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1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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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이 지탱하고 주연이 비운 자리
결론부터 쓴다. 이 영화는 주연 셋이 비운 자리를 조연들이 채우는 영화다. 채워져서 서 있다. 완전히 채워지지는 않았다. 결말까지 말할 것이다.
설정은 이렇다. 1375년 무렵, 명나라에 갔다가 간첩으로 몰린 고려 사신단이 사막에 버려지고, 호송하던 명군이 몽골 기병에게 전멸하면서 고려인 여남은 명만 남는다. 돌아가는 길에 납치된 명나라 공주를 구하고, 바닷가 폐허 토성에서 몽골군과 마지막 싸움을 한다. 이 설정에서 할 일은 둘이다. 사막을 걷는 얼굴을 보여 주는 것, 그리고 싸우는 몸을 보여 주는 것. 러닝타임은 두 시간 반이 넘는다. 얼굴을 보여 줄 시간은 충분했다.
진립, 안성기
북쪽 국경 부대의 늙은 대정. 활을 쏜다. 이 배우가 이 배역에서 한 일은 목소리를 낮춘 것이다. 젊은 장수 최정이 고려로 돌아간다고 명령하고 강행군을 밀어붙일 때 진립은 맞서 소리치지 않는다. 자기 자리를 지키고, 나중에 토성에서 모두가 암묵적으로 그를 지도자로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린다. 최정과 부관 가남까지 그를 인정하는 데 대사가 거의 필요 없었다는 점이 이 캐스팅의 효과다. 사막 비탈을 내려오며 활을 쏘는 장면은 감독이 될 때까지 다시 찍었다고 밝힌 장면인데, 그 동작이 들어간 덕에 이 인물은 말없이도 전투원으로 믿어진다. 마지막에 혼자 살아남아 동료들의 유품을 부러진 창날에 묶고 나룻배에 오르는 사람이 이 배우여야 했던 이유가 거기 있다. 다른 배우였다면 그 배는 비장했을 것이고, 이 배우라서 그 배는 담담하다. 충분하다.
가남, 박정학
최정의 부관. 별장. 이 영화에서 가장 쓸모 있게 쓰인 조연이다. 그가 한 일은 주인에게 충성하면서 동시에 주인이 틀렸다는 것을 얼굴로 보여 주는 것이다. 공주 구출에 반대할 때도, 토성에서 「성 밖을 보고 있어 주겠나?」라고 부탁할 때도 그는 대사보다 무표정으로 말한다. 그러다 포효한다. 그 두 상태 사이를 오가는 것이 이 인물의 전부고, 그것이 최정이라는 인물에게 없는 두께를 대신 만들어 준다. 최정을 구하러 성 밖으로 나갔다가 탐불화에게 죽는 것도 이 인물답다. 그의 투구는 나중에 진립이 거둔다. 조연이 주연의 결함을 메우는 경우를 나는 자주 봤는데, 이렇게 메우고도 티가 안 나는 경우는 드물다.
탐불화, 우영광
몽골 쪽 장수. 적장을 어떻게 세우느냐가 이런 영화의 반을 결정한다. 이 배우가 한 선택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토성을 포위하고 공주만 내주면 모두 살려 주겠다고 사람을 보내는 장면에서 그는 협박하지 않고 설명한다. 객잔에서 여솔의 창 솜씨를 보고 죽이는 대신 생포를 명령했던 사람이고, 토성에서 붙잡은 뒤에는 「저 무사가 칼을 쥐게 해주어라」며 무기를 돌려준다. 이 결정은 이야기로는 설명이 모자란다. 그런데 이 배우가 뒷짐을 지고 서서 멀리서 들려오는 전투 소리를 듣는 모습 때문에 관객은 묻지 않고 넘어간다. 캐스팅이 각본의 구멍을 덮은 지점이다. 마지막에 최정이 가남의 큰 칼로 그를 찌를 때, 이 사람이 초원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던 장수였다는 사실이 그 죽음을 패배가 아니라 종료로 만든다.
이지헌, 송재호
부사. 출연 분량은 짧다. 쉬어 가자고 하다 묵살당하고, 죽음을 예감하고 노비 여솔을 풀어 주고, 객잔에 닿기 전에 죽는다. 이 배우가 한 일은 그 짧은 분량 안에서 풀어 준다는 말이 선심이 아니라 사과로 들리게 한 것이다. 여솔이 시체를 끌고 객잔에 들어서고, 색목인이 거기에 침을 뱉자 단칼에 베는 장면이 성립하려면 앞의 죽음이 관객에게도 무거워야 한다. 무거웠다. 됐다.
주명·하일·도충·지산, 박용우·정석용·유해진·이두일
역관, 사냥꾼 출신 척후, 평안도 사투리의 다혈질, 천축에서 불경을 가져온 스님. 넷을 묶어 쓰는 이유는 영화가 넷을 묶어 썼기 때문이다. 각자 한 장면씩 받는다. 하일은 「비를 피해 들어온 산짐승도 보살펴주는 게 사냥꾼의 도리」라며 한족 피난민을 거두고, 그 노파를 지키다 죽는다. 주명은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인데 아이를 감싸다 죽는다. 도충은 마지막 전투에서 죽고, 지산은 여럿에게 둘러싸여 죽는다. 배우들은 그 한 장면을 각자 제대로 했다. 문제는 한 장면씩이라는 데 있다. 두 시간 반에 아홉을 세우려면 한 사람당 열일곱 분 정도가 돌아가는데, 이 넷은 그 몫을 받지 못했다. 감독이 분산이 아니라 배분이라고 답한 것을 봤다. 배분이라면 배분표가 고르지 않았다.
캐스팅이 이야기를 바꾼 곳
주연 셋 중 여솔은 과묵한 창잡이로 설계됐고, 배우는 표정 대신 눈과 몸으로 그 설계를 따랐다. 난이도 높은 창 동작을 배우가 대부분 직접 했다는 점은 확인된 사실이고, 그래서 토성에서 성벽의 자기 자리를 비우고 공주에게 달려가는 장면이 변명 없이 이 사람이면 그럴 것이다로 읽힌다. 그 이탈로 피난민이 죽는다. 각본은 이 장면을 영웅의 실수로 썼을 텐데, 배우의 몸이 워낙 설득력이 있어서 관객은 실수라는 걸 한 박자 늦게 알아챈다. 캐스팅이 이야기의 무게중심을 옮긴 지점이다. 최정은 반대 경우다. 명예롭게 죽고 싶었다는 대사가 끝에 가서 나오는데, 그 대사가 닿으려면 중간에 흔들리는 얼굴이 있어야 했다. 배우는 같은 얼굴을 유지했고, 그래서 이 인물은 성장하지 않고 끝난다. 부용은 도도한 공주에서 피난민의 원망을 견디다 성을 나가는 사람까지 가야 했다. 배우는 뒷부분을 했다. 앞부분은 각본이 도와주지 않았다.
가장 덜 쓰인 배우
송재호다. 그가 죽은 뒤 여솔이 자유인이라고 선언하는 영화인데, 자유를 준 사람의 얼굴이 영화 초반에 사라진다. 한 장면만 더 있었어도 여솔의 나머지 두 시간이 달라졌을 것이다. 배우가 모자란 게 아니라 자리가 모자랐다.
정리한다. 조연은 충분했고 주연은 모자랐고, 둘을 합치면 서 있다. 사막과 토성이 받쳐 줬기 때문이다.
(덧) 공주를 두고 여솔과 최정이 부딪치는 장면은 일부러 뺐다. 그건 캐스팅의 문제가 아니라 각본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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