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4

브리짓 존스의 일기2 : 열정과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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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브리짓을 어디까지 찍기로 했는가

필름속산책자· 2026. 10. 13.· 2,847자

질문에서 시작하겠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2: 열정과 애정」은 브리짓을 어디까지 찍기로 했는가. 다시 묻겠다. 이 영화는 그녀를 찍는 카메라를 어디까지 보여 주고, 어디서부터는 보여 주지 않기로 했는가.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영화에 대해 화면 자체를 읽을 만한 자료를 나는 충분히 찾지 못했고, 그래서 카메라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를 묻는 대신, 영화 안에 또 하나의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려 한다. 브리짓은 아침 방송국에서 일한다. 말하자면 그녀는 이 영화 안에서 이미 찍히는 사람인 것이다.

첫 번째 질문.

영화는 어떤 화면으로 열리는가. 오프닝 크레디트가 흐르는 동안 그녀는 떨어지고 있다. 아침 방송의 꼭지를 위해 비행기에서 뛰어내렸고, 낙하산 손잡이를 당기는 일을 거의 잊었으며, 돼지우리에 떨어지고 나서도 리포트를 끝까지 마친다. 상사는 그 꼭지를 좋아한다. 고정 코너로 하자고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첫 자리는 이렇다. 브리짓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방송이 된다, 라는 사실. 당신은 여기서 웃음을 기다릴 것이다. 영화도 그것을 기다린다. 그러나 나는 다른 것을 본다. 그녀가 떨어지는 동안 그녀를 보는 눈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영화의 카메라 뒤에 방송국의 카메라가 한 겹 더 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녀는 마크에게 전화를 걸어 둘만의 밤 이야기를 하는데, 마크는 멕시코 대사와 관료들 앞에 앉아 있고 전화는 스피커폰이다. 사적인 말이 방 안의 모든 사람에게 들린다. 이 영화에서 브리짓은 번번이 보이고 들리는 쪽에 놓이고, 영화는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숨기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첫 번째 태도다. 당신은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주인공이 망신을 당하는 것은 이 장르의 오래된 약속이 아니냐고. 맞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그 망신을 사고가 아니라 직업으로 만든다. 떨어지는 것이 그녀의 일이 되고, 떨어지는 그녀를 찍는 것이 방송국의 일이 되며, 상사는 그것을 고정 코너로 만들고 싶어 한다. 보이는 쪽에 놓인 사람은 자기가 언제 보일지를 정하지 못한다. 영화는 그 사실을 첫 장면에서 웃음과 함께 건네고, 나는 그 웃음을 받으면서도 손이 조금 무거워진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 : 열정과 애정 스틸컷

두 번째 질문.

그렇다면 영화는 무엇을 찍지 않기로 했는가. 마크와 헤어진 브리짓은 태국으로 간다. 옛 애인 다니엘이 진행하는 교양 여행 프로그램 「스무스 가이드」의 공동 진행자로 간 것이다. 그녀는 다시 카메라 앞에 선다. 떨어지는 대신 이번에는 웃으면서, 그러나 역시 남의 프로그램 안에서. 런던에서 그녀를 찍던 것이 아침 방송의 카메라였다면, 태국에서 그녀를 찍는 것은 다니엘의 프로그램이고, 다니엘은 전편에서 그녀를 가장 가볍게 대했던 사람이다. 당신은 여기서 다니엘이 달라졌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는 믿음직한 남자가 되겠다고 말하고,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그는 해변에서 그녀에게 다가가고, 그런 다음 공항에 그녀를 두고 떠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 : 열정과 애정 포스터

해변, 실수로 먹은 환각 버섯, 모래 위에 팔다리를 휘저어 그린 천사. 여기까지 영화는 보여 준다. 찍히는 그녀를, 찍히는 줄도 모르고 떠 있는 그녀를, 보여 주고 또 보여 준다. 그런 다음 뱀 모양 그릇에 든 코카인이 그녀의 짐에서 나오고, 그녀는 감옥에 들어간다. 감옥에는 카메라가 없다. 방송국의 카메라 말이다. 거기서 브리짓은 남자친구에게 속아 인신매매와 마약으로 내몰린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마돈나의 노래를 가르친다. 프라오라는 여자가 가사를 틀리고, 또 틀리고, 끝내 맞게 부른다. 이것을 이렇게 찍어도 되는가. 나는 처음에 이렇게 말하려 했다. 다른 여자들의 고통이 브리짓의 깨달음을 위한 배경으로 놓였다고, 그것은 예의가 아니라 폭력에 가깝다고. 아니, 다시 말하겠다. 영화는 그 방에서 브리짓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자리에 앉혔고, 노래는 브리짓이 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프라오가 자기 입으로 맞게 부르는 것으로 끝난다. 그 방에서 마지막으로 소리를 내는 사람은 브리짓이 아니다. 예의인지 폭력인지 나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라고 말하는 편이 정직할 것이다. 다만 이것은 말할 수 있다. 영화 전체에서 브리짓이 보이는 쪽이 아니라 듣는 쪽에 놓인 자리는 그 방이 거의 유일하다는 것, 그리고 영화는 그 방에 방송국의 카메라를 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쓰지 않으려 했다. 쓰면 당신이 보기 전에 결말을 아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장면과 맞세우지 않으면 이 글은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브리짓의 부모가 결혼 서약을 다시 하는 자리에서 끝난다. 브리짓은 하객 사이에 서 있고, 부케를 받고, 마침내 해피엔딩을 찾았다고 말한다. 감옥 한 번, 여자와의 입맞춤 한 번, 외교 사건 끝에 되찾은 남자친구 하나, 라고 그녀는 센다. 첫 장면에서 그녀는 떨어지는 동안 찍히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남의 서약을 보는 사람이다. 떨어지는 사람과 보는 사람. 카메라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나는 말할 수 없으니 이렇게만 말하겠다. 영화는 브리짓을 보이는 자리에서 시작해 보는 자리에서 끝낸다. 보이는 사람에게는 자기 이야기가 없다. 남이 편집하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생긴다. 그녀가 마지막에 자기 한 해를 스스로 세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 자리바꿈이 이 영화의 답이다.

나는 이 자리바꿈을 지지한다. 웃음을 위해 그녀를 떨어뜨린 영화가, 끝에서는 그녀를 보는 자리에 세워 두고 끝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영화가 브리짓에게 지킨 예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은 당신에게 넘기겠다. 감옥에서 브리짓이 들은 이야기들은 영화가 끝난 뒤 어디로 가는가. 그 여자들은 부케를 받지 않는다. 그들은 화면 밖에 남는다. 그들에게는 아무 카메라도 오지 않았는데, 당신은 그들을 얼마나 오래 기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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