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5

분노의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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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척이라는 말을 들은 아이에게

삐딱선· 2026. 10. 29.· 2,124자

편지를 쓰게 된 사정부터 말할게요. 《분노의 추격》은 아버지와 기자가 두 시간 가까이 사람을 때리는 영화예요. 보고 나면 다들 격투 클럽과 얼음 공장과 경찰서 얘기를 해요. 저도 그랬어요. 그 경찰서 싸움은 진짜, 숨 쉬는 걸 잊어요.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남는 건 그 싸움이 아니라, 갇힌 건물 안에서 제일 먼저 움직인 아이 하나였어요. 그래서 그 아이에게 씁니다. 영화 속 인물에게 편지를 쓰는 게 이상한 건 알아요. (전에 한 번 드라마 속 인물한테 쓰다가 끝까지 못 쓴 적이 있어요. 이번엔 다 쓸 거예요.)

레이니에게.

처음 너를 본 건 아버지 집에서였어요. 너는 중국으로 같이 돌아가자고 했고,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죠. 너는 화를 내고 뛰쳐나갔어요. 그게 첫 번째로 네가 한 일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 장면에서 너보다 아버지 쪽이 더 답답했어요. 말을 못하는 사람이 고개만 젓는 걸 보면, 보는 쪽은 이유를 알 수가 없거든요. 너도 몰랐을 거예요. 그래서 나간 거겠죠.

그리고 다리를 저는 남자아이가 왔죠. 부모가 사고를 당했다고, 도와달라고. 너는 따라갔어요. 사람들은 이걸 어리석었다고 할지도 몰라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다친 사람을 돕겠다고 따라간 아이를 어리석다고 하는 세상이면, 그 세상이 틀린 거예요. 그 아이가 미끼였다는 건 너도 금방 알았겠죠.

분노의 추격 스틸컷

두 번째로 네가 한 일. 뱀 구덩이라고 불리는 그 건물에서, 너는 조직원에게 먼저 덤볐어요. 그게 아이들 탈출의 시작이었어요. 대부분은 다시 붙잡혔다고 해요. 그래도 시작한 건 너였어요. 어른 둘이 그 건물에 도착하기 전에요. 아버지한테 권법을 배웠다는 건 그 전에 나왔죠. 그러니까 네 몸은 그날 처음 싸운 게 아니었어요. 연습을 쓴 거였죠. 여기서부터 저는 이 영화를 아버지 영화가 아니라 네 영화로 보기 시작했어요.

그 연습 장면 말이에요. 조용히 살려고 이름도 안 내고 수리 일만 하던 사람이, 딸한테는 권법을 가르쳤어요. 말을 못하는 아버지가 딸한테 준 게 말이 아니라 몸이었다는 거예요. 저는 그게 이 영화에서 제일 말 많은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아무 대사도 없는데요. 네가 건물 안에서 먼저 덤빌 때, 그 몸에 아버지가 들어 있었어요. 아버지는 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요.

세 번째. 나빈 아저씨가 아버지와 너한테 먼저 나가라고 했을 때, 너는 아버지를 붙잡고 다른 아이들도 데리고 가자고 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찢은 천을 타고 내려갈 때 네가 앞에 있었죠. 저는 여기서 울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싸움 장면에서는 한 번도 안 울었는데, 아이들이 천을 잡고 내려가는 데서 울었어요. 아마 네가 「나만」이라고 말하지 않아서였을 거예요.

그리고 네가 그 남자아이한테 한 말. 너 때문에 잡혀 왔다고 혼냈죠. 그 아이는 너한테 착한 척한다고, 그래서 바보라고 받아쳤어요. 저는 이 짧은 말싸움이 이 영화에서 제일 오래 남아요. 어른들의 싸움은 누가 더 센가를 가리는데, 너희 둘의 싸움은 누가 더 틀렸는가를 가리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둘 다 조금씩 틀렸고, 둘 다 조금씩 맞았어요. 그 아이는 미끼로 쓰였고, 너는 미끼를 물었고, 그런데도 너는 그 아이를 두고 가지 않았어요.

분노의 추격 포스터

한 달 뒤 바다. 너와 아버지와 그 아이와 경사가 나빈 아저씨의 재를 뿌리죠. 그리고 아버지가 네게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해요. 영화는 거기서 끝나요. 그래서 저는 그 이야기를 못 들었어요. 묻고 싶은 게 그거예요. 아버지가 뭐라고 했어요? 왜 중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는지, 왜 그렇게 싸울 줄 아는지, 다 말해 줬어요? 안 알려 줘도 돼요. 그건 네 거니까요. 다만 네가 그 얘기를 끝까지 들었기를 바라요. 처음에 화내고 뛰쳐나갔던 것처럼 중간에 나가지 말고요.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예요. 너는 구출된 아이가 아니에요. 구출을 시작한 아이예요. 영화 제목은 어른들의 분노를 말하지만, 그 건물 안에서 제일 먼저 움직인 건 분노가 아니라 너였어요. 그걸 누가 안 알아줘도 제가 알아요. 그리고 하나 더. 어른들은 이 영화를 보고 누가 제일 세게 때렸는지를 얘기할 거예요. 그래도 돼요. 그 사람들은 그 얘기를 하라고 하고, 너는 네 얘기를 해요. 너는 때린 아이가 아니라 먼저 움직인 아이니까요.

추신. 그 남자아이, 바닷가에 같이 있더라고요. 네가 데리고 온 거죠? 착한 척이 아니었네요. 그냥 착한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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