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4

브리짓 존스의 일기2 : 열정과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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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너머로 걸어간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고요한땀· 2026. 10. 13.· 3,070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나는 리모컨을 집는다. 올라가는 이름들을 끝까지 읽어 본 적이 없다. 이야기는 끝났고 남은 것은 명단이다. 명단은 길고 나는 바쁘다. 그런데 가끔 궁금하다. 입맞춤 뒤에 두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저녁은 먹었을까. 누가 설거지를 했을까. 물어서는 안 되는 질문이다. 이야기는 그 질문을 막으려고 끝나는 것이니까.

그런 내게 이 영화는 그 질문을 첫 장면에서 소리 내어 묻는다. 브리짓 존스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중이다. 아침 방송의 꼭지를 찍느라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렸고, 손잡이를 당기는 것을 잊을 뻔했고, 그 와중에 생각이 딴 데로 간다. 그러니까 마크 다시. 석양 너머로 걸어간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러고는 돼지우리에 떨어진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2: 열정과 애정」은 해피엔딩의 다음 날 아침에서 시작해 또 하나의 해피엔딩에서 끝나는 영화다. 전편의 끝에서 눈 내리는 거리에서 입을 맞췄던 두 사람이, 이제 여섯 주째 사귀고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 : 열정과 애정 스틸컷

그다음은 빠르다. 마크의 사무실에 다리가 긴 젊은 변호사 레베카가 온다. 브리짓은 그녀를 의심한다. 둘은 오스트리아로 스키를 타러 간다. 브리짓은 임신인 줄 안다. 아니었다. 자동응답기에 레베카의 목소리가 있다. 헤어진다. 브리짓은 옛 애인 다니엘과 태국으로 여행 프로그램을 찍으러 간다. 환각 버섯을 먹고 모래 위에서 팔다리를 휘저어 천사를 그린다. 뱀 모양 그릇 안의 코카인 때문에 감옥에 간다. 마크가 꺼낸다. 레베카가 좋아한 사람은 마크가 아니라 브리짓이었다. 마크가 청혼한다. 부모가 결혼 서약을 다시 한다. 부케는 브리짓이 받는다.

결말 다음의 사랑에는 청중이 생긴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브리짓은 마크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둘의 밤 이야기를 한다. 마크는 멕시코 대사와 관료들 앞에 앉아 있고, 전화는 스피커폰이다. 그녀의 말은 방 안의 모든 사람에게 들린다. 전편의 마지막에서 두 사람은 눈 내리는 거리에 둘만 있었다. 속편에서는 대사가 듣고, 동료가 듣고, 만찬의 퀴즈 팀이 점수를 매긴다. 둘이서 끝낸 이야기를 여럿 앞에서 이어 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해피엔딩 다음에 날아오는 첫 번째 청구서다.

느리게 읽고 싶은 장면은 오스트리아의 스키장이다. 브리짓은 임신 테스트기를 산다. 결과를 보기도 전에 두 사람은 아이의 학교를 두고 싸운다. 마크는 이튼이라고 한다. 5대째라고 한다. 브리짓은 아이를 그런 파시스트 기관에 보낼 수 없다고 한다. 테스트기는 아니라고 한다. 아이는 없다. 학교도 없다. 5대의 전통이 물려줄 6대도 없다. 그런데 싸움은 있었다. 생기지도 않은 아이의 교복을 두고, 눈 쌓인 산에서, 다 큰 어른 둘이 진심으로 싸웠다. 미래는 아직 없는데 미래에 대한 입장은 이미 있다. 그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두 사람은 테스트기 한 개 값으로 알게 된다. 나는 이 장면이 영화의 뼈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결말 다음의 시간이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가지고 지금 싸우는 시간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 : 열정과 애정 포스터

해피엔딩이란 무엇인가. 시계를 세우는 기술이다. 입맞춤 위에 자막을 올리고 시간을 멈춘다. 멈춘 시간 속에서는 아무도 늙지 않고 아무도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속편을 만든다는 것은 시계를 다시 돌린다는 뜻이다. 시계가 돈다는 것은 다음 날 아침이 온다는 뜻이다. 다음 날 아침이 온다는 것은, 어제의 입맞춤이 오늘의 알리바이가 되어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브리짓은 여섯 주, 나흘, 일곱 시간을 센다. 행복을 세기 시작하면 그것은 벌써 재고가 된다. 이 영화는 사랑에 빠지는 영화가 아니라, 사랑이 시간을 견디는지 지켜보는 영화다. 지켜보는 사람은 번번이 틀린다. 레베카는 마크를 좋아하지 않았다. 응답기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았다. 틀리고 또 틀리는 동안 시간은 간다.

다니엘은 전편 그대로다. 이제는 교양 여행 프로그램 「스무스 가이드」의 진행자가 되어 돌아왔고, 믿음직한 남자가 되겠다고 하고, 섹스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한다. 거짓말이다. 그는 전편에서 하던 말을 다시 하고, 전편에서 하던 짓을 다시 한다. 그는 태국의 해변에서 다시 브리짓을 유혹하고, 다시 실망시키고, 공항에 그녀를 두고 떠난다. 이 속편에서 변하지 않은 사람은 다니엘뿐이고, 그래서 그는 시계 바깥에 있다. 바뀌지 않는 사람은 편하다. 시간을 견딜 필요가 없으니까. 대신 그에게는 다음 날 아침도 없다.

그러나 이 속편이 정말 시계를 돌렸는지는 모르겠다. 끝에 가면 모든 것이 제자리다. 다시 사귀고, 다시 청혼을 받고, 마크와 다니엘은 전편처럼 다시 주먹을 휘두르고, 부모는 같은 결혼의 서약을 한 번 더 한다. 바늘이 한 바퀴 돌아 같은 숫자 위에 선 셈이다. 그런데 시계란 원래 그런 물건이다. 한 바퀴 돌아 같은 자리에 오는 것을 우리는 하루라고 부른다.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고 시간이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브리짓은 태국의 감옥에서 여자들에게 마돈나의 노래를 가르친다. 처음인 것처럼, 이라는 노래다. 두 번째가 처음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거짓말인가, 아니면 그것이 사랑이 시간을 견디는 유일한 방식인가.

우리도 결말을 몇 개씩 가지고 산다. 합격, 입사, 결혼, 전세 계약, 대출 승인. 축하한다는 말이 쏟아지고 사진이 찍히고, 그날은 자막이 올라가는 날이다. 청첩장에는 행복하게 살겠다고 적혀 있다. 그 문장은 미래형이다. 다음 날 아침에는 아무도 그 문장을 다시 읽지 않는다. 누가 쓰레기를 내놓을지, 어느 부모 집에 먼저 갈지, 아직 없는 아이를 어느 학교에 보낼지로 싸운다. 그 싸움이 결말을 배반하는 것인지, 결말을 살아 내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싸우는 동안은 시계가 가고 있다는 것만 안다. 속편이 있는 삶은 피곤하다. 어제 받은 축하가 오늘의 면책이 되지 않고, 같은 사람과 같은 집에서 같은 싸움을 조금씩 다른 이유로 되풀이해야 한다. 그러나 속편이 없는 삶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본다. 자막이 올라간 뒤의 검은 화면이다. 거기서는 아무도 싸우지 않지만, 아무도 저녁을 먹지 않는다.

브리짓은 떨어지는 동안 석양 너머의 일을 물었다. 답은 돼지우리였다. 그리고 그다음은, 또 하나의 자막이었다. 나는 요즘 자막이 끝까지 올라갈 때까지 리모컨을 들지 않는다. 명단이 다 지나가고 화면이 꺼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게 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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