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4
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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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는 비워 두고 가장자리를 센다
아킬레스를 맡은 배우는 나중에 이 영화를 두고, 화면 한가운데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말은 정확하다. 세 시간 가까이 카메라는 그를 가운데 두고 돈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가장자리를 세어 보기로 했다.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에 선 배우들이 이 배역에서 무엇을 했고, 그것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밀었는지. 주연 평가는 다른 데 많으니 넘긴다.
헥토르 · 에릭 바나
이 배우는 이 영화 전에 호주에서 실존 범죄자를 연기한 「초퍼」(2000)로 이름을 얻었고, 「블랙 호크 다운」(2001)의 특수부대원, 「헐크」(2003)의 브루스 배너를 거쳐 여기 왔다. 그 이력에서 헥토르로 오는 길은 직선이 아니다. 전해지는 말로는 아킬레스 역 배우가 「초퍼」를 보고 추천했고, 제안받은 배역이 여럿이었는데 본인이 헥토르를 골랐다고 한다. 그 선택이 영화의 무게를 옮겼다. 각본상 헥토르는 신을 공경하고 자기 여자를 사랑하고 나라를 지킨다는 세 가지 원칙을 외는 사람이고, 동생이 데려온 여자 때문에 온 전쟁을 대신 치르는 사람이다. 종이 위에서는 지루할 수 있는 역할이다. 이 배우가 한 일은 그 원칙을 연설이 아니라 피로로 연기한 것이다. 동생에게 너는 죽는 것도 사랑도 모른다고 소리치는 장면과, 투구를 벗긴 상대가 소년인 걸 알고 그날 싸움을 멈추자고 하는 장면이 같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헥토르가 이만큼 설득되면 보는 쪽은 자연히 성 안쪽에 선다. 각본이 그렇게 쓴 게 아니라 캐스팅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된 쪽이다.
오디세우스 · 숀 빈
이 배우는 전작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2001)에서 화살을 여러 대 맞고 죽었다. 맡는 역마다 죽는 걸로 알려진 배우다. 이 영화에서는 산다. 산다는 것 자체가 캐스팅의 농담이고, 그 농담이 영화의 틀이 된다. 처음과 끝의 내레이션이 그의 목소리다. 사람은 영원의 크기에 시달린다고 시작해서, 내 이야기를 누가 하거든 거인들과 함께 걸었다고 말하게 하라고 끝난다. 살아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정리하는 구조인데, 살아남는 역이 드문 배우가 그 일을 맡아서 정리가 묘하게 들린다. 그가 한 일은 많지 않다. 아킬레스를 설득하러 가고, 아가멤논을 말리고, 목마를 설계하고, 장작에 불을 붙인다. 극장판에서 그의 장면은 거의 다 남 사이에 끼어 있다. 감독판에서 소개 장면을 따로 붙여 줬다는 걸 보면 만든 쪽도 모자란 줄 알았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덜 쓰인 배우를 고르라면 그다.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 · 브렌던 글리슨과 브라이언 콕스
형제 왕 둘은 한 묶음으로 센다. 두 배우는 같은 방향으로 크게 연기한다. 동생은 결투 중에 까마귀들이 왕자 고기는 처음 먹어 본다고 하고, 형은 트로이의 아들은 누구도 외국 왕에게 굴복하지 않는다는 헥토르의 말에 그러면 트로이의 아들은 전부 죽는다고 받는다. 한 리뷰는 두 사람이 신나게 과장 연기를 한다고 썼고, 나는 그 말이 비난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이 각본은 전쟁의 이유를 사랑에서 바다로 옮겨 놓았고, 그 이유를 들고 있는 사람이 이 둘이다. 작게 하면 전쟁이 안 보인다. 다만 둘의 퇴장은 각본이 정했지 배우가 정한 게 아니다. 동생은 첫 결투에서, 형은 마지막 밤에 여사제의 칼에 죽는다. 두 배우가 그 죽음에 앞서 쌓아 둔 게 많지 않아서, 죽음이 통쾌하다기보다 정산처럼 보인다. 이건 모자란 쪽이다.
프리아모스 · 피터 오툴
막사 장면은 다른 글들이 다 썼으니 장면 말고 배우가 한 선택만 적는다. 내 귀에 그는 그 장면에서 목소리를 거의 올리지 않는다. 아들이 눈을 뜬 순간부터 네가 그 눈을 감긴 순간까지 사랑했다고, 뱃사공 몫으로 두 눈에 동전을 놓게 해 달라고 하는 말을 애원이 아니라 설명처럼 한다. 그 선택 때문에 아킬레스 쪽이 무너진다. 큰 배우가 작은 소리로 말하면 상대가 커지는 게 아니라 작아진다. 이 영화에서 아킬레스를 맡은 배우의 가장 좋은 순간도 이 장면이고, 그건 상대가 만들어 준 것이다. 이 역으로 그는 아일랜드의 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받을 만했다.
파트로클로스와 브리세이스 · 개릿 헤들런드와 로즈 번
둘 다 이 영화가 사실상 시작이다. 파트로클로스는 첫 장편이고, 브리세이스는 이 역으로 알려졌다. 각본은 둘에게 각각 한 가지 일을 시킨다. 사촌 동생은 형의 갑옷을 입고 나가 죽는 것, 여사제는 칼을 숨겼다가 왕을 죽이는 것. 신인에게 맡기기엔 둘 다 이야기의 축이다. 파트로클로스 쪽은 각본이 원작의 관계를 사촌으로 바꿔 놓아서, 배우가 할 수 있는 건 아킬레스 옆에서 조르고 실망하는 것뿐이다. 그 정도는 했다. 브리세이스 쪽은 한 인물에 여러 인물을 합쳐 놓은 것이라 선이 많다. 포로였다가, 밤에 칼을 들고 막사에 들어갔다가, 연인이 됐다가, 왕을 찌른다. 이 배우는 그 선들을 한 사람으로 꿰는 데 성공했고, 그래서 마지막에 죽어 가는 아킬레스를 두고 떠나는 장면이 배신이 아니라 결정으로 보인다. 신인 둘 중 한 명은 충분했고 한 명은 각본이 모자랐다.
세어 보니 이렇다. 가장자리에서 영화의 편을 가른 배우가 하나, 영화의 틀을 만든 배우가 하나, 가운데를 무너뜨린 배우가 하나, 각본이 못 준 것을 메운 배우가 하나. 가운데 배우가 화면 한가운데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 건, 그러니까 가장자리가 그만큼 일을 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덧) 결투 장면에서 두 주연이 실수로 때릴 때마다 서로 돈을 물기로 했고, 한쪽만 물었다는 얘기가 있다. 누가 물었는지는 적지 않겠다. 헥토르 쪽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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