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사랑이 온다
작품 페이지에서 댓글 반응 보기 →
보여 주지 않은 여덟 해는 어디로 갔는가
질문에서 시작하겠다. 어떤 이야기가 한 사람의 여덟 해를 건너뛰기로 했을 때, 건너뛴 그 여덟 해는 어디로 가는가. 없어지는가, 아니면 화면 밖에 남아 이쪽을 보고 있는가. 다시 묻겠다. 보여 주지 않기로 한 것은 보여 주지 않았으므로 없는 것인가, 아니면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거워지는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을 주말 저녁 여덟 시에 나가는 쉰 회짜리 드라마 앞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라고 적고 나니 그 문장 안에 얕보는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마음부터 거두고 시작하겠다. 묻고 나면 답이 줄어드는 질문이 있고, 묻고 나면 답이 늘어나는 질문이 있다. 내가 하려는 것은 뒤쪽이다.
첫 번째 질문.
「사랑이 온다」는 무엇을 보여 주지 않기로 했는가. 이 드라마는 첫 네 회를 여덟 해 전에 쓴다. 보여 준 것을 세어 보겠다. 남자의 어머니가 여자에게 내미는 돈. 그것을 받지 않는 손. 집을 나와 일용직 현장으로 가는 남자. 사고. 병상. 그 병상 앞에서 여자가 돈을 요구하며 속물의 얼굴을 꾸며 이별을 통보하는 장면. 깨어난 남자가 찾아갔을 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던 자리. 여기까지가 화면 안에 있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이별의 이유를 숨기는 데 관심이 없다. 숨기는 쪽은 다른 데 있다.

화면에 없는 것을 세어 보겠다. 아이가 생긴 것을 알게 되는 밤이 없다. 낳는 날이 없다. 그 아이를 혼자 여덟 해 키운 시간이 없다. 기울어진 집으로 돌아가 동생들을 떠맡기로 결정하는 자리도 없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가 지우기로 한 것은 비밀이 아니라 노동이다. 비밀은 뒤에 가서 밝히면 되지만 노동은 밝힐 수가 없다. 그것은 설명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겪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그 여덟 해를 한 번의 끊김으로 지나, 경찰서 조사실에서 다시 시작한다.
나는 이 자리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이상하고 가장 좋은 자리라고 생각한다. 여덟 해 만의 재회가 비 오는 길이나 공항이 아니라 조서를 쓰는 책상 앞에서 일어난다. 온라인 게임에서 말다툼을 한 두 사람이 조사를 받으러 와서 마주 앉는 것이다. 재회의 음악이 놓일 자리에 서류가 놓여 있다. 또 도망가요. 남자가 묻는다. 당신은 여기서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다릴 것이다. 그 기다림 끝에 화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엄마를 부르며 달려오는 아이다. 보여 주지 않은 여덟 해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걸어 들어온 것이다. 조서는 이름과 주소와 생년월일을 적는 종이다. 여덟 해 만에 만난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가장 먼저 다시 알게 되는 것이 그 항목들이라는 것, 나는 그 배치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두 번째 질문.
소리만 남고 얼굴이 없는 것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이 이야기의 가운데에는 녹음이 하나 있다. 여자가 1억을 요구했다는 녹음이다. 녹음은 목소리를 담고 얼굴을 담지 못한다. 그 말을 하는 동안 입이 어떻게 굳어 있었는지, 눈이 어디를 보고 있었는지, 말이 끝난 뒤에 그 얼굴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거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남자가 여덟 해 동안 쥐고 있던 것은 화면 없는 소리였다. 아니, 다시 말하겠다. 쥐고 있던 것이 아니라 그 소리에 붙들려 있었다. 소리는 반박할 수 없다, 라는 점에서 사진보다 독하다.
1억이라는 숫자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 두어야겠다. 숫자는 녹음에 가장 잘 담기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번지지 않고, 들은 사람의 머릿속에 그대로 박힌다. 그 여자가 어떤 마음으로 그 숫자를 골랐는지는 담기지 않는데 숫자만은 또렷하게 담긴다. 그러니까 녹음이 남긴 것은 여자의 전부가 아니라 여자에게서 가장 떼어 내기 쉬운 한 조각이고, 남자는 여덟 해 동안 그 한 조각을 여자의 전부로 알고 살았다. 사람을 오해하는 일은 대개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들은 것이 너무 선명해서.
아홉 번째와 열 번째 회에서 그는 그 소리의 뒤쪽을 듣는다. 여자가 그의 집에서 어떤 말을 들었는지, 무엇을 견디고 나서 그 돈을 입에 올렸는지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알게 된다. 그 대목의 한 화면에서 카메라는 듣는 남자의 얼굴을 가까이 잡는다. 말하는 사람은 화면 왼쪽 앞에 어깨와 뒤통수만 흐릿하게 걸려 있고, 초점은 오직 듣는 쪽에 있다. 말해지는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받는 얼굴을 보여 주겠다는 자리다. 들은 것을 되살려 보여 주는 대신 듣는 얼굴만 보여 주기로 할 때, 그것은 소리를 믿으라는 요청이 아니라 얼굴을 믿으라는 요청이 된다. 나는 이 요청을 지지한다.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도 생각해 둘 만하다. 여자의 친어머니다. 오래전에 이 집을 떠나 다른 집의 사람으로 살고 있고, 친딸에게도 의붓딸에게도 진 빚이 있어 그 빚에 눌려 지내는 사람이다. 떠난 어머니가 남자에게 딸의 여덟 해를 설명한다. 당사자가 아니라 떠난 사람의 입을 빌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잔인한 데가 있다. 여자는 자기 시간을 자기 입으로 말할 기회를 또 한 번 건너뛴 셈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여자에게 말을 잘 주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이 드라마의 흠인지 방법인지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
여자 쪽을 보겠다. 그는 반찬가게에서 일한다. 앞치마를 매고, 턱에는 투명한 위생 마스크가 걸려 있고, 뒤에는 스테인리스 선반과 벽에 붙은 종이들이 있다. 이 사람의 여덟 해는 한 번도 요약되지 않고 다만 그 자리의 물건들로 있다. 통, 저울, 마스크, 종이. 당신은 이 사람이 언제 자기 몫의 이야기를 꺼내는지 기다리게 될 텐데, 이 드라마는 그 설명을 좀처럼 내주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 것이 이 인물을 지키는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해지지 않은 것은 아직 그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시간을 요약해 주는 일은 친절해 보이지만, 요약된 시간은 그 순간부터 남의 손에 들어간다.
이 집에는 여덟 해가 하나 더 있다. 막내는 여덟 해 동안 속았다. 그 시간이 무엇이었는지 모르는 채로 돈을 뜯기고 맞았고, 열아홉 번째 회에 와서야 자기가 무엇을 겪었는지를 안다. 나는 이 겹침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나는 여덟 해 동안 자기가 꾸민 거짓말을 지키느라 속물의 얼굴로 살았고, 동생은 여덟 해 동안 남의 거짓말에 속아 제 몸을 깎았다. 한쪽은 속이는 자리에 있었고 한쪽은 속는 자리에 있었지만, 두 사람이 치른 것은 같은 길이의 시간이다. 이 드라마는 그 두 개의 여덟 해를 나란히 놓아 두고도 한 번도 그것을 소리 내어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 쪽이 옳다. 설명되는 순간 그것은 구조가 되고, 구조가 되면 사람이 빠져나간다.
오늘 저녁에 나갈 회차에는 여덟 해 동안 아들을 만나지 않은 어머니가 차 안에 앉아 아들의 가게 쪽을 보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멈추겠다. 나는 그 회차를 아직 보지 못했고, 그러므로 이 글에는 마지막 장면이 없다. 이렇게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 쓰는 일에는 언제나 조금의 염치없음이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여덟 해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그 어머니에게도 각각 여덟 해가 있고, 그 여덟 해들은 아직 한자리에 모이지 않았다.
나는 이 드라마가 여덟 해를 보여 주지 않기로 한 결정을 지지한다. 보여 주었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보았다, 라고 여겼을 것이고, 보았다고 여기는 순간 그 시간에는 값이 매겨졌을 것이다.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여덟 해는 아직 값이 없다. 값이 없는 것은 함부로 치를 수 없다. 남자가 매일 거절당하면서도 매일 다시 서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나는 읽는다. 그는 보지 못한 시간의 값을 치르는 중이고, 치를 수 없는 값이기 때문에 내일 또 와야 하는 것이다. 사랑이 온다는 말은 그러니까 약속이 아니라 형벌에 가깝다. 오는 쪽이 사랑이라면 받는 쪽은 가만히 있어도 되겠지만, 이 이야기에서 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치르지 못한 시간이다. 그것은 올 때마다 문 앞에 서서 어제와 같은 얼굴로 기다린다.
세 번째 질문.
이것은 답하지 않고 당신에게 넘기겠다. 보지 못한 여덟 해를 떠맡겠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그 여덟 해를 혼자 산 사람은 믿어야 하는가. 믿는다면 무엇을 믿는 것인가. 그 말인가, 아니면 그 말을 하는 얼굴인가. 녹음에는 얼굴이 없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아직 절반이 넘게 남아 있다.
댓글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