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4
쿠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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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조금 더 겁에 질린 채로
질문에서 시작하겠다. 한 사람의 몸을 남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총도 밧줄도 아니다. 이 감독이 만든 장편 두 편에서 답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목소리 하나,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고 마는 귀.
「쿠쿠」를 보고 나서 나는 이 감독의 첫 장편이 궁금해졌다. 먼저 밝혀 둔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아래에 적는 전작 이야기는 리뷰와 인터뷰로 확인한 것만이고, 확인하지 못한 것은 비워 두었다. 보지 않은 영화를 본 것처럼 쓰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전작
「루스」는 2018년 2월 베를린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고 독일에서는 이듬해 봄에 개봉했다. 감독의 영화학교 졸업 작품이다. 상영 시간 70분. 16밀리 코닥 필름으로, 아주 넓은 화면비로 찍었다. 경찰서 장면은 쾰른시가 싸게 내준 버려진 건물에서 찍었다고 감독은 말했다. 루아나 벨리스가 택시 기사 루스를, 얀 블루타르트가 정신과 의사 로시니를, 율리아 리들러가 노라를 맡았다. 번역을 맡은 경찰 올라르테, 반장 베르티용이 더 있다. 등장인물은 거의 그게 전부다.
줄거리는 이렇다. 택시를 몰다 사고를 낸 루스가 밤의 텅 빈 경찰서 접수대로 들어와 소리를 지른다. 같은 시각 어느 술집에서 노라라는 여자가 로시니를 유혹하면서 루스 이야기를 한다. 칠레의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루스와 함께였다고. 노라 안에 들어 있던 무언가가 의사에게 옮겨 가고, 의사는 경찰서 회의실에서 루스에게 최면을 건다.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말해 보라고.
여기서 이 영화가 어떻게 생겼는지가 드러난다. 리뷰들이 하나같이 적어 둔 장면이다. 택시는 화면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루스는 회의실 의자에 앉은 채 기어를 넣고 백미러를 본다. 소품은 그 백미러 하나뿐이다. 거리 소음, 빗소리, 공항 안내 방송이 깔린다. 손님이 탄다. 손님의 말은 세 겹으로 들린다. 노라가 스페인어로 말하고, 루스가 입을 맞춰 따라 하고, 통역이 독일어로 옮긴다. 형광등 아래 회의실인데 관객은 택시 안에 있다. 감독은 이 의자 장면을 가장 먼저 떠올렸고 나머지를 그 둘레에 지었다고 했다. 들리는 소리 전부를 각본에 썼다고도 했다. 최면이 무서운 것은 사람을 그만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이 장면에서 멈춰 선 것은 카메라의 자리 때문이다. 카메라는 택시를 찍지 않기로 한다. 대신 택시를 다시 모는 몸을 찍는다. 그러면 관객이 보는 것은 사고가 아니라, 남의 목소리에 따라 운전하는 한 사람이다. 질문은 자연히 이렇게 된다. 지금 이 여자의 손을 움직이는 것은 누구의 목소리인가.
이번 작품
「쿠쿠」는 2024년 2월 같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고 그해 8월 미국에서 개봉했다. 103분. 이번에는 35밀리 필름이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서 35일 동안 찍었다. 촬영감독 파울 팔츠와 작곡가 시몬 바스코프가 전작에 이어 그대로 왔다. 그리고 얀 블루타르트가 다시 나온다. 전작에서 최면을 걸던 의사가, 이번에는 아내를 잃고 총을 들고 다니는 전직 경찰 헨리다.
영화는 주인공 그레첸이 아니라 다른 소녀로 시작한다. 옆방에서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소리치는 동안 소녀가 집을 빠져나가 숲으로 달린다. 그 소녀가 누구인지, 왜 뛰는지를 영화는 한참 뒤에야 알려 준다. 전작의 첫 장면은 루스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한 영화는 들어오며 시작하고 한 영화는 나가며 시작한다. 이 차이를 나는 뒤에서 다시 꺼낼 것이다.
그다음은 그레첸이다. 엄마를 잃고 아빠와 새엄마, 말을 하지 않는 이복동생 알마와 함께 바바리아 알프스의 리조트로 온다. 리조트 주인 쾨니그가 프런트 일을 준다. 로비에서 여자 손님들이 토한다. 알마가 발작을 한다. 그리고 그 소리가 있다. 후드를 쓴 여자가 내는 울음을 들으면 방금 지나간 몇 초가 되감긴다. 같은 동작을 다시 하고, 다시 한다.
이 되감김을 어떻게 찍었는지 감독과 촬영감독이 여러 자리에서 설명했다. 배우들에게 같은 장면을 여러 번 연기하게 했다. 매번 조금씩 더 겁에 질린 채로. 그 테이크들을 이어 붙이고 세로로 줌을 넣었다. 떨림은 조명용 거울에 전동 드릴을 두세 개 붙여 두 축으로 흔들고 그 거울을 통해 찍은 것이다. 화면만 흔들면 지진처럼 보일 테니, 거울을 흔들어 배우 뒤쪽이 비껴 보이게 했다고 한다. 모든 장면에서 할 수는 없어서 나중에는 그 설계도를 효과 팀에 넘겨 같은 결과를 만들었다. 감독은 이 되감김을 두고 사람들이 일종의 최면에 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울음소리 자체는 추상적인 발성을 하는 가수가 냈고, 효과음과 음악 사이 어딘가에 놓이게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괴물은 어두운 데 숨지 않는다. 촬영감독은 모든 것이 그림자에 숨어 있을 필요는 없다고, 밝고 네온이 터지는 화면도 충분히 무섭다고 했다. 괴물은 환한 데서 소리를 내고, 소리를 들은 몸은 환한 데서 같은 몇 초를 다시 산다.
끝은 이렇다. 병원 안에서 쾨니그와 헨리가 서로에게 총을 겨눈 채 멈추고, 그레첸과 알마는 그 사이를 빠져나온다. 총소리가 두 번 난다. 카메라는 누가 누구를 쐈는지 보여 주지 않는다. 밖에는 죽은 줄 알았던 에드가 환자복을 입고 서 있다. 차 안에서 알마가 그레첸의 무릎에 잠들고, 그레첸은 동생의 귀가 조금 움직이는 것을 본다.
사이
되풀이되는 것 하나. 두 영화 모두 목소리가 몸을 되풀이하게 한다. 「루스」에서는 의사의 목소리가 한 여자에게 지나간 밤의 운전을 다시 시킨다. 「쿠쿠」에서는 어미의 울음이 사람들에게 방금 지나간 몇 초를 다시 살게 한다. 전작은 그 되풀이를 의자 하나와 소리로 만들었고, 이번 작품은 배우를 한 번 더, 조금 더 겁에 질리게 찍어서 만들었다. 방법은 달라졌는데 하는 일은 같다. 되감는다. 감독은 「쿠쿠」가 가족의 순환, 세대의 순환에 관한 영화라고 했다. 순환이라는 말을 조금 작게 줄이면 되감기가 된다.
달라진 것 하나. 되감기는 것이 무엇이냐가 다르다. 전작에서 되감기는 것은 한 여자의 과거이고, 그 과거를 원하는 것은 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는 악마다. 그것은 한 사람을 향한 소유다. 이번에 되감기는 것은 몇 초의 현재이고, 그것을 원하는 것은 제 새끼를 남의 품에 맡기려는 어미다. 그것은 다음 세대를 향한 번식이다. 소유는 회의실 하나로 충분했다. 번식에는 산과 숲과 호텔과 가족이 필요했다. 첫 장면의 차이가 여기서 돌아온다. 소유당하는 사람은 안으로 들어오고, 품어진 아이는 밖으로 뛰어나간다. 「루스」는 들어오는 여자로 열리고 「쿠쿠」는 나가는 소녀로 열린다.
얀 블루타르트를 두 영화의 반대편에 세운 것이 우연인지는 모른다. 전작에서 그의 입은 최면을 걸었다. 이번에 그의 손은 울음을 멈추려고 총을 든다. 목소리로 남을 움직이던 사람이 목소리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다. 이것이 캐스팅의 뜻인지 그냥 오래된 동료를 다시 부른 것인지 나는 판단하지 않겠다. 다만 그 얼굴이 두 영화에 다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질문 하나를 더 만들었다.
그래서 같은 질문을 다시 묻고 있는가. 묻고 있다. 지금 내 몸을 움직이는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전작은 그 질문에 끝까지 답하지 않았다. 이번 영화는 한 번은 답을 들려준다. 되풀이를 멈추는 것은 더 큰 소리가 아니라 귀를 막아 주는 손이라고. 그 장면은 여기서 되풀이하지 않겠다. 보면 안다.
이 영화를 지지한다. 전작보다 돈이 많이 든 티가 나는데도 질문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설여지는 것은 하나다. 전작은 70분 내내 답을 주지 않아서 무서웠고, 이번 영화는 뒤에 가서 설명을 꽤 길게 한다. 설명이 들어온 자리만큼 되감기가 덜 무서워졌다고 느낀 것은 아마 나뿐은 아닐 것이다.
당신에게 넘긴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남의 목소리에 맞춰 같은 몇 초를 되풀이한 것은 언제였는가. 그 목소리는 누구의 것이었고, 당신은 그것이 되감기인 줄 알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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