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쿠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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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지 않는 전화에 메시지를 남기는 사람
자동응답기 얘기부터 해야겠다. 이 영화는 알프스 리조트에서 토하는 손님들과 후드 쓴 여자와 시간이 몇 초씩 되감기는 공포 영화인데, 내가 가장 오래 붙들린 장면은 소리를 지르는 쪽이 아니라 전화기를 든 쪽이었다. 그레첸이 죽은 엄마의 자동응답기에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 받을 사람이 없는 번호에, 받을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 전화를 건다. 녹음된 목소리를 들으려고.
그 장면
줄거리부터 중계한다. 열일곱 살 그레첸은 엄마를 잃고 미국에서 독일 바바리아 알프스로 온다. 아빠와 새엄마, 그리고 말을 하지 못하는 이복동생 알마와 함께다. 아빠와 새엄마는 건축가고, 리조트 주인 쾨니그가 짓는 새 호텔 일을 맡았다. 쾨니그는 그레첸에게 리조트 안내 데스크 일을 준다. 친절하다. 친절한데 어딘가 이상하다. 손님들이 로비에서 토한다. 알마는 발작을 한다. 밤에 자전거로 퇴근하지 말라는 말을 그레첸은 당연히 듣지 않고, 당연히 뒤에서 뭔가가 쫓아온다. 후드를 쓰고 고글을 낀 여자. 그레첸은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아 병원 문을 두드린다. 경찰은 장난으로 처리한다. 이 영화의 어른들은 전부 그렇다. 이상한 걸 보고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열일곱 살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 소리. 후드 쓴 여자가 내는 울음 같은 소리를 들으면 방금 지난 몇 초가 되감겨서 다시 재생된다. 같은 동작을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사람을 보는 건 무서운데, 더 무서운 건 영화가 그걸 컴퓨터로 그린 게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벌어진 일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화면이 떨리고 사람이 떨린다. 나는 처음 그 장면에서 리모컨을 떨어뜨렸다!
그 사이사이에 그레첸은 전화를 건다. 자동응답기가 받고, 엄마 목소리가 나오고, 그레첸은 그 뒤에 말을 남긴다.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는 말을. 영화는 이 장면을 몇 번 반복하는데, 반복할수록 공포 장면보다 이 장면이 더 아프다.
그날
내 휴대전화에는 지우지 못한 번호가 하나 있다. 외할머니 번호다. 돌아가신 지 몇 해가 됐는데 아직 「외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저장돼 있고, 가끔 그 이름을 눌러 본다. 처음 몇 달은 통화 연결음이 울렸다. 그다음에는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왔다. 그걸 알면서도 눌렀다. 솔직히 말하면 안내 음성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통화 기록에 「외할머니」가 남는 것, 그것만으로 뭔가 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레첸이 전화를 거는 장면을 나는 처음부터 내 일처럼 봤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겹침이다. 예상 못 한 건 그다음이었다.
그 장면, 다시
영화 중반에 그레첸은 엄마의 자동응답기에 자기 것이 아닌 메시지가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알마다. 말을 못 하는 알마가 글자를 소리로 바꿔 주는 기계로 메시지를 남겼다. 그레첸의 엄마에게, 그레첸한테 연락을 해 달라고. 알마는 아직 어려서 그 번호의 주인이 죽었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언니가 자꾸 전화를 하는데 답이 없으니 엄마가 전화를 안 받는 거라고 생각한 거다. 그래서 자기가 대신 부탁한 거다.
여기서 나는 정색했다. 호들갑 떨 자리가 아니라서다. 그레첸은 그때까지 알마를 자기 가족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아빠의 새 가족, 자기 자리를 차지한 아이. 영화 제목이 뻐꾸기인 이유를 그레첸도 처음에는 그렇게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레첸 몰래, 그레첸이 받지 못한 전화를 대신 걸어 준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이 다르게 보였다. 외할머니 번호를 누르던 어느 밤, 옆에 있던 동생이 물었다. 할머니한테 전화했어? 나는 아니라고 했다. 동생은 더 묻지 않았다. 나는 그때 동생이 모른 척해 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모른 척한 게 아니라 들은 거였다. 누군가 내가 받지 못할 전화를 거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것. (그 동생은 지금 다른 도시에 살고, 내가 이 글을 쓰는 걸 모른다. 알면 질색할 것이다. 그래서 더 쓴다.) 그레첸이 알마의 메시지를 들을 때 나는 그 밤의 동생 얼굴을 봤다. 그리고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설명하지 않겠다.
그 뒤
결말은 빠르고 요란하다. 쾨니그가 그레첸을 기차역에 데려다 주겠다고 하고는 수영장 별채에 가둔다. 그러고는 설명을 시작한다. 후드 쓴 여자는 사람이 아니라 뻐꾸기처럼 다른 종의 둥지에 알을 두는 종족이고, 리조트는 그 알을 품을 부부를 끌어들이는 둥지이며, 알마는 아빠와 새엄마가 신혼여행으로 이곳에 왔을 때 심어진 아이라고. 쾨니그는 플루트를 꺼내 어린 개체를 부른다. 형사 헨리가 때맞춰 들이닥쳐 쾨니그를 쏘고 그것을 죽인다. 여기까지는 구원이다. 그런데 병원으로 간 헨리가 알마까지 죽이려 든다. 종족 전부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레첸은 접이식 칼로 헨리를 찌른다.
그다음이 이 영화에서 내가 두 번째로 오래 붙든 장면이다. 그레첸은 알마의 어미인 후드 쓴 여자를 저지하려고 알마에게 칼을 대는 척한다. 해치지 않을 거면서. 알마는 그걸 모르고 도망친다. 그레첸이 쫓고 어미가 그레첸을 쫓는다. 결국 그레첸은 그 여자를 찌른다. 그리고 알마가 두 손으로 그레첸의 귀를 막아 준 다음에 소리를 지른다. 어미가 내던 그 소리. 자기 언니만 빼고 모두를 멈추게 하는 소리. 멈춰 선 쾨니그와 헨리 쪽에서 총성이 들린다. 둘이 서로를 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 손을 보고 알마의 메시지를 다시 떠올렸다. 둘은 같은 동작이다. 말을 못 하는 아이가 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걸 한다. 한 번은 전화로, 한 번은 손으로. 영화는 설명을 너무 많이 한다는 평을 많이 받았고 나도 쾨니그의 강의 장면에서는 하품을 참았다 ㅋㅋ. 그런데 알마에 관한 것은 영화가 한 번도 설명하지 않는다. 손으로 보여 준다. 그래서 믿게 된다.
마지막에 그레첸과 알마는 환자복 차림의 에드를 태우고 리조트를 떠난다. 에드는 그레첸이 이 동네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둔 사람이고, 같이 도망치려다 그 소리를 듣고 차 사고가 났던 사람이다. 차 안에서 영화는 끝난다. 처음에 차를 타고 들어왔던 가족이, 끝에는 다른 조합으로 차를 타고 나간다.
나는 영화가 끝나고 외할머니 번호를 눌러 봤다.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왔다. 그다음에 동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받았다. 받는 전화가 있다는 것, 그걸 알려 주려고 이 영화가 그렇게 요란했나 싶다. 당신이 받지 않는 번호에 전화를 거는 사람이라면,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지 한 번 돌아봐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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