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4
트로이
작품 페이지에서 댓글 반응 보기 →
칼은 싸우라고 준 것이 아니었다
「이 칼이 트로이 사람의 손에 있는 한, 우리 민족에게는 미래가 있다.」 영화에서 이 말은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아버지의 입에서, 한 번은 아들의 입에서. 두 번 다 칼을 건네는 쪽은 곧 사라질 사람이고, 받는 쪽은 그 칼로 아무도 베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를 칼 한 자루로 읽어 보기로 했다. 아킬레스의 창도 아니고 목마도 아니고, 영화가 「트로이의 검」이라고 부르는, 두 번 건네지고 한 번도 제대로 쓰이지 않은 칼.
먼저 상황을 적어 둔다.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트로이의 둘째 왕자 파리스를 따라 배에 오른다. 아내를 잃은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에게 가고, 아가멤논은 그리스의 왕들을 묶어 트로이로 간다. 아가멤논이 원하는 것은 헬레네가 아니라 에게해다. 영화는 이걸 숨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전쟁은 처음부터 사랑 때문이 아니었고, 사랑은 핑계였고, 핑계의 당사자인 파리스는 전쟁이 시작된 뒤로 영화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칼은 바로 그 사람에게 간다.
첫 번째 장면. 파리스는 메넬라오스에게 일대일 결투를 제안한다. 결투 전날 밤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파리스에게 칼을 준다. 내 아버지가 이 칼을 들었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들었고, 트로이가 세워진 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우리 민족의 역사가 이 칼로 쓰였다고. 그리고 저 문장. 이 칼이 트로이 사람의 손에 있는 한 우리에겐 미래가 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집에 있는 아버지의 손목시계를 생각했다. 고장 난 지 오래됐는데 버리지 못하고 서랍에 두는 시계. 시계로서는 죽었고 물건으로서는 살아 있다. 프리아모스의 칼도 비슷하다. 그는 아들에게 칼을 주면서 칼 쓰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다. 가르칠 시간도 없고, 아마 가르쳐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그가 주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족보다. 받는 쪽도 그렇게 받는다. 파리스는 다음 날 그 칼을 들고 나가서 금방 진다. 상처를 입고 형 뒤로 숨는다. 메넬라오스는 까마귀들이 왕자 고기는 처음 먹어 본다고 놀린다. 그다음 일은 다들 아는 대로다. 형이 끼어들고, 결투로 끝날 수 있었던 전쟁은 결투 때문에 커진다. 역사가 그 칼로 쓰였다는 말은 맞았다. 그날의 역사도 그 칼 때문에 쓰였다. 칼이 휘둘러져서가 아니라, 제대로 휘두르지 못해서.
칼은 그 뒤로 한참 안 보인다. 영화의 가운데 토막은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것이다.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스의 갑옷을 입고 나갔다가 죽고, 아킬레스가 성문 앞에서 헥토르를 부르고, 두 사람이 싸우고, 시신이 전차에 묶여 성벽을 돈다. 그 사이 칼은 어디 있었을까.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내 짐작으로는 파리스의 방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결투 뒤로 파리스가 쥐는 것은 활이다. 칼로는 질 것을 아는 사람이 멀리서 쏘는 무기를 고른 것이다. 마지막에 아킬레스를 죽이는 것도 그 활이다. 칼을 못 쓰는 사람이 활로 영웅을 죽이는 이야기. 영화가 이 역설을 알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발뒤꿈치의 전설을 지키려면 어차피 화살이어야 했다는 사정도 있었겠지만.
두 번째 장면. 목마가 성 안으로 들어오고, 밤에 성문이 열리고, 도시가 탄다. 헥토르가 생전에 아내에게 알려 준 땅굴로 안드로마케와 헬레네가 사람들을 데리고 빠져나간다. 파리스는 그 입구에서 한 청년에게 칼을 건넨다. 영화가 그때서야 이름을 알려 주는 청년, 아이네이아스. 파리스는 아버지가 했던 말을 거의 그대로 한다. 이 칼이 트로이 사람의 손에 있는 한 우리에겐 미래가 있다.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새 집을 찾아 주라고.
이상하지 않은가. 왕가의 칼을 왕자가 아닌 사람에게 준다. 그것도 방금 처음 본 청년에게. 프리아모스는 아들에게 주었고 파리스는 남에게 준다. 한 세대 만에 「트로이 사람」의 범위가 핏줄에서 아무나로 넓어진 것이다. 나는 여기가 이 영화에서 공동체라는 말이 처음으로 제값을 하는 자리라고 본다. 성벽이 있을 때 트로이는 성 안의 사람들이었다. 성벽이 불타자 트로이는 칼을 든 사람이 된다. 장소가 나라였다가, 물건이 나라가 된 것이다. 그렇다.
아킬레스 쪽에는 이런 물건이 없다. 그에게 있는 것은 이름이다. 어머니는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주우며 말한다. 여기 남으면 오래 평화롭게 살다가 자손이 죽을 때쯤 이름도 사라지고, 트로이에 가면 돌아오지 못하지만 세상이 영원히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고. 아킬레스는 이름을 고른다. 트로이 사람들이 칼을 물려주는 동안 그는 이름을 물려줄 사람 없이 죽는다. 그리고 영화 끝에서 그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아킬레스 자신이 아니라, 그의 시신에 불을 붙인 오디세우스다. 내 이야기를 누가 하거든 내가 거인들과 함께 걸었다고 말하게 하라고, 헥토르의 시대에, 아킬레스의 시대에 살았다고 말하게 하라고. 이름은 남의 입에 맡겨야 남는다. 칼은 남의 손에 맡기면 된다. 어느 쪽이 더 믿을 만한가. 나는 칼 쪽이라고 생각하다가, 그 칼을 받은 청년이 그 뒤에 어디로 갔는지 영화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렸다.
여기서 내 해석을 한 번 의심해 보겠다. 이 칼은 어쩌면 그냥 소품일지 모른다. 원작 서사시에 없는 물건이고, 마지막에 나타나는 청년도 사실은 다른 옛 서사시의 주인공 이름을 빌려 온 것이어서, 아는 사람은 알아보고 웃으라고 넣은 눈짓일 가능성이 높다. 각본가가 한 세대 사이 공동체의 범위가 바뀌는 일을 염두에 두었다기보다 「다음 이야기는 저쪽으로」 정도의 손짓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물건이 이야기 안에서 한 일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 따로 셈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시계는 아버지가 나에게 무언가를 물려주려고 산 것이 아니다. 그냥 시계를 샀을 뿐이다. 그런데 서랍 속에서 그것은 무언가가 되었다.
칼이 한 일을 다시 센다. 결투 전날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갔다. 결투에서 졌다. 한참 안 보이다가 도시가 타는 밤 아들에게서 남에게로 갔다. 그 사이 사람들은 죽었다. 메넬라오스, 파트로클로스, 헥토르, 프리아모스, 아가멤논, 아킬레스. 그 칼이 누군가를 쓰러뜨리는 장면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역사가 이 칼로 쓰였다는 프리아모스의 말은, 그러니까 칼이 역사를 벤 것이 아니라 칼이 역사를 견뎠다는 뜻으로 읽어야 맞다. 트로이의 검이란 무엇인가. 쓰지 않고 가지고만 있어야 하는 물건이다. 쓰는 순간 지는 물건이고, 건네는 순간 건넨 사람은 사라지는 물건이다. 그래서 미래가 있다는 말은 그 칼을 받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칼을 넘겨주고 뒤에 남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 칼이 트로이 사람의 손에 있는 한 우리에겐 미래가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문장을 다시 읽으면 주어가 바뀌어 있다. 처음 들었을 때 주어는 칼이었다. 두 번째 들었을 때 주어는 「가진 사람」이었다. 세 번째로, 영화가 끝난 뒤에 혼자 중얼거려 보면 주어는 「우리」다. 칼은 끝까지 아무도 베지 않고 그 「우리」가 누구인지만 바꿔 놓고 사라졌다. 볼까 말까 묻는 분이 있다면, 세 시간 가까운 전쟁 영화를 칼 한 자루 보러 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답하겠다. 창과 목마는 어차피 다들 보니까.
댓글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