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1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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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보시면 답하겠습니다, 모르는 것만 빼고

고요한땀· 2026. 10. 27.· 3,045자

이 영화를 볼까 말까 망설이는 분이 내게 몇 가지를 물었다고 치자. 실제로 물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질문이 없다고 답을 안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내 소심한 신념이고, 그래서 혼자 묻고 혼자 답했다. 아래는 그 기록이다. 결말까지 다 말한다.

사극인가요, 무협인가요?

감독의 말로는 둘 다 아니다. 감독은 개봉 전 인터뷰에서 무협지풍 액션도 생각했지만 사실적인 전투를 택했다고 했고, 구로사와 아키라와 샘 페킨파의 영화를 보며 저런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고 했다. 페킨파 영화에서 높이 산 것은 선인도 악인도 없는 구도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1375년 고려 사신단이 사막에 버려진 뒤 명나라 공주를 구하고 바닷가 토성에서 몽골군과 싸우다 거의 다 죽는 이야기인데, 그 안에 악당이 없다. 악당이 없는 영화는 보는 사람이 편들 곳을 못 찾는다. 나는 두 시간 반 동안 편들 곳을 못 찾고 서성였다. 그게 불편했고, 불편한 것이 이 영화가 의도한 바였다는 걸 인터뷰를 읽고 알았다. 의도대로 불편했다는 건 칭찬인가. 아마 칭찬일 것이다.

상영시간이 155분이 맞나요?

출처마다 다르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는 155분, 씨네21은 154분, 위키백과는 158분이라고 적어 놓았다. 어느 쪽이 맞는지 나는 모른다. 영화 한 편의 길이도 합의가 안 되는 세상에서 사람의 일생이 몇 분인지 어떻게 합의가 되겠는가. 그렇다. 길다. 길이에 대한 불평은 이미 다른 분들이 충분히 하셨으므로 나는 생략한다.

실제 있었던 일인가요?

반쯤. 제작일지에 따르면 감독은 고려사에서 원말 명초의 혼란기에 중국에 갔던 고려 사신 일행이 기록에서 사라졌다는 단서를 찾았고, 거기서 영화가 출발했다. 사신단의 정사 손천용은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지어낸 이야기다. 역사에서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지어내는 것뿐이고, 이 영화는 그 일을 두 시간 반에 걸쳐 한다. 사라진 사람들을 위한 긴 장례라고 하면 거창하고, 사라진 사람들을 핑계로 사막에서 다섯 달을 찍었다고 하면 비루하다. 둘 다 맞을 것이다.

주인공이 누구인가요?

포스터에는 세 사람이 있다. 노비였다가 자유인이 되는 창잡이 여솔, 사신단을 이끄는 젊은 장수 최정, 납치됐다 구출되는 명나라 공주 부용. 그런데 감독은 인터뷰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그와 관련된 사람의 숏만 찍고 넘어가야 하는데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은 왜 반응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급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입장을 골고루 보여 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2,900여 컷을 찍었다는데 그중 상당수가 그 「옆 사람」의 얼굴일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셋인 영화가 아니라 주인공을 아홉 명한테 조금씩 나눠 준 영화가 됐다. 한 사람을 따라가며 보려는 관객에게는 불친절하고,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 평소에도 잘 모르는 나 같은 관객에게는 차라리 편했다. 사막에서는 다들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무사 포스터

멜로가 있다던데 제가 놓쳤나요?

놓친 게 아니라 감독이 잘라 냈다. 인터뷰에서 그는 편집하면서 멜로 요소를 일부 걷어 냈다고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멜로라는 게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거지, 남자들이 목숨을 걸고 촌각을 다툴 때 멜로적인 감정에 푹 빠진다는 게 고려인의 기상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고. 개봉 당시 씨네21 리뷰는 그 결과를 두고 멜로 부분이 뻣뻣하고 섬세한 것들이 컷과 컷 사이에서 증발했다고 썼다. 나도 동의한다. 남은 멜로는 이런 모양이다. 대나무숲 전투에서 어린 병사 단생이 화살에 맞아 죽은 뒤, 공주가 너 때문에 죽을 뻔했다며 여솔에게 손찌검을 하려 한다. 여솔이 공주라고 아무한테나 함부로 할 수 있는 줄 아느냐는 식으로 받아치고, 역관 주명이 그 말을 통역하고, 알아들은 공주가 가 버린다. 통역을 거쳐야 성립하는 사랑 싸움. 나는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제일 멜로다운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멜로의 기준이 낮은 사람의 의견이니 참고만 하시라.

말은 어떻게 통하나요?

이 영화에는 고려 사람, 명나라 공주, 몽골 기병, 객잔의 색목인, 한족 피난민이 나온다. 말이 다른 집단이 다섯이고, 그 사이를 잇는 사람은 역관 주명 한 명이다. 싸움에는 쓸모없는 백면서생으로, 불경을 가지고 돌아가는 지산 스님과 유교냐 불교냐를 두고 말싸움을 하고, 몽골군 진영에 딸린 여인 유란과 인연을 맺고, 마지막 전투에서는 피난민 아이를 감싸다 칼에 맞아 죽는다. 통역이 죽는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말이 끊긴다는 뜻이고, 영화는 그 뒤로 말 대신 몸으로 이야기를 끝낸다고 나는 읽었다.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이 통역 한 사람이었고, 그 한 사람이 싸움터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는 데서 나는 이 영화가 사막보다 넓은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넓은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다.

진립은 전투 중에 왜 활을 내리나요?

이 질문에는 답을 못 한다. 안성기가 맡은 늙은 궁수 진립은 이 영화에서 가장 말이 적고 가장 믿음직한 사람인데, 씨네21 리뷰는 전투 중 그가 잔인한 살육의 현장을 보며 누구에게 활을 겨눠야 할지 당황하는 장면을 짚었다. 내 눈에도 그 장면이 걸렸다. 그가 한 말 두 마디가 있다. 하나는 「제 바램은 우리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겁니다」이고, 다른 하나는 「전 결과를 알고 행동할 만큼 똑똑한 사람이 못 됩니다」이다. 이 두 마디를 가진 사람이 활을 내리는 순간이 어떤 순간인지, 나는 세 가지쯤 짐작을 해 봤고 세 가지 다 자신이 없어서 적지 않는다. 짐작을 적지 않는 것도 글의 일부라고 우기고 넘어간다.

그래서 볼까요, 말까요?

보시라. 다만 편들 사람을 정하고 보지는 마시라. 정해 두면 그 사람이 당신을 배신하거나 죽거나, 둘 다 한다.

다 답하고 나니 내가 한 답들이 전부 「모른다」의 변주라는 것을 알았다. 사극인지 무협인지 모르고, 몇 분짜리인지 모르고, 누가 주인공인지 모르고, 왜 활을 내리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사막을 걸은 것처럼 다리가 무거웠다. 모르는 것들이 쌓여서 무게가 되는 영화가 있고, 이건 그런 영화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더 가볍게 봤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조금 부럽고, 조금은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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