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6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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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가 싸우지 않게 되기까지

조용한근육맨· 2026. 10. 24.· 3,028자

열다섯 해다. 첫 편이 2001년 봄에 나왔고 이 영화가 2016년 가을에 나왔으니, 브리짓은 서른둘에서 마흔셋이 되었고 보는 쪽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두 편을 같은 사람이 연출했다. 그 사이에 한 편이 더 있지만 이 글에서는 첫 편과 세 번째 편만 나란히 놓는다. 두 영화가 같은 문제를 받아 들고 다르게 풀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다. 한 여자 앞에 남자가 둘 있다.

먼저 첫 편을 확인해 둔다. 2001년 영국 영화, 상영 시간은 한 시간 반을 조금 넘고, 국내에는 그해 9월에 걸렸다. 서른둘의 브리짓이 새해에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술과 담배를 줄이고 살을 빼고 괜찮은 남자를 만나겠다는 결심이다. 새해 파티에서 순록 무늬 스웨터를 입은 인권 변호사 마크를 만나고,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 브리짓을 흉보는 말을 엿듣는다. 직장 상사 다니엘과는 이메일로 시작해 연애가 되고, 다니엘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끝난다. 브리짓은 방송 기자로 자리를 옮기고, 마크가 어느 저녁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좋다는 말을 한다. 그 뒤 다니엘이 돌아오고, 두 남자는 길에서 주먹다짐을 하다가 식당 안으로 밀려 들어가 남의 생일 축하 노래를 얼떨결에 같이 부른다. 영화는 눈 내리는 거리에서 마크가 새 일기장을 건네는 것으로 끝난다.

세 번째 편의 줄거리는 이렇다. 마흔셋 생일을 혼자 보낸 브리짓이 옛 애인 다니엘의 추도식에 간다. 비행기 사고였고 시신은 없다. 거기서 마크를 보는데 그는 아내와 함께 왔다. 음악 축제에서 잭이라는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한 주 뒤 친구 아이의 세례식에서 이혼 중이라는 마크와 또 하룻밤을 보낸다. 임신이다. 누구 아이인지 모른다. 산부인과 의사는 양수 검사를 권하지만 브리짓은 바늘 앞에서 물러선다. 두 남자가 번갈아, 그리고 함께 예비 아빠 노릇을 하고, 만삭의 밤에 양수가 터지자 둘이 함께 브리짓을 병원으로 데려간다. 아들이 태어나고, 검사 결과 아버지는 마크다. 한 해 뒤 결혼식에서 잭이 신랑 들러리로 선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스틸컷

이 영화를 낮게 보는 쪽의 논리를 먼저 적는다. 아빠가 누구인지 숨겨 둔 채 두 남자에게 더 나은 아빠 되기 경쟁을 시키는 것은 아이디어 하나로 두 시간을 버티는 일이고, 그 경쟁이 자주 유치하며, 장면들이 에피소드로 나열되어 감정이 쌓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나는 이 지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웃음을 위해 인물을 잠시 내려놓는 장면이 적지 않고, 그런 장면에서 브리짓은 사람이 아니라 장치가 된다. 그러나 이 글의 관심은 그 경쟁이 재미있느냐가 아니라, 왜 이 영화가 두 남자를 싸우게 하지 않았느냐에 있다.

첫 편에서 두 남자는 싸운다. 멋있는 싸움이 아니다. 합이 맞지 않는 길거리 몸싸움이고, 그러다 식당 안으로 밀려 들어가 남의 생일 노래에 끼어든다. 이 싸움의 뜻은 분명하다. 한 남자는 틀린 남자고 한 남자는 맞는 남자다. 다니엘은 바람을 피웠고, 마크가 처음부터 다니엘을 미워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브리짓이 할 일은 둘 중 맞는 쪽을 알아보는 것이고, 영화는 그걸 몰라보는 브리짓을 한참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알아보게 해 준다. 그러니까 첫 편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였고,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세 번째 편에서 두 남자는 싸우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싸울 수가 없다. 둘 다 맞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잭은 친절하고 브리짓을 살뜰히 챙기며, 마크는 일 전화를 끊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마음은 그대로다. 영화가 두 남자에게 준 흠이라고는 잭이 마크에게 브리짓과의 밤에 관해 사실과 다른 말을 해 마크를 물러서게 하는 한 번뿐인데, 그마저 브리짓을 속이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첫 편의 주먹다짐 자리에 이 영화가 놓은 장면은 이것이다. 양수가 터진 브리짓을 두 남자가 함께 들고 병원으로 가고, 병원 회전문 앞에서 한바탕 소동이 난다. 서로를 밀던 두 몸이 한 몸을 나눠 드는 두 몸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 바꿔치기가 이 영화가 한 가장 정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열다섯 해 전에는 두 남자가 서로를 밀었고, 이제는 같은 무게를 든다.

그렇다면 선택은 누가 하는가. 첫 편에서는 브리짓이 했다. 세 번째 편에서는 진통 중의 브리짓이 두 남자 가운데 마크의 손을 잡고, 잭이 그걸 보고 물러난다. 선택은 여전히 브리짓의 것이다. 다만 그 선택 뒤에 검사가 온다. 의사가 두 남자를 데리고 가서 검사를 하고, 아버지는 마크로 밝혀진다. 여기서 두 영화가 갈라진다. 첫 편은 마음이 답이었고, 답은 마음으로 충분했다. 세 번째 편은 마음이 먼저 답하고 피가 뒤에서 그 답을 확인해 준다. 질문은 이것이다. 검사 결과가 잭이었다면 이 영화는 어떻게 됐을까. 영화는 그 가능성을 끝까지 열어 두었다가 마지막에 닫는다. 마음과 피가 같은 쪽을 가리키게 해 놓고 끝낸 것은 안전한 선택이다. 나는 그것이 이 영화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그것이 이 영화가 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포스터

무엇을 택했는가. 첫 편은 틀린 남자와 맞는 남자를 세워 두고 알아보는 눈을 택했다. 그 눈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데까지 가는 것이 첫 편의 길이었다. 세 번째 편은 맞는 남자 둘을 세워 두고, 알아보는 눈 대신 함께 드는 손을 택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악역이 없고, 악역이 없으니 싸움이 없고, 싸움이 없으니 긴장이 약하다. 이 영화를 낮게 보는 논리가 가리키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러나 나는 그 약함이 값을 치르고 얻은 것이라고 본다. 서른둘의 이야기는 누가 나를 속이는가를 가려내야 했고, 마흔셋의 이야기는 그럴 필요가 없다. 두 남자 다 괜찮다는 것을 알면서도 둘 중 하나를 잡아야 하는 일, 그리고 잡히지 못한 쪽이 결혼식에서 들러리로 서는 일. 그것이 열다섯 해의 값이다.

마지막에 신문 한 장이 나온다. 죽은 줄 알았던 다니엘이 살아 있다는 기사다. 틀린 남자가 돌아온다는 예고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두 남자를 싸우지 않게 만드는 데 두 시간을 쓰고, 끝에서 싸울 사람을 하나 다시 불러 놓는다. 그다음 이야기가 다시 가려내기로 돌아갈지, 아니면 셋이 한 무게를 나눠 들게 될지는 모른다. 열다섯 해 동안 두 남자가 싸우지 않게 되는 데까지 왔다면, 그다음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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