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6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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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물러난 분께

심장쫄깃러· 2026. 10. 24.· 2,705자

잭 씨께. 이 글은 2016년 영화에 나오는 분께 부치는 글입니다. 이 영화를 본 분들은 대개 브리짓 씨 이야기를 하고, 그다음에 마크 씨 이야기를 합니다. 잭 씨 이야기는 끝에 가서 「그분도 참 좋은 분이었지」 한마디로 끝나는 일이 많아요. 저는 그 한마디가 조금 마음에 걸렸습니다. 좋은 분이었다는 말은 그분을 다 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저는 잭 씨를 다 알지 못하겠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씁니다.

먼저 건네고 싶은 말이 있어요. 잭 씨는 이 영화에서 끝까지 물러나는 쪽을 맡으셨습니다. 그 자리가 편한 자리가 아니라는 걸 저는 압니다.

제가 기억하는 잭 씨의 첫 번째 행동은 아침거리입니다. 음악 축제의 밤에 브리짓 씨가 천막을 잘못 찾아 들어왔고, 두 분은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브리짓 씨는 혼자 깨어 나가 버렸고요. 그때 잭 씨가 아침거리를 사러 나가 있었다는 건 한참 뒤에야 밝혀집니다. 하룻밤을 보낸 사람에게 아침을 사다 주려고 나간 것. 저는 그것이 그분이 이 밤을 하룻밤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일 거라고 읽었어요. 적어도 그렇게 대하고 싶었다는 뜻이고요.

그리고 잭 씨가 하지 않은 일이 하나 있어요. 잭 씨는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짝을 찾아 주는 사이트를 만들어 큰돈을 번 분이라는 걸, 브리짓 씨는 동료가 텔레비전에서 잭 씨를 보고 알려 줘서야 알게 됩니다. 자기를 크게 보이려는 사람은 그런 걸 먼저 말해요. 잭 씨는 말하지 않았고, 저는 그 침묵을 한 것 못지않은 행동으로 적어 둡니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스틸컷

두 번째 행동은 조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브리짓 씨가 임신했다는 것과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까지 밝힌 뒤, 세 분이 함께 태교 교실에 가셨죠. 그 교실 바깥에서 잭 씨는 마크 씨에게 두 사람 사이에는 가망이 없다는 투로 말씀하셨고, 자신은 그날 밤 피임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도 말씀하셨습니다. 사실과 다른 말이었어요. 마크 씨가 운명이 아니라 콘돔이었다고 받아친 것은 그 자리였고, 마크 씨는 그 뒤 브리짓 씨 곁을 떠났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잭 씨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한참 생각했어요.

아마 잭 씨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질 수도 있다는 걸 느끼셨을 거예요. 잭 씨에게는 돈도 있고 시간도 있고 아이를 대하는 솜씨도 있었는데, 그 한 가지가 없었습니다. 같이 보낸 세월이요. 마크 씨와 브리짓 씨 사이에는 잭 씨가 끼어들 수 없는 십몇 년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세월이 있는 쪽을 밀어내려고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요,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 행동이 괜찮아지는 건 아닙니다. 그 말 몇 마디로 마크 씨는 떠났고, 브리짓 씨는 그 사정도 모른 채 한동안 혼자 아기를 기다렸으니까요. 잭 씨가 그걸 몰랐을 리 없어요.

세 번째 행동은 그 뒤에 옵니다. 잭 씨는 브리짓 씨에게 자기가 한 말을 털어놓습니다. 마크 씨가 떠난 데에 자기 책임이 있다고요. 이 고백은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었어요. 들키지 않을 수도 있었고, 들키지 않았다면 잭 씨는 그대로 아버지 노릇을 하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말씀하셨어요. 저는 두 번째 행동보다 이 세 번째 행동이 잭 씨라는 분을 더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비겁해지는데, 비겁했던 것을 스스로 꺼내 놓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 그 말을 듣고 브리짓 씨는 잭 씨를 두고 마크 씨에게 갑니다. 잭 씨는 그렇게 될 줄 알면서 말씀하신 거예요.

하나만 더 적을게요. 아기가 태어난 뒤 의사가 두 분을 데리고 가서 검사를 할 때, 두 분은 서로에게 행운을 빌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한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이기고 싶은 상대에게 행운을 빈다는 것, 그것도 진심으로요. 한 해 뒤 결혼식에 잭 씨가 서 계셨다는 것은 그 행운 빌기가 이어진 것이었을 거예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포스터

잭 씨가 들은 말을 생각해 봅니다. 잭 씨가 브리짓 씨에게 그 사람을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브리짓 씨는 과거에 그랬다고 답했습니다. 그럼 나는요, 하고 물었을 때는 언젠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고요. 언젠가. 저는 이 말이 잭 씨가 이 영화에서 들은 말 중 가장 아픈 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거절이 아니니까요. 거절이었다면 돌아설 수 있었을 텐데, 언젠가라는 말은 사람을 그 자리에 세워 둡니다. 잭 씨가 듣고 싶었던 말은 아마 「지금」이었을 거예요. 지금 사랑한다, 혹은 지금은 아니다. 둘 중 어느 쪽이라도요. 브리짓 씨는 그 말을 끝내 입으로 하지 않았고, 잭 씨는 말이 아니라 그분의 행동에서 답을 읽어야 했습니다.

이상해서가 아니에요. 잭 씨가 사실과 다른 말을 한 것도, 그 말을 되돌린 것도, 끝까지 그 자리에 남은 것도, 다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다만 저는 이 영화가 잭 씨에게 조금 덜 친절했다고 느껴요. 영화는 잭 씨를 처음부터 끝까지 괜찮은 사람으로 그리면서, 그 괜찮음이 얼마나 힘들게 유지되는지는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웃는 얼굴 뒤에 있었을 밤들을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혹시 지금 누군가의 곁에서 잭 씨 같은 자리에 서 계신 분이 있다면요.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자리, 그래도 떠나지지 않는 자리요. 그 자리가 틀린 자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그 자리에서 사실과 다른 말을 하고 싶어지는 밤이 오면, 그 말 대신 잠깐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오세요. 잭 씨도 그랬다면 조금 덜 아팠을 거예요.

잭 씨, 이 영화에서 잭 씨는 내내 괜찮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제일 많이 참은 사람이었습니다. 두 가지가 같은 사람 안에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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