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4
브리짓 존스의 일기2 : 열정과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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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좀 하면 안 되나, 이 아저씨는
먼저 밝혀 두자면 나는 변명이 길다. 약속에 늦으면 버스가 어디서 막혔는지부터 말한다. 상대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기다리는데 나는 그 말을 제일 뒤에 둔다. 그래서 늘 사과가 아니라 교통 정보를 한 셈이 된다.
아무튼 「브리짓 존스의 일기 2」를 봤다. 전편 끝에서 겨우 변호사 남자친구를 얻은 그 여자가, 사귄 지 6주 4일 7시간 만에 의심을 시작하는 영화다. 남자친구 사무실에 다리가 긴 젊은 비서가 들어온다. 그걸로 끝이다. 법조계 만찬에 가서 퀴즈에서 마돈나 문제를 틀리고, 오스트리아 스키장에 가서 구르고, 약국에서 독일어도 못 하면서 손짓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사고, 헤어지고, 옛 남자와 태국에 가고, 친구가 준 뱀 모양 그릇에 코카인이 들어 있어서 감옥에 간다. 감옥에서는 여자들한테 마돈나 노래를 가르친다. 진짜로. 한 편에 이걸 다 넣었다. 그리고 정작 그 비서가 누구를 좋아했는지는 영화 끝에 가서 비서 입으로 나온다.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고. 남자친구는 그것도 설명 안 했다.

근데 내가 보려는 건 그 여자가 아니다. 그 옆에 서 있는 변호사 아저씨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대본인지 아는가. 이 아저씨 역할은 영화 내내 설명을 안 하는 거다. 여자친구가 비서와 무슨 사이냐고 묻는다. 대답을 안 한다. 그런 질문에는 답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넘긴다. 그래서 차인다. 차이고 나서도 설명을 안 한다. 그 전에 법조계 만찬에서는 자기 쪽 잘난 친구들이 여자친구를 깎아내리는데 그 자리에서 편을 안 든다. 그녀가 그걸 서운해하면 그때도 길게 말하지 않는다. 스키장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 와서 둘이 아이를 어느 학교에 보낼 건지로 싸우고, 결과가 아니라고 나오자 침대 양 끝에서 등 돌리고 잔다. 그 장면에서도 이 아저씨는 등만 보인다. 직장인으로 치면 누가 사내 게시판에 내 험담을 올렸는데 해명 글은 쓰지 말라는 거랑 비슷하다. 보통 사람은 못 견딘다. 나 같으면 첫 장면에서 이미 버스 노선을 꺼냈을 거다.
할 말이 있는데 못 하는 장면에서 사람이 괜히 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억울한 눈을 한다. 한숨을 쉰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다. 먼 데를 본다. 그렇게 해서 '나 지금 할 말 많은데 참고 있어요'를 관객한테 보낸다. 전부 설명이다. 입으로 안 할 뿐이지.
이 배우는 그걸 안 한다. 여자친구가 떠나는 장면에서 억울한 눈을 안 한다. 비서 문제로 몰릴 때 먼 데를 안 본다. 그냥 뭔가 살짝 상한 냄새를 맡은 사람 같은 얼굴로 서 있다. 영화 내내 그 얼굴이다. 근데 그 얼굴 안에 좋아하는 마음이 다 들어 있다는 게 보인다. 어떻게 보이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얄밉다. 태국 감옥에서 여자친구를 빼내려고 진짜 범인을 직접 찾아다닌 게 이 아저씨인데, 그 얘기도 본인은 안 한다. 그녀는 공항에 돌아와서야 남한테 듣는다. 자기가 한 일을 말하지 않는 역할을, 말하지 않는 얼굴로 하는 거다. 부러웠다. 나는 설거지 한 번 하면 세 번 말한다.

공평하게 말하면 그녀 쪽 배우도 만만치 않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돼지우리에 떨어지고, 오스트리아 약국에서 손짓 발짓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사고, 태국 감옥에서 브래지어를 담배와 바꾼다. 이런 장면에서 못하는 배우는 꼭 카메라 쪽을 한 번 본다. '이거 웃기려고 하는 거예요' 하고. 이 배우는 안 본다. 창피한 걸 창피한 그대로 한다. 그래서 창피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래도 이 아저씨가 딱 한 번 입 대신 다른 걸 쓰는 장면이 있다. 런던에 돌아와서 옛 남자를 찾아가 붙는다. 전편에서 한 번 붙었던 그 둘이다. 이번엔 미술관에서 시작해서 분수에서 끝난다. 둘 다 평생 싸움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팔을 휘두른다. 폼이 안 난다. 그게 좋았다. 못하는 배우는 여기서 멋있게 치려고 한다. 이 배우는 멋없게 친다. 평생 말로 먹고사는 변호사가 말을 포기하고 물에 빠지는 장면이니까 멋있으면 거짓말이다. 나는 그 서툰 팔에서 한 번 더 졌다.
그녀가 이 아저씨한테 투덜대는 것 중에 속옷을 개어 놓는다는 게 있다. 밤마다 자기 팬티를 반듯하게 접는 남자. 바닥에 옷을 쌓아 두는 여자 입장에서는 그게 다 자기한테 하는 말처럼 들린다. 말을 안 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그 사람의 손짓 하나까지 다 말로 번역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말 안 하는 남자 때문에 여자가 혼자 통역하다 지치는 영화다.
제일 좋았던 장면은 끝에 있다. 그녀가 사무실로 쳐들어와서 다시 만나자고 하고, 둘이 복도로 나온다. 그가 물어볼 게 있다고 한다. 그녀가 먼저 말한다. 결혼하자는 것만 아니면 뭐든 괜찮다고. 그러고 나서 깨닫는다. 그거였구나. 여기서 못하는 배우는 둘 중 하나를 한다. 상처받은 얼굴로 돌아서거나,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거나. 이 배우는 둘 다 안 한다. 얼굴이 한 번 무너졌다가, 지금은 안 하겠다고 하고, 그 순간은 지나갔다고 한다. 그녀가 문 앞으로 다시 뛰어가서 처음부터 하자고 한다. 복도로 나왔고, 당신이 물어볼 게 있다고 했고, 이번엔 내가 아무 말도 안 할 테니까. 그리고 이 배우는 묻기 전에 한 박자를 쉰다. 나는 그 한 박자에서 졌다. 그 한 박자가 이 아저씨가 영화 내내 안 한 설명을 다 한다. 망친 건 네 쪽인데 다시 하는 건 나라는 설명. 그러고도 묻는 건 나라는 설명.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재밌어?" 나는 복도 얘기를 하려다가, 한 박자 쉬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아저씨가 좋아"라고 했다. 친구는 "변호사?"라고 했고 나는 "응"이라고 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친구는 내가 설명을 안 하니까 오히려 보겠다고 했다. 내가 설명을 못 한 건 그게 처음이었다.
마지막 장면은 묘지다. 그녀의 부모가 결혼 서약을 다시 하고, 둘이 묘지 사이를 걸어 나간다. 서른셋이고 엉덩이가 볼링공 두 개만 해도 행복은 가능하다는 말이 깔린다. 아저씨는 끝까지 자기가 왜 그랬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됐다. 나는 집에 와서 지난주에 늦은 날을 다시 생각해 봤다. 버스는 진짜로 막혔다. 근데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좀 그랬다.
변명이 긴 사람들아, 다음엔 한 박자만 쉬자. 그다음 말은 상대가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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