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1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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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배는 처음부터 없었다

막판뒤집기· 2026. 10. 27.· 3,465자

아홉이었다. 영화가 시작할 때 사막에 남은 고려 사람의 수를 나는 그렇게 셌다. 자료마다 여덟이라고도 하고 아홉이라고도 하는데, 아마 정사와 부사까지 넣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테다. 어쨌든 두 자리가 안 되는 수다. 그 수가 영화가 끝날 때 하나가 된다. 이 글은 그 사이에 무슨 계산이 있었는지, 그러니까 왜 그들이 멈추지 못했는지를 개념 하나로 풀어 보려는 글이다. 결말을 다 말한다.

개념은 매몰 비용이다. 이미 써 버려서 돌려받을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경제학에서 나온 말이지만 설명은 일상에서 하는 편이 낫다. 세 가지만 들겠다. 첫째, 재미없는 영화를 한 시간 봤다고 남은 한 시간을 마저 보는 일. 지나간 한 시간은 끝까지 보든 지금 나가든 돌아오지 않는다. 둘째, 식당 앞에서 삼십 분을 기다렸으니 사십 분을 더 기다리는 일. 앞의 삼십 분은 결정과 상관이 없는데 자꾸 상관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셋째, 발에 안 맞는 신발을 비싸게 샀다는 이유로 계속 신는 일. 돈은 이미 나갔고 발만 아프다. 합리적인 결정은 앞으로 들어갈 비용과 앞으로 나올 이득만 보고 해야 한다는 것이 이 개념의 요지다. 그런데 사람은 거의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개념이 된 것이다.

영화로 가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간첩으로 몰린 고려 사람들이 귀양길에 오르고, 호송하던 명군이 몽골 기병에게 전멸당하면서 고려인만 사막에 남는다. 여기까지는 그들이 고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첫 선택은 젊은 장수 최정이 한다. 명군을 기다리자는 부사 이지헌의 말을 묵살하고 고려로 돌아간다며 강행군을 시작한다. 늙은 부사는 그 길에서 죽고, 죽기 전에 자기 노비였던 여솔을 풀어 준다. 여솔이 시체를 끌고 객잔에 도착하고, 거기서 색목인이 시체에 침을 뱉자 단칼에 베어 버린다. 영화의 첫 번째 비용은 이렇게 치러진다. 사람 하나, 그리고 조용히 지나갈 기회 하나.

두 번째 선택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객잔 앞을 몽골군에 잡힌 명나라 공주의 마차가 지나가고, 거기서 피로 「救」라고 쓴 천이 떨어진다. 최정은 계획을 바꾼다. 공주를 구하면 명분도 서고, 고려로 돌아갈 배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나는 이 계산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막 한가운데서 배를 얻을 방법이 달리 없었을 테니까. 문제는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 계산이 끝난 뒤다. 공주는 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는다. 부관 가남과 북방 군사들이 반대했는데도 그랬다. 이때부터 이 일행의 장부에는 돌려받을 수 없는 항목이 쌓이기 시작한다.

무사 포스터

어림잡아 세어 보자. 공주를 구하기 전에 그들이 잃은 것은 부사 한 사람과 며칠의 행군이다. 구한 뒤에 잃은 것은 동료 몇 사람과, 몽골군 전체를 적으로 돌린 처지다. 그리고 얻은 것은 공주 한 사람과 배를 주겠다는 약속이다. 그 약속을 믿고 바닷가 토성까지 간다. 도착해 보니 토성은 폐허고, 명군도 없고, 배도 없다. 여기서 장부를 다시 펴야 한다. 매몰 비용의 개념대로라면 지금까지 죽은 사람은 결정에서 빼야 한다. 앞으로 남은 것만 보면 선택지는 간단하다. 몽골 장수 탐불화가 사람을 보내 말한다. 공주만 내주면 모두 살려 보내 주겠다고. 고려인이 명나라 때문에 몽골과 가까이 지낼 수 없다는 사정도 이해한다고 덧붙인다. 앞으로 들어갈 비용은 공주 한 사람, 앞으로 나올 이득은 나머지 전원의 목숨이다.

그런데 최정은 거부한다. 여솔은 한술 더 떠서 혼자 성문을 나가 몽골 쪽 통역의 목을 벤다. 협상은 그걸로 끝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매몰 비용 개념이 가장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이 헛되지 않으려면 공주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 그것은 재미없는 영화를 끝까지 보는 논리와 모양이 같다. 다만 걸린 것이 두 시간이 아니라 목숨이라는 점이 다르다. 최정은 나중에 명예롭게 죽고 싶었다는 말을 한다. 명예는 앞으로 나올 이득이 아니라 지금까지 들인 비용에 붙는 이름이다. 그러니까 그는 끝까지 장부를 거꾸로 읽은 셈이다.

여솔의 장부는 따로 봐야 한다. 그는 사막에서 자유인이 됐다. 주인이 죽으면서 풀어 줬으니 사신단에 진 빚도, 명나라에 세울 명분도 없다. 매몰 비용으로 치면 거의 영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일행 중에서 가장 많이 건다. 통역의 목을 베는 것도, 성벽을 비우고 공주에게 달려가는 것도 그다. 왜 그러는지 영화는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지킬 대상을 잃어서 새 대상을 찾았다고 읽었는데, 이것은 내 풀이지 영화가 말한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개념이 이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안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영화는 매몰 비용에 홀린 사람들이 전멸하는 이야기인가. 반쯤은 그렇다. 전투가 벌어지고 가남이 죽고, 주명도 하일도 도충도 지산도 죽는다. 여솔은 공주를 지키려고 성벽의 자기 자리를 비우고, 그 틈으로 몽골군이 들어와 피난민이 많이 죽는다. 공주는 그 원망을 견디지 못하고 성을 나가고, 여솔이 따라가 「가면 안돼」 한마디로 막아 세운 뒤 망토를 둘러 주고 손목을 잡고 토성으로 달린다. 그 길에서 무릎에 화살을 맞고 창은 올가미에 걸리고 철퇴에 맞아 붙잡힌다. 여기까지가 개념이 맞는 쪽이다.

개념이 안 맞는 곳은 그다음이다. 탐불화는 붙잡은 여솔에게 칼을 돌려준다. 자기 부하들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 적의 가장 강한 병사를 무장시켜 돌려보내는 결정은 어떤 장부로도 설명이 안 된다. 여솔은 말을 타고 돌아가 공주 앞에서 싸우다가 창대가 잘리고, 두 동강 난 창을 치켜들고 소리를 지른 뒤 창대를 땅에 박은 채 공주 앞에 선 채로 죽는다. 최정은 쓰러져 있다가 가남의 큰 칼을 뽑아 탐불화를 찌르고 자기도 배를 찔려 죽는다. 죽기 전에 진립과 눈빛을 주고받는다. 이 사람들이 마지막에 한 선택에는 돌아올 이득이 없다. 비용만 있다. 그런데 보는 나는 그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개념은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설명하지만, 내가 왜 거기서 숨을 죽였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마지막 장면은 숫자로 말하면 가장 터무니없다. 살아남은 진립은 동료들의 시신을 거두어 태우고, 피난민들이 만들어 준 작은 나룻배에 오른다. 뱃머리에는 여솔의 부러진 창날이 꽂혀 있고 거기에 최정의 붉은 두건과 가남의 투구 같은 유품이 묶여 있다. 공주가 나룻배로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그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모르지만, 그 배의 크기를 보면 어떤 계산도 건너편에 닿지 않는다. 진립은 그래도 가야 한다고 답하고 배에 오른다.

나는 우주에 목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막에도 바다에도 의미는 없다. 사막은 사람이 걷든 말든 뜨겁고, 바다는 배가 작든 크든 넓다. 그 무의미한 바탕 위에서 사람은 죽은 동료의 두건을 창날에 묶고 건널 수 없는 바다로 배를 띄운다. 매몰 비용은 그것을 오류라고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오류라는 말로는 그 배가 왜 아름다운지 설명이 안 된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는 것일 테다. 나도 틀릴 수 있다.

그 배가 어디까지 갔는지 영화는 말해 주지 않는다. 계산으로는 멀리 못 갔다. 그런데 당신이라면 그 배에 올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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