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6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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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네 건과 답변서 한 장
나는 민원이라는 것을 두어 번 넣어 본 사람이다. 집 앞 가로등 하나가 밤마다 깜빡이기에 관청 누리집에 공손한 글을 올렸더니 열흘 뒤에 「검토 후 조치 예정」이라는 답이 왔다. 가로등은 그 뒤로도 깜빡였다. 그 일로 배운 것은, 민원이란 고쳐 달라고 넣는 게 아니라 내가 봤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넣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은 2016년에 나온 영화 한 편을 두고 민원 네 건을 정중히 접수해 보려 한다. 접수처는 없다. 아무튼.
먼저 사건 개요. 마흔셋 생일을 혼자 맞은 뉴스쇼 PD 브리짓 존스 씨가 음악 축제에서 미국인 잭 씨와 하룻밤을, 한 주 뒤 친구 아이의 세례식에서 옛 연인 마크 씨와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한다. 아기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본인도 모른다. 여기까지가 포스터에 적힌 내용이고, 민원은 그 바깥에서 발생한다.
민원 1. 혼인 상태 편의 처리에 관하여
마크 씨는 이 영화에 아내와 함께 등장하신다. 옛 애인의 추도식에 부인 카밀라 씨를 대동하고 뒤늦게 들어오는 것이 그분의 첫 장면이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로부터 한 주 뒤 세례식에서 그분은 이혼 절차를 밟는 중이라고 밝히신다. 한 주다. 추도식 때 이미 절차 중이었다면 왜 부인과 나란히 오셨는지, 추도식 뒤에 시작된 절차라면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나는 그 한 주의 사정을 영화에서 듣지 못했다. 결혼 생활이라는 것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알 도리가 없는 민간인이지만, 한 주 만에 「유부남」 표찰을 떼고 「이혼 중」 표찰로 바꿔 다는 솜씨만큼은 알아볼 수 있다. 이것은 설계 오류라기보다 공정 단축이라 하겠다. 남자 주인공을 장애물 뒤에 세워 두었다가 장애물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 치우는 공정이다. 시정 요청: 카밀라 씨에게 사정 한 줄을 배정해 주시기 바란다. 그분도 그 성당에 앉아 계셨다.
민원 2. 뉴스 PD 직무 설계에 관하여
브리짓 씨의 직업은 뉴스쇼 PD다. 그런데 이분은 축제에서 마주친 유명 가수를 못 알아보시고, 하룻밤을 보낸 상대가 짝 찾아 주는 사이트로 큰돈을 번 억만장자라는 사실을 동료가 텔레비전에서 찾아 줘서야 아시고, 정치인 한 분도 못 알아보신다. 세 건이다. 뉴스를 만드는 분이 뉴스에 나오는 분들을 못 알아보는 설정은, 장르의 수순으로 보자면 「주인공은 사랑스럽게 허술해야 한다」 항목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다만 이 영화는 같은 입으로, 이분이 이제 외우기 어려운 독재자 이름도 또박또박 발음하는 PD가 되었다고도 한다. 유능과 허술을 한 분에게 번갈아 입히려면 갈아입을 시간은 주셔야 한다. 시정 요청: 못 알아보는 유명인은 한 분으로 줄이고, 나머지 두 분은 알아보되 모른 척하는 것으로 처리하면 PD의 체면과 코미디가 동시에 산다.
민원 3. 부속 줄거리 처리에 관하여
브리짓 씨의 어머니는 이 영화에서 지역 의회 선거에 나가신다. 공약은 보수적인 가족 가치다. 딸이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이 들어오면서 이 공약은 난처해지고, 어머니는 딸의 도움을 받아 선거 운동을 열린 쪽으로 바꿔 당선되신다. 딸이 아기를 낳은 직후 병원에 오셨을 때가 바로 그 당선 직후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꽤 그럴듯한 부속 줄거리로 들리실 텐데, 문제는 이 줄거리가 본 줄거리와 거의 악수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족 가치를 내걸고 출마했다가 딸 때문에 생각을 바꾸는 어머니라면, 그 바뀌는 순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 될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영화는 두 남자가 누가 더 좋은 아빠인지 겨루는 장면들을 넣었다. 겨루기는 길고 어머니는 짧다. 시정 요청: 어머니에게 두 장면만 더 주시기 바란다. 공약을 지키려 애쓰는 장면 하나, 포기하는 장면 하나.
민원 4. 추도식 운영에 관하여
영화의 첫머리에 추도식이 있다. 브리짓 씨의 또 다른 옛 연인이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여 열린 자리인데, 성당은 그분의 옛 여자친구들로 가득하고, 그분들은 저마다 똑같은 추억을 말씀하신다. 전편에서 그분을 연기한 배우가 이번 편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보도된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 추도식은 안 나오는 분을 처리하는 행정 절차다. 절차로서는 깔끔하다. 다만 추도식이 끝나면 브리짓 씨는 슬퍼할 틈도 없이 축제로 가신다. 애도 기간이 장면 하나다. 영화가 마지막에 그분을 어떻게 다시 꺼내 드는지는 보신 분들이 아실 테니 여기 적지 않는다. 시정 요청: 이 건은 시정을 요청하지 않는다. 옛 여자친구들이 같은 추억을 말하는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제일 정직한 장면이었다는 것만 기록으로 남겨 둔다.
그래도 구수한 것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다. 이분은 브리짓 씨에게 마흔셋은 「고령」 산모라 하시고, 브리짓 씨가 고령이라니 말이 되느냐고 하자 그렇다고 받으신다. 아빠가 누구냐는 문제 앞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화 투표처럼 마크 씨는 1번, 잭 씨는 2번으로 눌러 달라는 말씀도 하신다. 남자란 아기 카시트 다는 것과 탓할 때나 쓸모가 있고 그 뒤로는 거치적거릴 뿐이라는 말씀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한 줄이었다. 민원인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이 선생님만은 민원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이 선생님께 민원 처리를 맡기고 싶다.
답변서
민원인께. 귀하의 민원 네 건은 잘 받았습니다. 본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로서 「장애물은 제때 치운다」, 「주인공은 사랑스럽게 허술하다」, 「부모는 부속 줄거리를 맡는다」, 「안 나오는 배우는 추도식으로 처리한다」는 장르 운영 지침을 성실히 따랐음을 알려 드립니다. 아울러 본 영화의 주인공은 마흔셋에 임신하였으며, 이는 동 장르의 관행에 비추어 보기 드문 운영 성과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민원은 검토 후 조치 예정입니다.
가로등은 아직도 깜빡인다. 그래도 나는 또 민원을 넣을 것이다. 이 영화, 볼까 말까 하시는 분들께는 보시라고 말씀드린다. 민원 넣을 거리가 넷이나 생기는 영화는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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