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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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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귀로 결혼하는 법

삐딱하게보기· 2026. 10. 12.· 2,949자

고백하건대 나는 거짓말로 시작하는 연애담을 몹시 좋아한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기계는 첫 만남에서 누군가 한 번 속이고 들어가야 비로소 돌아가는 법이고, 그 거짓말이 작을수록 나중에 치를 값은 커진다. 그러니 영화가 사랑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맨 처음 내미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 귀 하나라면, 나는 자세를 고쳐 앉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더 드라마」는 첫 화면에서 계약서를 내민다. 화면은 여자의 귀를 바로 옆에서 비추고, 음악은 소리를 죽인다. 보스턴의 카페, 영국에서 온 미술관 큐레이터 찰리가 책을 읽는 엠마에게 그 책을 아는 척 말을 건다. 답이 없다. 남자는 무시당했다고 믿고 물러났다가 사과하러 돌아오고, 여자는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못 들었다며 처음인 것처럼 다시 해 보자고 한다. 이것이 이 영화가 관객과 맺는 약속이다. 여기는 '다시 하기'가 허용되는 세계다.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의 오래된 조항 하나가 그 밑에 작은 글씨로 딸려 있다. 이 이야기는 결혼식으로 끝난다.

더 드라마 스틸컷

영화는 한동안 그 계약을 성실히 이행한다. 이 년이 지나고 결혼식은 일주일 앞이다. 신랑은 친구와 축사를 쓰며 첫 데이트와 첫 입맞춤과 청혼을 되감고, 두 사람은 춤 연습을 하고 음식을 시식하고 사진 연습을 한다. 필름으로 찍은 화면은 나무 벽과 융단 위로 따뜻하게 번지고, 음악은 낡은 라디오에서 나오듯 가늘게 깔린다. 각본가라면 누구나 여기까지는 자다가도 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더 드라마 포스터

영화가 큰 질문을 꺼내기 전에 작은 질문을 먼저 깔아 두는 수법을 보라. 두 사람은 결혼식 DJ가 공원에서 약을 하는 것을 목격한다. 신랑은 그런 사람을 식에 세울 수 없다 하고, 신부는 그 일 하나로 사람을 자르는 것은 지나치다고 한다. 사람을 그가 한 가장 나쁜 일 하나로 판단해도 되는가. 신부는 이 질문을 남의 일로 꺼냈다가 곧 제 일로 돌려받게 되는데, 질문을 던진 쪽이 그 질문에 가장 비싼 값을 치르게 되는 구조야말로 이 각본이 제일 잘 짠 대목이다. DJ라는 소품으로 문을 열고 그 문으로 신부를 내보내는 셈이다.

결혼식 음식을 시식하는 자리에서 들러리 넷이 '살면서 한 가장 나쁜 일'을 하나씩 내놓는다. 신랑 친구는 개에게 물릴 뻔하자 애인을 방패로 썼고, 신부 친구는 어릴 때 이웃 아이를 빈 트레일러에 밤새 가둬 두었고, 신랑은 같은 반 아이를 온라인에서 괴롭혀 전학 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부가 말한다. 열다섯 살에 학교에서 총을 쏘려고 계획했었다고, 실행하지는 않았다고, 한쪽 귀는 태어날 때부터가 아니라 그 준비를 하다 다친 것이라고. 여기서 영화는 장르의 계약서를 찢는다. 그것도 아주 뻔뻔하게. 첫 장면에서 우리가 귀여운 사정이라고 믿고 도장을 찍어 준 그 귀가, 알고 보니 가장 무거운 조항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배짱에 감탄하다가 조금 분해졌다. 영화는 계약을 찢고도 조항은 지킨다. 고백 뒤로 신부는 그 일이 나오는 꿈을 꾸고, 신랑은 총을 든 그림만 들여다보고, 사촌이 총격으로 다친 신부 친구는 연락을 끊는다. 그래도 결혼식은 열린다. 열리되 들러리는 취해서 축사로 두 사람을 찌르고, 신랑은 축사에서 제 잘못을 사과하다가 동료의 애인에게 얻어맞아 턱시도에 피를 묻히고, 신부는 조용히 식장을 나간다. 로맨틱 코미디가 약속한 결혼식을 이렇게 치러 놓고도 약속을 어겼다고는 말 못 하게 만드는 솜씨다. 나는 그런 종류의 악의를 사랑한다.

소품 하나를 정독하자. 이 영화에서 가장 작은 물건은 귀다. 들리지 않는 귀 하나가 첫 만남의 이유가 되고, 첫 거짓말의 내용이 되고, 고백의 물증이 된다. 그러고도 그 귀는 화면에 크게 다시 나오지 않는다. 필경 만든 사람들은 그 귀를 '반만 듣는 사람'의 상징으로 써먹고 싶은 유혹을 느꼈을 것이건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영화는 다른 장치로 신랑의 머릿속을 보여 준다. 앞에서 보여 준 장면을 그대로 다시 틀면서 어른 엠마가 있던 자리에 총을 든 열다섯 살을 세워 놓는 것이다. 같은 구도, 같은 조명, 다른 사람. 플루트와 첼로가 어긋난 음정으로 그 밑을 긁는다. 귀는 조용히 두고 눈을 속이는 셈인데, 들리지 않는 쪽에 선 사람의 영화로는 이보다 정직한 선택이 없다. 결혼사진 연습 장면도 같은 원리로 짜여 있다. 사진사가 웃으라 하면 두 사람은 웃는다. 다만 서로를 보고 웃지는 않는다. 카메라는 몇 분에 걸쳐 두 사람에게 천천히 밀고 들어가고, 사진사는 본식 날에는 되겠거니 하고 물러선다. 대사 한 줄 없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재는 자다. 이런 장면을 보면 만든 사람들이 배우의 얼굴을 얼마나 믿었는지 알 수 있고,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또 조금 분해진다.

불만은 하나다. 신랑이 직장 동료에게 가정을 들어 묻다가 입을 맞추는 대목 말이다. 신부에게 무거운 과거를 쥐여 주었으니 신랑에게도 죄를 하나 쥐여 주어 장부를 맞추겠다는 계산이 너무 훤히 보인다. 그 입맞춤이 결혼식 난장판의 도화선까지 맡는 것은 관객을 너무 얕본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첫 장면에서 책을 읽은 척한 사소한 거짓말 하나로 이미 신랑의 장부는 충분히 적혀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계약을 어떻게 닫는지가 중요하다. 비 오는 밤, 두 사람이 결혼식 끝나면 가자고 했던 식당. 피 묻은 턱시도의 신랑이 먼저 앉아 치즈버거와 다이어트 콜라를 시킨다. 드레스 위에 주황색 패딩을 걸친 신부가 들어와 그를 지나쳐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맞은편에 앉아 자기 이름을 말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엠마예요. 안녕하세요, 저는 찰리예요. 첫 장면에서 여자가 내밀었던 '다시 하기'를, 영화는 백 분을 돌아 같은 문장으로 돌려준다. 결혼식이라는 조항은 난장판으로 이행했고, 다시 하기라는 조항은 글자 그대로 이행했다. 계약서를 찢은 영화가 계약을 가장 충실히 지킨 영화가 되는 순간이다. 분하다.

모름지기 결혼이란 상대의 결말을 다 읽고 하는 것이 아니라, 들리지 않는 귀 쪽에 서서 같은 말을 한 번 더 해 주는 일이다. 이 영화는 그 한 번 더를 위해 결혼식 하나를 통째로 태웠다. 값이 싸다고는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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