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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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라는데 어디를 보고 웃나
먼저 밝혀 두자면 나는 사진을 못 찍는다. 찍는 쪽이 아니라 찍히는 쪽 얘기다. 누가 "웃으세요" 하면 그 순간 얼굴이 굳어서, 친구 결혼식 단체 사진마다 나만 증명사진처럼 나온다. 웃는 게 아니라 웃음을 신고하는 얼굴이다.
아무튼 「더 드라마」를 봤다. 결혼을 일주일 앞둔 신랑이 친구랑 축사를 쓰면서 첫 만남을 떠올리는 걸로 시작한다. 보스턴 카페. 영국에서 온 미술관 큐레이터가 책 읽는 여자한테 말을 건다. 여자는 대답이 없다. 한쪽 귀가 안 들려서 못 들은 건데, 이 남자는 무시당한 줄 알고 자리로 도망갔다가 사과하러 다시 온다. 그러자 여자가 처음인 것처럼 다시 해 보자고 한다. 여기까지가 달달한 부분이다. 그다음에 이 년을 건너뛰고, 결혼식 DJ가 공원에서 약 하는 걸 보고, 친구 둘이랑 '살면서 한 제일 나쁜 짓' 게임을 한다. 신부 차례에서 나온 말은 이거다. 열다섯 살 때 학교에서 총을 쏘려고 계획했었다고. 하지는 않았다고. 그 뒤로 한 시간은 신랑이 무너지는 영화다. 진짜로.

영화 맨 앞에서 이 남자는 친구한테 신부 얘기를 한다. 아름답고, 웃기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웃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축사에 넣을 말이다. 그걸 말하는 얼굴이 좀 재수 없다. 다 읽은 책을 덮으면서 결말을 설명하는 얼굴. 나는 그때 '저 얼굴 나중에 어떻게 되나 보자' 했다. 그리고 영화가 그 얼굴을 어떻게 하는지 봤다. 고백 뒤로 이 영화는 전에 보여 준 장면을 다시 꺼내서, 어른 신부가 있던 자리에 총을 든 열다섯 살짜리를 세워 놓는다. 남자 머릿속에서 그러는 거다. 그러니까 이 배우는 그 장면들에서 눈앞에 없는 걸 보고 있어야 한다. 옆에 앉은 사람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보는 눈. 그게 되나. 된다. 그래서 더 얄밉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대본인지 아는가. 무너지는 사람을 연기하라는 건데,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라는 게 아니다. 장면마다 조금씩, 들키지 않게, 그런데 관객은 알게 무너지라는 거다. 회사에 사직서를 내는 게 아니라 매일 출근해서 책상 서랍을 한 칸씩 비우라는 거랑 비슷하다. 거기다 이 영화는 필름으로 찍어서 화면이 내내 따뜻하다. 따뜻한 화면 안에서 혼자 식어 가라는 거다. 거기다 이 남자는 신부의 고백을 들은 뒤로도 결혼식 준비를 다 해야 한다. 춤 연습을 하고, 음식 시식을 하고, 사진 연습을 한다. 할 게 없을 때 사람은 괜히 뭘 한다. 눈썹을 올리고, 한숨을 쉬고,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잔을 잡았다 놓는다. 나는 이 중에 네 개를 다 한다. 한 장면에서.
이 배우는 그걸 안 한다. 고백 게임에서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이 남자는 어릴 때 같은 반 아이를 온라인에서 괴롭혀 이사 가게 만든 얘기를 한다. 그런데 그 대답이 이상하게 짧다. 남들보다 빨리 끝내 버린다. 그리고 신부가 말할 차례가 온다. 못하는 배우는 여기서 뭔가 한다. 잔을 내려놓거나, 숨을 크게 들이쉬거나, 옆 사람을 한 번 본다. 이 배우는 그냥 멈춘다. 그 친절한 영국식 말투는 그대로인데, 어디선가 차가운 게 스며든다. 들어온 줄도 모르게. 나는 그게 부러웠다. 부러우니까 얄미웠다.

물론 한 번은 크게 한다. 직장 회의 자리에서 서류를 바닥에 내던진다. 영화에서 이 남자가 몸으로 하는 제일 큰 동작이 그거다. 근데 그게 무섭다. 한 시간 동안 아껴 둔 걸 한 번에 쓰니까 서류 몇 장이 폭발처럼 보인다. 나는 아끼는 걸 못 한다. 화가 나면 첫 장면에서 다 쓴다. 그래서 내 서류는 그냥 서류다.
제일 좋았던 장면은 결혼사진 연습이다. 사진사가 두 사람을 세워 놓고 자연스럽게 웃어 보라고 한다. 그래서 웃는다. 그런데 서로를 보고 웃지 않는다. 카메라를 보고 웃는다. 못하는 배우는 여기서 상대를 한 번 쳐다본다. '지금 우리 사이 이래요' 하고 관객한테 알려 주려고. 이 배우는 안 쳐다본다. 그냥 웃는다. 자기 얼굴 근육만 쓰고 눈은 안 쓴다. 카메라는 몇 분에 걸쳐 두 사람한테 천천히 다가가고, 사진사는 둘이 더 붙으라고 하고, 그러다 결국 이렇게 말한다. "본식 날에는 되겠죠." 나는 그 '안 쳐다봄'에서 졌다. 나는 사진 찍을 때 눈을 어디 둘지 몰라서 옆 사람을 보는 사람이다. 이 배우는 어디 둘지 알면서 안 둔다.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걔네 결혼은 해?" 나는 "해. 아니, 했어. 아니, 하긴 했는데…" 하다가 말았다. 친구는 "뭐야, 그래서 재밌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했고, 나는 "그 배우가 안 쳐다보는 게 있는데" 하고 설명을 시작했다가 친구가 폰을 보길래 그만뒀다. 친구는 "피투성이로 다이어트 콜라는 뭐야" 하고 혼자 웃었다. 그게 다다.
결혼식은 망한다. 신랑은 그 사이에 직장 동료한테 가정을 들어 물어보다가 입을 맞췄고, 그게 식장에서 드러나고, 축사에서 그걸 사과하다가 동료 애인한테 맞는다. 턱시도에 피가 묻는다. 신부는 조용히 나간다. 남자는 피가 난 채로 신부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두 사람이 늘 가던 식당에 먼저 가서 앉는다. 결혼식 끝나면 가자고 신부가 전에 말해 둔 곳이다. 치즈버거랑 다이어트 콜라를 시킨다. 피투성이로 다이어트 콜라. 그 메뉴가 이 남자의 전부다. 비 오는 밤에 턱시도 차림으로 부스에 혼자 앉아 햄버거를 기다리는 장면. 할 게 하나도 없는 장면이다. 못하는 배우는 바로 이런 데서 창밖을 보고 한숨을 쉰다. 이 배우가 거기서 뭘 하는지는 안 쓰겠다. 하도 안 해서 쓸 게 없다.
신부가 드레스 위에 주황색 패딩을 걸치고 들어온다. 이 남자를 지나쳐서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그제야 앞에 앉는다. 그리고 "안녕, 나 엠마야" 한다. 남자가 "안녕, 나 찰리야" 한다. 찰리라는 이름이 그렇게 낯설게 들린 적이 없다. 둘이 손을 잡는다. 눈물 자국 위로 웃는다. 사진 찍을 때는 서로 못 보던 두 사람이 카메라도 없는 데서 서로만 본다. 웃으라는 사람이 없으니까 웃어진다. 나는 거기서 좀 그랬다. 뭐, 좀 그랬다.
단체 사진마다 증명사진으로 나오는 사람들아. 카메라 앞에서는 계속 굳어도 된다. 대신 카메라 없는 자리에서 한 번만 제대로 웃자. 그게 더 어렵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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