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6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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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후보가 둘인데 둘 다 멀쩡하다
빨래 개면서 봤다. 양말 짝 맞추는 동안 브리짓이 마흔셋이 됐고, 수건 접는 동안 애 아빠 후보가 둘이 됐다. 그 둘이 다 멀쩡한 사람이라는 게 이 영화의 전부다. 구간별로 적는다.
컵케이크, 그리고 장례식
혼자 사는 집, 컵케이크 하나에 초 하나. 슬픈 노래를 틀어 놓고 따라 부르다가 노래를 바꾸고, 와인 잔 든 채로 침대 위에서 뛴다. 마흔셋 생일을 혼자 보내는 사람의 자세로는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바로 옛 애인의 추도식이다. 비행기 사고라는데 시신이 없어서 관은 비어 있고 사진만 웃고 있다. 브리짓이 추도사를 하다가 그가 여기 있는 많은 이들을 만졌다는 식의 말을 해 버리고, 다른 옛 애인 마크가 아내와 함께 뒤늦게 들어온다. 전 남친 둘을 첫 장면에 다 몰아넣고 시작하는 영화다. 나는 그 장면 보면서 건조대에서 수건을 걷었다.
페스티벌
동료 미란다가 음악 축제에 끌고 간다. 브리짓은 진흙에 빠지고, 잭이라는 남자가 신발을 찾아 신겨 주면서 맞네요, 한다. 밤에 취해서 남의 천막에 들어갔는데 그게 잭의 천막이다. 자고, 아침에 혼자 깨고, 나오고, 끝. 잭이 아침거리 사러 나갔던 거라는 건 나중에 안다. 알고 보니 잭은 소개팅 사이트를 만들어 돈을 꽤 번 사람이고, 브리짓은 그걸 친구가 찾아 줘서야 안다. 그 대목에서 빨래는 다 갰고, 나는 옷장 문을 열어 둔 채로 앉아 있었다.
세례식
일주일 뒤 친구 아이 세례식. 브리짓이 대모고 마크는 급하게 대부가 됐다. 마크는 이혼 중이라고 하고, 그날 밤 둘은 같이 보낸다. 아침에 브리짓은 편지 한 장 남기고 먼저 나온다. 피로연에서 강남스타일이 나오고 브리짓이 춤을 춘다는 것도 적어 둔다. 2016년 영국 영화치고 선곡이 좀 늦었다 싶었는데, 브리짓이라면 그럴 만하다.
산부인과
임신 테스트기, 그리고 의사. 이 의사가 영화에서 제일 웃기다. 마흔셋은 고령 산모라서 양수 검사를 권한다고 하고, 브리짓이 고령이라니 말이 되냐고 하자 그렇다고 받는다. 아빠가 누군지 알려면 그 검사를 하면 되는데 바늘이 크다. 브리짓은 배에 대고 괜찮다고 속삭이면서 그냥 나온다. 그래서 아홉 달 동안 아무도 모른다. 이 설정 하나로 영화가 굴러간다. (나라면 바늘 맞았다.)
아빠 둘
브리짓은 둘에게 따로 말하고, 둘 다 기뻐한다. 그러다 셋이 한 식당에 앉은 자리에서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고 털어놓는다. 마크는 자리를 뜨고, 잭은 남고, 시간이 지나 마크도 돌아온다. 셋이 같이 태교 교실에 가는데 강사가 두 남자를 부부로, 브리짓을 대리모로 알아듣는다. 여기서 나는 밥을 먹고 있었다. 두 남자가 누가 더 좋은 아빠인지 겨루기 시작할 때쯤 밥을 다 먹었다.
방송국
정색할 구간이다. 브리짓은 뉴스쇼 PD인데, 생방송 중에 남자들이 카메라에 엉덩이를 내밀고 그 화면이 스튜디오 큰 화면에 멈춰 버리는 사고가 난다. 브리짓은 내 아들이 알아들을 나이가 되면 성실함이 다시 유행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만둔다. 나는 이 장면이 애 아빠 찾기보다 훨씬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마흔셋에 직장에서 밀려나는 일이 어떤 건지를 영화가 딱 그만큼만 보여 주고 더 가지 않는 게 아까워서다. 더 갔어야 했다. 안 갔다.
병원
만삭에 비 오는 날 집 밖에 갇히고, 마크가 와서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갈 길을 낸다. 키스하려는 순간 양수가 터지고, 마크는 전화가 울리자 그걸 창밖으로 던진다. 로맨틱하긴 한데 그게 구급차 부를 전화였다. 피자 배달부 지아니의 도움에 잭까지 합류해서 병원에 간다. 진통 중에 브리짓은 누군가를 한 대 치고, 무통 주사는 너무 늦었다는 말을 듣는다. 설거지하다 말고 봤다.
끝
아들이다. 이름은 윌리엄. 의사가 두 남자를 데리고 가서 검사를 하고, 둘은 서로 행운을 빈다. 일 년 뒤 결혼식. 신랑은 마크고 들러리는 잭이고, 잭은 원망하는 기색 없이 아이랑 잘 논다. 장례식으로 열어서 결혼식으로 닫는 영화다. 둘 다 성당이다. 그리고 신문 한 장. 비행기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그 옛 애인이 살아서 발견됐다는 제목이다. 요즘 OTT 시리즈라면 시즌 2 예고라고 부를 장면이다.
빨래는 다 갰고 아빠는 마크였다.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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