 안에서 바깥을 보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문짝 위로 올라서서 총구를 든다. 액션을 설계한 사람은 이 인물에게 안전한 자리를 하나씩 빼앗는 방식을 택했다. 그가 유리 뒤에 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맞히지 못하고, 유리를 버린 뒤에야 쏘기 시작한다. 뒤에 가서는 아무리 괴물이라 해도 이래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데, 이 대사를 다른 인물이 아니라 가장 계급이 낮은 사람에게 준 것도 계산이 선 배치다.

호프 스틸컷

솜씨 이야기를 하자면 이 영화의 액션에는 분명한 리듬이 있다. 몰아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다가 한 번에 내리친다. 괴물의 살갗이 어떻게 보이느냐를 두고 말이 많았고, 나도 그 불만을 전부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순제작비 500억 원이 들어간 영화에서 가장 값이 나가는 부분이 질감이 아니라 박자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쪽에 돈이 덜 들었다고 말하면 어폐가 있겠으나, 이 영화가 고른 우선순위는 그쪽이 맞다.

카메라 이야기도 해 두는 것이 공평하겠다. 촬영을 맡은 사람은 인물을 좀처럼 놓아주지 않고, 끊는 대신 따라붙는 쪽을 택한다. 덕분에 관객은 범석이 보지 못한 것을 먼저 볼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칸에서 처음 공개된 판은 160분이었고 극장에 걸린 판은 156분이다. 네 번쯤 숨 쉴 분량을 어디서 덜어 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 네 번을 덜어 낸 뒤에도 여전히 길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길이는 실수가 아니라 고집이었던 셈이다.

재난물에는 저 유명한 법칙이 있다. 처음에 호들갑을 떤다고 비웃음을 사던 사람이 결국 옳았던 것으로 밝혀지고, 뒤늦게 사람들이 그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법칙이다. 이 영화에는 그 사람이 없다. 호랑이라고 말한 청년도 틀렸고, 호랑이가 아니라고 말한 쪽도 틀렸다. 아무도 맞히지 못했으니 아무도 공을 가져가지 못한다. 뒤늦은 인정이라는 달콤한 장면을 통째로 포기한 대가로, 이 영화는 마을 전체를 공범으로 만든다.

감독은 서사라는 살을 내주고 디테일이라는 뼈를 얻으려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거래의 조건으로 보면 제법 불리한 계약이다. 살을 내준 자리는 관객이 바로 알아보지만, 뼈가 좋다는 것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화는 그 계약을 지켰다. 이 마을이 어떤 냄새가 나는 곳인지, 저 사람들이 평소에 무엇을 먹고 무슨 농담을 하는지는 끝까지 생생하다.

농담 이야기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참극 한복판에서 사람들을 기어이 웃긴다. 감독 스스로 대중적인 재미를 위해 웃긴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넣었다고 밝혔다. 이런 고백은 보통 변명으로 들리기 쉽다. 그런데 여기서는 설계도의 한 줄로 읽힌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상스러운 소리를 주고받는 장면이 없었다면, 이 마을은 그냥 죽으라고 지어 놓은 세트가 되었을 것이다.

불만을 하나 적어야겠다. 후반부에 이르러 저쪽 세계의 사정이 대사로 한꺼번에 설명되는 대목이 있다. 두 시간 가까이 입을 다물고 버틴 영화가 거기서 갑자기 수다스러워진다. 끝까지 모르게 두겠다는 배짱으로 여기까지 끌고 와 놓고, 마지막에 와서 관객이 못 알아들을까 걱정한 꼴이다. 관객을 잠시 얕본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침묵으로 쌓은 것을 말로 허무는 것만큼 아까운 일이 없다.

제목을 두고 한마디 보태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마을 이름은 호포항이고 영화 제목은 호프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포구의 이름과 희망이라는 외래어가 한 글자 차이로 포개져 있다. 희망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마을 하나를 통째로 지우는 영화라면, 그 간판이 이미 농담의 일부다. 더구나 영화가 끝날 때까지 희망이라는 말에 값하는 사건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지막은 더 뻔뻔하다. 범석 일행이 가까스로 빠져나오자마자 또 한 척의 배가 근처에 떨어진다. 계약서의 마지막 장을 덮으려는 순간 다음 계약서가 책상 위에 올라오는 셈이다. 장치를 닫지 않고 열어 둔 채 끝내는 이 마무리를 두고 불친절하다는 말이 많았다. 감독이 삼부작을 구상하고 있다는 말을 보탠 것을 보면, 불친절이 아니라 통보에 가깝다.

크레딧 뒤에 한 장면이 더 붙는다. 성기가 고속도로를 절뚝이며 걸어간다. 음악도 크지 않고 구조대도 오지 않는다. 쿠키 영상은 보통 다음 편을 예고하려고 붙인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거기에 살아남은 사람의 걸음걸이를 넣어 두었다. 예고가 아니라 영수증이다. 이 소동에서 남은 것이 저 다리 하나라는 영수증.

모름지기 괴물이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라고 있는 것인데, 이 영화는 그 일을 설교 없이 해치운다. 신을 데려다 놓고 탱크로리로 쳐 버리는 각본 앞에서 경배를 바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고도 두 시간 반을 쉬지 않고 밀어붙이는 배짱이라면, 다음 계약서에도 미리 도장을 찍어 둘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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