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4

브리짓 존스의 일기2 : 열정과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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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대상을 지어 주는 일

조용한근육맨· 2026. 10. 13.· 3,471자

의심과 불안을 우리는 자주 같은 말처럼 쓴다. 그러나 둘은 다르다. 의심에는 대상이 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라고 물을 수 있고, 그래서 답도 있을 수 있다. 불안에는 대상이 없다. 그것은 무엇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것이어서, 증거를 들이대도 물러나지 않는다. 문제는 사람이 대상 없는 상태를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에 대상을 하나 지어 준다. 불안을 의심으로 바꾸면 적어도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가 그 바꿔치기를, 그러니까 불안이 의심의 옷을 입는 과정을 끝까지 따라가 본 영화라고 생각하고, 왜 그런지를 말해 보려 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2: 열정과 애정」(2004, 비번 키드런 연출)은 전편의 해피엔딩 바로 뒤에서 시작한다. 브리짓은 인권 변호사 마크 다시와 사귄 지 여섯 주 나흘 일곱 시간째고, 그 숫자를 스스로 세어서 말한다. 친구 주드는 남자는 결국 바람을 피운다고 말하고, 아는 여자 하나는 마크가 젊고 다리가 긴 레베카 길리스와 함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브리짓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미 할 일이 생겼다. 이것이 출발점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 : 열정과 애정 스틸컷

마크는 그녀를 법조계 만찬에 데려간다. 브리짓은 그날 청혼을 기대하고 집을 나선다. 머리 손질을 망치고 택시 안에서 화장을 하고 늦게 도착한다. 만찬의 퀴즈에서 마지막 문제는 마돈나가 영국에서 낸 첫 싱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브리짓은 「럭키 스타」라고 답하고, 정답은 「홀리데이」였으며, 레베카가 속한 팀이 이긴다. 돌아오는 길에 마크는 그녀가 저녁 내내 자기 동료들을 머리 벗어진 상류층 얼간이라고 불렀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브리짓이 진 것은 퀴즈가 아닐 것이다. 그녀는 그 방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꼈고, 그 느낌에는 대상이 없었다. 그래서 대상을 찾았다. 그날 밤 이후 레베카는 브리짓에게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답이 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 : 열정과 애정 포스터

그 뒤의 일은 빠르게 간다. 마크는 밤에 브리짓의 집 앞에 와서 인터폰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두 사람은 오스트리아로 스키를 타러 가고, 임신인 줄 알고 아직 없는 아이의 학교를 두고 다투고, 아니라는 결과가 나온다. 어느 밤 자동응답기에 레베카의 목소리가 남아 있다. 한잔하러 들르겠다는 말이다. 브리짓은 마크를 추궁하고, 마크는 아니라고 하고, 브리짓은 어쩌면 이미 그 사람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며 집을 나온다. 그녀는 옛 애인 다니엘과 태국으로 촬영을 가고, 뱀 모양 그릇에 든 코카인 때문에 태국의 감옥에 갇힌다. 마크가 진짜 밀수범을 찾아내 그녀를 꺼낸다. 런던에 돌아온 브리짓에게 레베카가 고백한다. 자기가 마음을 둔 사람은 마크가 아니라 브리짓이었다고. 그리고 마크는 청혼하고, 브리짓의 부모는 결혼 서약을 다시 하고, 브리짓은 부케를 받는다.

질문은 이것이다. 브리짓의 의심에는 처음부터 대상이 있었는가.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째, 이 영화는 의심의 증거와 불안의 증거를 구분한다. 의심의 증거란 남의 말, 퀴즈의 정답, 응답기의 목소리 같은 것이다. 하나하나는 사실이다. 누군가 두 사람이 함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레베카는 브리짓이 모르는 답을 알았고, 응답기의 목소리는 실제로 레베카의 것이었다. 틀린 데가 없다. 그러나 정확하지도 않다. 그 사실들이 가리키는 곳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끝에서 레베카가 그 사실들을 한 번에 무효로 만든다. 그녀의 마음은 마크가 아니라 브리짓을 향해 있었다. 그러니까 브리짓이 모은 증거는 전부 진짜였고, 의심은 전부 틀렸다. 이 구분을 영화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 준다. 의심이 쌓은 탑이 높을수록, 그것을 받치고 있던 것이 불안이었음이 드러날 때의 낙차가 크다. 브리짓이 두려워한 것은 레베카가 아니었다. 자기가 저 방에, 저 사람 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레베카가 사라져도 남는다.

둘째, 그렇다면 불안에는 무엇이 답하는가. 나는 인터폰 장면을 떠올린다. 마크는 밤에 그녀의 집 앞에 서서 인터폰으로 말한다. 브리짓은 처음에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그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녀가 다시 말해 보라고 하자 「사랑한다고 했잖아, 제발」 하고 소리친다. 곁에 있던 아이들이 환호한다. 이 장면이 내게 중요한 것은 고백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그는 증거를 가져오지 않았다. 레베카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설명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 설명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에 말을 던지러 온 것이다. 인터폰은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다. 길에 서서, 남들이 듣는 데서, 사랑한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 그것은 증명이 아니라 선언이다. 의심에는 증명이 답하고 불안에는 선언이 답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선언은 불안을 없애지 못한다. 그 뒤로도 브리짓은 응답기 앞에서 무너진다. 그러나 선언은 불안에 대상을 지어 주는 대신 불안 곁에 서 준다. 이 영화가 사랑에 대해 아는 것은 그 정도의 차이일 것이고, 나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영화가 브리짓의 불안을 번번이 웃음거리로 삼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녀는 돼지우리에 떨어지고, 스피커폰으로 망신을 당하고, 감옥에 간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보고 싶다. 이 영화는 불안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만들어 내는 행동을 보여 준다. 웃음은 행동에 붙고, 불안 자체에는 붙지 않는다. 태국의 감옥에서 브리짓은 남자친구에게 속아 인신매매와 마약으로 내몰린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들 앞에서 그녀의 걱정은 작아 보인다. 영화는 그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고, 나는 그 대목에서는 조심스럽다. 타인의 고통을 저울추로 쓰는 일은 늘 위험하다. 다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브리짓은 처음으로 자기 불안의 대상을 찾는 일을 멈추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 듣는 동안 불안은 사라지지 않지만, 적어도 대상을 지어내지는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브리짓의 부모가 결혼 서약을 다시 하는 자리다. 브리짓은 부케를 받고, 마침내 해피엔딩을 찾았다고 말한다. 이 결말에 보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은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고생 끝에 청혼을 받았으니까. 그러나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다. 영화는 브리짓의 결혼식이 아니라 부모의 두 번째 서약으로 끝난다. 서약은 한 번으로 끝나는 말이 아니라 되풀이해야 하는 말이라는 것, 이것이 영화가 고른 결말의 자리다. 선언이 불안을 없애지 못하므로 선언은 되풀이되어야 하고, 되풀이되는 선언을 우리는 서약이라고 부른다. 전편의 끝에서 브리짓은 해피엔딩을 얻었고, 이 영화는 그 뒤에도 서약이 계속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한 편을 더 쓴 셈이다. 그러니까 보상이 아니라 갱신이다.

이 영화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불안에 대상을 지어 주는 일을 멈추는 것이 사랑의 작은 기술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의심은 답을 얻으면 끝나지만 불안은 답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곁에 누가 서서 같은 말을 되풀이해 줄 때 조금 잦아들 뿐이다. 우리가 흔히 의심이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아마 대상을 잃은 불안일 것이고, 그 둘을 구분하는 일에서 이 영화는 생각보다 멀리 갔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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